한 편 저자는 단어 기레기를 다루는 소단원에서, 주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끝을 향해 달립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성이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잘 간직하면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현에 가까워지지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그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짐승이 되어간다."
양심을 버리고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며 시류에 편승하는 기레기에 꽂아넣는 비수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물론 위에서 소개한 2개의 신조어 외에도, 목차로 정리된 15개의 신조어 외에도 더 많은 신조어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신조어들은 여러 사회 현상을 반영하며 여러 세대의 공감을 얻었겠죠. 그러니 그 생명력을 유지하며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살아 숨쉬고 있을 겁니다.
이 책은 신조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했던 기레기 편에서는 기사의 의미와 기록이 어떤 기준을 갖고 발전해왔는 지를 알 수 있죠. 또한 그런 기준이 현대에는 어떤 가치와 연결되는 지를 얼핏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열정페이 편에서는 어떤가요. 우리는 인턴이 어떻게 합리화되는 지, 그리고 어떤 인턴 과정은 왜 불합리한지, 그리고 그 불합리한 인턴과정이 왜 노동력 착취를 가져오는 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도구를 얻었죠.
이 책에는 이런 여러 신조어를 뒷받침하는 이면을 소개합니다. 때로는 어원으로, 때로는 사회 현상으로 신조어를 살펴보며 그 이면에 녹아있는 사상을 읊어냅니다. 또한 이런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까지 여유롭게 흘러가죠. 글을 보면 적어도 기승전결에 대한 불만은 없을 정도로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에도 몇 가지 단점은 있었죠. 우선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 에둘러 합리화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 사안을 직접적으로 다룬 건 아니지만, 분명 민감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방어를 한 느낌이 있죠. 충분히 서술 상 피할 수도 있었는데 왜 집어넣었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일부 파트에서만 그런 거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습니다.
두 번째로는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방법론을 마지막에 제시했는데, 이게 가능한가 싶었죠.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는 논다)'을 다루면서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필요성, 인문학과 다른 학문을 융합하는 사고를 기르는 법을 배양하는 일련의 방법을 서술해놨습니다. 참신하고 정말 좋지만, 학습 강도나 방법론을 고려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필요성에 대한 의문도 들었구요. 필요했다면 이미 취업 전문 교육 기관으로 거듭난 대학에서 전부터 반영해서 가르쳤을 겁니다.
그리고 '1코노미'는 주변에서 쓴 적이 없어서 실제로 많이 쓰이는 용어인지는 모르겠네요. 혼밥, 혼코노 이런 건 많이 쓰이는데 차라리 혼밥을 주제어로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책 자체는 정말 좋았지만, 마지막에 인문학 위기에 대한 절박하고 강한 주장으로 인해서 머릿 속으로 물음표를 계속 그리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그 부분만 아니라면 나머지는 통찰도 많이 주고 괜찮은 서적입니다.
추천 독자는 '넷 상에서 통용되는 신조어에 대한 통찰을 가볍게 얻고 싶은 독자'입니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