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리뷰어스클럽'에서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녕하세요. 가온수입니다. 신조어는 세태가 흐름에 따라 피고 집니다. 그만큼 수많은 신조어들이 생겨났다고 사라지죠. 그러나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한 시대를 표상하는 신조어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 서적은 SNS에서 널리 사용되는 신조어 15가지를 골라 이 단어들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담아냈죠.


오늘 다룰 서적은 'SNS 인문학'입니다.


작고 단순한 책입니다. 책 표지는 색감이 약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틱톡을 절묘하게 섞은 느낌이 납니다. 모두 대 SNS 시대를 대표하는 앱 App 들이죠. 아래에는 해시태그 형식을 응용하여 각 소단원의 주제가 되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책은 대략 200페이지 정도 되고, 글씨 크기는 보통입니다. 흑백 인쇄고, 책 내에 사진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지만 사진이 없어도 내용이 충분히 전달될 만큼 글을 깔끔하게 썼습니다. 책 크기는 작은 편으로, 아이패드보다 작아 들고 다니기 편합니다.


목차를 보시겠습니다.


01 잉여인간_ 공자도 알고 보면 잉여인간?

02 빌런_ 단순한 나쁜 놈과 매력적인 악당의 차이

03 인싸&아싸_ 슬기로운 친교의 기술

04 라떼_무례한 친근감은 사양합니다

05 열정페이_ 내 열정의 값은 내가 정한다

06 소확행_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조건

07 근자감_ 허세와 긍정의 힘을 가르는 한 끗 차이

08 국뽕_ 나라 사랑의 근거

09 랜선_ 환상적이지만 외로운 공간

10 기울어진 운동장_ 공정이란 무엇인가?

11 1코노미_ 자유와 외로움 사이

12 아빠 찬스_ 진정한 부모의 역할

13 흙수저_ 나를 위한 선택

14 기레기_ 길이길이 남으리니!

15 인구론_ 인문계의 위기를 타파할 방법


목차를 보시면 알겠지만 '잉여인간', '열정페이', '랜선' 등의 신조어가 가득합니다. 랜선같은 경우에는 사실 하나의 단어로 쓰이기 보단 접두사로 많이 활용되지만요. 이 모두를 소개할 순 없고, 제가 제법 감명깊게 봤던 고찰 두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다룰 단어는 '열정페이'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열정페이란 노동의 가치보다 작은 월급을 지급한 후, 이에 대해 항의하면 "열정이 없다."며 변명을 둘러대던 현상에서 발원한 단어로 압니다. 아닐 수도 있으니 바른 어원을 아시는 분은 댓글 남겨주세요.


하여간 한동안 비꼬는 용어로 젊은 세대에서 쓰이다가, 요새는 의미가 좀 더 확장되어 노동의 가치보다 월급을 적게 지급하면 모두 열정페이라고 부르곤 하더군요. 열정을 갖고 일했는데 봉급을 적게 주든, 노동을 한 후 적게 봉급을 주고 부족한 열정 탓을 하든, 그냥 돈을 적게 주든, 모두 노동의 가치를 낮추는 행위임에는 분명하죠.




이런 열정페이의 근원은 주로 비정규직 또는 인턴 수행 시 일어나는 데, 인턴은 다들 아시다시피 예전에는 의과대학에서 쓰이던 단어죠. 의사는 전통적인 도제식(徒弟式) 교육을 수행하는 직업군입니다. 여기서 도제식 교육이란 서양 중세의 도제제도에서 기원한 교육 방법으로, 스승와 제자가 현장에서 일을 수행하며 제자는 배우면서 숙련도를 기르고, 스승은 가르치면서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을 일컫습니다. 그러니 인턴은 단순히 말해 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가르침도 받는 노동자를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숙련도가 덜한 인턴은 보수를 짜게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숙련도가 낮은 만큼 배울 것이 많고, 강의는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닌 만큼 그만큼의 비용을 급여에서 제(除)하죠. 그래서 인턴은 급여가 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이겁니다. 급여를 제대로 지불했는지에 대한 여부죠. 급여가 짠 건 알겠지만, 급여가 합당한 만큼 지불된 것인지를 따져야한다는 말입니다.




이 책에서는 열정페이인지 아닌 지를 고민할 때, 세 가지를 염두하면 좋다고 조언합니다. 첫 번째는 피교육생이냐, 혹은 근로자냐를 구분해야 한다고 하죠. 물론 일하면서 배울 수도 있기 때문에, 얼마나 배우고 얼마나 일하는지 비중을 따질 때도 있죠. 그러면 피교육생인지 근로자인지를 어떻게 따지냐면, 간단합니다. 그 회사에서 자신을 뺐을 때, 회사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면 피교육생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빠졌을 경우 인원을 확충하거나 회사가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을 경우 근로자죠.


이런 경우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해야 된다고 조언합니다.




두 번째로는 해당 업무가 인턴 과정을 반드시 필요로 하느냐를 들 수 있습니다. 특별한 교육이 필요없는 단순 업무는 인턴쉽을 운영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도 인턴 과정을 운영한다면,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든 노동은 가치가 있지만, 그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특정 스킬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죠. 예를 들어 실험 중에 파이펫을 사용한다고 하면 파이펫을 장기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정 스킬이 요구됩니다. 인턴 과정이 필요하죠.



세 번째는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는 모자란 경우죠. 요새 노동시장은 수요가 작으니 공급이 넘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업은 갑(甲)이 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서죠. 만일 기업이 이 점을 이용하여 노동력을 착취한다면 열정페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열정페이를 기업의 '지속가능조직(Going concern)'으로서의 자기 부정이라고 표현합니다. 기업에서 훌륭한 근로자로 성장할 잠재력을 보고 지원자를 뽑았다면, 이 잠재력에 대한 투자를 하면서 근로자를 성장시켜야 하죠. 그러나 이런 잠재력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노동력만 뽑아내고 잘라내면, 이윤을 창출하는 지속가능조직으로서의 자기 부정에 해당하므로 열정페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겁니다.


두 번째와도 살짝 엮이는 지점이 있죠. 인턴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데도 인턴을 뽑았다면, 또는 잠재력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비해 턱없이 작은 보상을 해준 뒤 해고한다면, 당연히 열정페이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동에 대한 작은 보상, 지원자의 잠재력에 대해 투자하지 않는 모순은 곧 조직을 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지속가능조직에 대한 자기부정이죠.


한 개인에게도 비슷한 얘기죠. 현실에 급급해서 미래에 투자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는 지점이 올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그래서 제법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 다음에 살펴볼 단어는 '기레기'입니다. 기레기는 기자+쓰레기를 합성한 신조어죠. 기레기는 흔히 기사거리도 아닌 내용을 기사로 실어내거나, 거짓을 보도하거나, 과장하거나, 제목과 다른 내용을 적거나, 흔히 '어그로를 끌기 위해'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 등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글을 아무나 쓰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의 비율이 적어지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봅니다. 문해력의 하락도 있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요.


언론은 흔히 '제 4 부'로 불린다고 하네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이은 제 4의 부(部)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지만, 앞서 세 부(部)에 비해서는 책임도 적죠. 그러나 언론은 '언론의 자유'를 필두로 자신들의 기사 발행을 정당화하곤 합니다. 물론 발행 자체는 정당화될 순 있겠지만, 그 발행으로 인해 생기는 패악을 정당화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패악질을 가만히 두고볼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겠죠.




공자는 유교를 창시한 시조로 여겨집니다. 사실 공자는 새로운 사상을 창조했다기보단, 기존 사상을 잘 엮어서 집대성한 사람에 가깝습니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스티브 잡스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네요. 스티브 잡스는 기존에 있던 기술을 엮어서 기존에 있던 아이디어를 깔끔하게 가다듬은 사람이죠. 기존에도 비슷한 폼팩터는 있었습니다. 공자도 비슷했죠. 기존에 있던 전통과 관점을 잘 가다듬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이 둘은 후대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죠.


공자는 그런데 신기하게도 직접 집필한 책이 몇 개 안 됩니다. 그 유명한 논어도 예상 외로 공자가 쓴 것이 아니라, 공자의 말씀을 후대 제자가 엮어서 내놓은 책이죠. 예를 들어 무함마드의 하디스와 비슷하죠. 공자가 직접 집필한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가 '춘추(春秋)'입니다. 봄 춘 春, 가을 추 秋를 사용해서 춘추입니다. 시간의 변화를 계절에 비유했죠. 시적인 표현인데, 춘추시대의 춘추가 이 춘추에서 왔다고 합니다. 즉, 책 춘추는 춘추시대를 다룬 얘기죠. 정확히는 노(魯)나라를 다루는 책입니다.




공자는 춘추를 집필하고 매우 뿌듯해 했다고 하는데, 이유는 난신적자의 출현이 책 춘추에 의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줄어들었는 지는 의문이지만요. 그러나 후세 춘추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이 책이 다른 의미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춘추필법(春秋筆法)'이 그것입니다. 춘추를 저술할 때 사용되었던 원칙들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총 3 가지인데, '기사(記事), 정명(正名), 포폄(褒貶)'으로 정리됩니다.




기사는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사 Article의 어원입니다. 정명은 정명론(正名論)에 근거하여 작성할 것을 주문하는 저술법입니다. 정명론이란 단순히 말해 이름에 걸맞는 내용이나 역할을 갖고 있느냐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왕이 왕답게 행동해야지 시정 잡배와 같이 행동해선 안될 겁니다.


한 편 포폄은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나무라는 저술 방법입니다. 어떤 정치인의 긍정적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단점을 숨기거나, 혹은 억지로 합리화하거나, 장점을 부풀려 단점을 덮어버리면 안 되죠. 그렇다고 어떤 범죄자의 단점을 강조하기 위해 선행마저 악의가 있었다는 식으로 몰면 안 됩니다. 즉,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나눠 저술해야 하는 거죠.


이런 춘추필법 '동호지필(董狐之筆)'의 영향을 받았는데, 동호지필 또한 동호라는 한 사관의 역사서 집필 방법을 말합니다. 공자는 이 집필법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였다고 하네요.





한 편 저자는 단어 기레기를 다루는 소단원에서, 주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끝을 향해 달립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성이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잘 간직하면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현에 가까워지지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그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짐승이 되어간다."


양심을 버리고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며 시류에 편승하는 기레기에 꽂아넣는 비수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물론 위에서 소개한 2개의 신조어 외에도, 목차로 정리된 15개의 신조어 외에도 더 많은 신조어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신조어들은 여러 사회 현상을 반영하며 여러 세대의 공감을 얻었겠죠. 그러니 그 생명력을 유지하며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살아 숨쉬고 있을 겁니다.


이 책은 신조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했던 기레기 편에서는 기사의 의미와 기록이 어떤 기준을 갖고 발전해왔는 지를 알 수 있죠. 또한 그런 기준이 현대에는 어떤 가치와 연결되는 지를 얼핏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열정페이 편에서는 어떤가요. 우리는 인턴이 어떻게 합리화되는 지, 그리고 어떤 인턴 과정은 왜 불합리한지, 그리고 그 불합리한 인턴과정이 왜 노동력 착취를 가져오는 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도구를 얻었죠.

이 책에는 이런 여러 신조어를 뒷받침하는 이면을 소개합니다. 때로는 어원으로, 때로는 사회 현상으로 신조어를 살펴보며 그 이면에 녹아있는 사상을 읊어냅니다. 또한 이런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까지 여유롭게 흘러가죠. 글을 보면 적어도 기승전결에 대한 불만은 없을 정도로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에도 몇 가지 단점은 있었죠. 우선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 에둘러 합리화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 사안을 직접적으로 다룬 건 아니지만, 분명 민감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방어를 한 느낌이 있죠. 충분히 서술 상 피할 수도 있었는데 왜 집어넣었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일부 파트에서만 그런 거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습니다.


두 번째로는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방법론을 마지막에 제시했는데, 이게 가능한가 싶었죠.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는 논다)'을 다루면서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필요성, 인문학과 다른 학문을 융합하는 사고를 기르는 법을 배양하는 일련의 방법을 서술해놨습니다. 참신하고 정말 좋지만, 학습 강도나 방법론을 고려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필요성에 대한 의문도 들었구요. 필요했다면 이미 취업 전문 교육 기관으로 거듭난 대학에서 전부터 반영해서 가르쳤을 겁니다.


그리고 '1코노미'는 주변에서 쓴 적이 없어서 실제로 많이 쓰이는 용어인지는 모르겠네요. 혼밥, 혼코노 이런 건 많이 쓰이는데 차라리 혼밥을 주제어로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자체는 정말 좋았지만, 마지막에 인문학 위기에 대한 절박하고 강한 주장으로 인해서 머릿 속으로 물음표를 계속 그리게 만드는 이었습니다. 그 부분만 아니라면 나머지는 통찰도 많이 주고 괜찮은 서적입니다.

추천 독자는 '넷 상에서 통용되는 신조어에 대한 통찰을 가볍게 얻고 싶은 독자'입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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