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론 세미나의 실패는 대개 선명하지 않은 목적의식과 이론에의 편향에서 비롯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문화이론 세미나에서는 목적의식과 이론과 실천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이론 세미나의 커리큘럼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작성해보았다.

1. 문화이론 세미나의 목표

세미나의 부제는 '문화, 이데올로기, 민주주의'다. 문화라는 영역에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감추어져 있는지 찾아내고 분석하는 것, 더 나아가 문화에 의한, 문화를 위한, 그리고 문화의 민주주의를 성취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것이 세미나의 대략적인 목표다.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치체제를 바꾸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정치적 영역의 민주화를 얻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80년대였다. 그리고 위선적이긴 했어도 우리 사회는 제도적 측면의 민주화를 어느정도 성취했다. 하지만 그런 제도적 민주화의 성취가 우리의 일상생활을 민주적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여성들은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질서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 청소년은 여전히 인권을 무시당하며 입시전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연, 학연이라는 비뚤어진 관행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제도적 민주화로 인해 우리의 삶은 진정 자유로워졌는가? 진정한 자유는 복합적이며 중층적인 과정인 삶의 전체에서 다차원적으로 해방될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해방은 문화적 층위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를 우리의 생활양식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이고 진보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문화의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문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우리 삶의 총체적 해방을 지향하고자 할 때 우리가 넘어야할 장애물이 있다. 그 장애물 또한 '문화'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문화를 통해 해방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처럼 지배계급 또한 문화를 통해 우리를 길들이려고 한다. 대중문화, 상업성 문화의 범람같이 눈에 보이는 현상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주입되는 갖가지 이데올로기를 통해 권력은 우리를 '문화화' 시키고 지배하려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권력의 음모를 밝혀내기 위해 우리는 많은 문화이론가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가장 일상적이면서 또한 가장 은밀한 영역인 문화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상당한 통찰력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가 문화이론을 학습하면서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통찰과 반성일 것이다.
 
2. 분석틀의 학습과 그 적용

문화'이론' 세미나에서는 당연히 이론을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목표가 달성되었다 할 수 있다. 그 이론의 적용은 문화이론 세미나가 아닌 다른 세미나에서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론의 학습과 그 적용이 유기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커리큘럼에서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아쉽지만 이론보다는 그 적용에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
이론은 문화를 분석할 수 있는 분석틀 정도로 이해하고 그것이 실제 문화분석에서 어떻게 이용되며 그 효과와 의미는 무엇인지를 찾아보도록 한다. 이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화이론 세미나보다는 철학이나 현대사상 세미나를 통해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이론 세미나 첫 번째 시간: Introduction - 문화이론의 지형도>
 
  ◇주교재:『대중문화의 이해』(김창남, 한울) 中 제1장~ 제6장
◇참고자료 (학회교사나 선배들은 미리 읽고 공부하면 좋겠죠? ^^)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대중문화의 패러다임』(원용진, 한나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존 스토리, 현실문화연구)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민음사) 中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프랑스 철학과 우리3』(당대) 中 김동수,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시대와 철학 7호』中 홍기숙,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관한 연구

Introduction으로 김창남의『대중문화의 이해』앞부분을 읽어보자. 문화의 정의, 대중문화의 엘리트주의적 관점, 대중문화와 지배이데올로기에 관해 간략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문화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야 문화이론 세미나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3. 문화이론의 지형도

<대중 사회론> 매튜 아놀드, 리비스 (고급문화-저급문화, 문화적 엘리트주의)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                                   발전, 극복:그람시
    프랑크푸르트 학파                         벤야민                    스튜어트 홀                                                        문화주의
         알튀세르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이론            
        구조주의 문화이론           (후기구조주의)
                                                                               부르디외

  * 페미니즘 문화이론        

 현재 영향력을 가지는 문화이론들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여러 문화이론들이 계급을 중시하고,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위를 밝혀내고, 개인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조화되는 과정을 분석하는데 주력하는 것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 이전의 문화이론은 매튜 아놀드나 리비스등으로 대표되는 대중사회론이라 할 수 있다. 이 견해는 고급문화를 중시하면서 대중문화를 질 낮은 문화로 취급하면서 대중문화로부터 고급문화를 구해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급문화를 접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들의 문화 엘리트주의적 견해는 오늘날 많은 영향력을 가지진 않는다. 하지만 대중문화가 범람하면서 문화가 자본의 이해에 지배되는 것이 점점 심해지는 현실에서 무조건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최근의 문화이론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일정 정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좌측의 이론들이 지배 이데올로기 분석에 중점을 두면서 구조의 견고함을 드러내는데 비해 가운데 부분의 벤야민, 문화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이론의 일부는 그 와중에서도 개인의 자율성과 능동성, 가능성을 중시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 수 있다. 그리고 구조의 견고함과 개인의 자율성의 대립을 극복,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이론을 제공한 사람이 그람시다.
스튜어트 홀은 영국 문화주의를 계승하면서 구조주의와 그람시,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여 문화이론을 발전시킨 이론가이며, 부르디외는 구조주의의 의미를 새롭게 하면서 그람시적인 헤게모니 갈등과 투쟁을 중시하는 학자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문화이론들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위치지울 수는 없지만 여러 문화이론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문화이론과 문화분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개념>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 토대-상부구조, 이데올로기
▷프랑크푸르트 학파(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문화산업 비판
▷발터 벤야민: 대량복제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해방의 가능성. 아우라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구조주의(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문화주의(호가트, 톰슨)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이론(보드리야르, 프레데릭 제임슨, 푸코)

너무 많은 내용을 짧게 다루어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저 본격적인 세미나로 들어가기 전에 문화이론의 흐름에 대한 개략적인 해설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학회교사가 간단한 발제문을 만들어서 설명해주고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마르크스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알튀세르 등에 대해서만 간단한 토론을 한다. 이론의 이해는 <대중문화의 이해>에 실려있는 정도로만 해도 좋다. 

<문화이론 세미나 두 번째 날>

②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문화영역에서의 헤게모니와 진지전의 가능성

◇주교재: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유팔무, 김호기 편, 한울) 中 김성국,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학회평론 제5호』(93년 겨울) 中 김현우, 현 문화운동 논의에서의 알튀세르와 그람시의 적용성 비교
『대중문화와 문화실천』(김창남, 한울) 中 제2부 결론: 대중의 문화실천과 대중문화의 저항성

◇심화학습을 위하여)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유팔무, 김호기 편, 한울)
  :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시민사회론까지 다루고 있다.
『국가/계급/헤게모니』(임영일 편, 풀빛)
『안토니오 그람시의 단층들』(앤더슨 외/ 신진욱 외 편역, 갈무리)
『그람시의 여백』(르네이트 홀럽, 이후)


그람시는 러시아 혁명과 조건과 상황이 다른 서구에서 어떻게 하면 혁명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고 한 사상가이자 혁명가다. 그런 그람시를 문화이론에 적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은 김성국의 글을 통해서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에 대해 이해해보자.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피지배계급이 일정정도 지배계급의 지배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헤게모니란 한 사회계급이 자신의 세계관을 확산시키고 대중화함으로써 동의를 얻고, 이것을 통해 전체사회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도력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회는 강제력에 의해 지배되는 것도 있지만 이러한 헤게모니에 의한 지배가 더 본질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헤게모니라는 것은 어느 사회계급 일방에 의해 소유되고 조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헤게모니 지배를 피지배계급에게 끊임없이 보증받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헤게모니를 둘러싼 투쟁은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고 혁명이란 이러한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끊임없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헤게모니 지배가 핵심적이라면 투쟁의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그람시는 헤게모니을 둘러싼 이 끊임없는 투쟁을 '진지전'이라고 표현한다. 이데올로기나 교육을 통해서 기존 헤게모니를 파괴하고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우의 글은 그람시가 문화운동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알튀세르의 이론과 비교하여 그람시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다양한 '수용'의 양태를 보여주면서 각각의 층위에서 의미있는 헤게모니 투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현우는 김창남의 『대중문화와 문화실천』의 결과를 그람시를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기존의 문화운동 논의에서는 '대안의 추구' 수준만을 의미있는 저항이라고 상정하였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화운동을 이끌지 못하는 청소년, 노동자, 중년여성들의 문화수용-대중음악을 따라 부른다거나 들으면서 위안을 얻거나 하는-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다. 하지만 김창남은 여러 하위문화에서 일어나는 대중문화 수용이 비록 지배문화와 일정한 수준에서 타협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여러 층위의 투쟁을 부정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각의 층위에서 저항의 수준을 높여 대중을 대안추구의 단계로 이행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바로 그람시가 말했던 대항 헤게모니의 구축이고 지적 도덕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역사적 블록 형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람시의 이론이 문화이론에 적용되는 것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토론거리들을 가질 수 있다. 진지전이란 문화 영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혹은 유기적 지식인의 활동이 문화운동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현우가 인용했던 김창남의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김창남은 여러 하위문화에서의 대중문화 수용 각각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면 아래에서 아무리 저항의 층위를 높여간다해도 언젠가 수면위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의미있다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문화이론 세미나 세 번째 날>

③ 푸코의 권력이론: 우리의 신체에 작용하는 권력

◇주교재:
『경제와 사회 97년 가을호』中 양운덕, 푸코의 권력계보학: 서구의 근대적 주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윤평중, 교보문고) 中 제4부 미셸 푸코
『현대 철학의 흐름』(박정호, 양운덕, 이봉재, 조광제 엮음, 동녘) 中 10장 미셸 푸코

◇심화학습을 위하여) 『감시와 처벌』(나남)
                    『성의 역사1: 앎의 의지』(나남)

주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푸코에 따른다면 그 자체로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나"는 없다. "나"는 의식이나 경향성에 의해 구성되어지는 존재다. 내가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나에게 어떤 "경향성"이 있는지 이해할 때 "나"는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의식이나 경향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외부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우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 주체 외부에서 주체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담론이다. 따라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담론, 즉 말들의 질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 외부의 구조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하나씩 밝히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제껏 고유하다 여기던 "나"라는 존재가 일순간 구조의 산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일 것은 없다. 푸코는 주체를 구성하는 담론을 통하여 인간에게 겸허함을 촉구했다면, 권력이론과 미시권력 개념을 통하여 저항할 수 있는 곳에서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아울러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윤평중의 글 1, 2장을 통해서 담론 개념을 파악하자. 이성과 비이성의 분리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왔는지 살펴본다면, 지금 우리의 인식체계 역시 시대적 조건 안에서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윤평중의 글 3, 4장과 양운덕의 글은 권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푸코는 독특한 권력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부정적이고 억압적인 힘이 아니다.
권력은 오히려 지식을 산출하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권력/지식이라 표기되는 이 생산적인 힘은 중심도 없고 소유자도 없다. 우리의 일상 곳곳에 편재하며 지식을 산출하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사고뿐만 아니라 육체도 지배한다(감시와 처벌을 참조).
즉 누군가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 권력자를 없애면 지금의 권력관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사회와 사회가 맺고 있는 복합적인 역학'관계' 내에서는 어디에나 권력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의 저항의 대상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거대권력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를 알게 모르게 길들이는 미시권력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푸코의 이론에 대해서는, 푸코의 저항 전략은 과연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지, 과연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담론인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이론 세미나 네 번째 날>

④ 부르디외Ⅰ: 아비투스, 장, 문화자본, 상징폭력 등 부르디외가 제기한 개념들에 대한 검토

◇주교재: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파트리스 보네위츠, 동문선) 中 3, 4, 5 장
◇참고교재: 『문화이론연구』(정재철 편저, 한나래) 中 제2장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문화자본」
◇심화학습을 위하여)
『문화와 권력-부르디외 사회학의 이해』(현택수 외, 나남)
『경제와 사회 96년 겨울 호』중 中 현택수,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이론
『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사』(부르디외, 새물결)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부르디외, 새물결)


문화이론에서 부르디외의 위치는 각별하면서도 독특하다 할 수 있다. 문화이론의 대표적인 흐름은 알튀세르로 대표되는 구조의 결정성을 강조하는 흐름과, 그람시로 대표되는 문화의 상대적 자율성을 옹호하는 흐름으로 나뉘어진다. 하지만 실제 문화와 구조와의 관계는 어느 한 입장만으로는 반쪽짜리 진실밖에 밝혀 낼 수가 없다.
문화와 구조 사이의 연결구조를 밝히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부르디외는 이 두 입장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구체적인 역사연구와 조사자료의 통계분석을 근거로 지적 실천이 갖는 상대적 자율성의 역사적 뿌리와 경제적 계급적 결정요인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즉, 부르디외는 우리의 인식과 계급이 역사적으로 대개는 경제적 계급적 요인에 의해 구조화되어 왔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구조 속의 행위자들이 나름대로 전략적 사고와 선택을 통하여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론은 방대한 통계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확고한 신뢰감을 형성시켜 준다는 점이 또한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르디외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계급 재생산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부르디외 이론의 궁극적인 목적을 찾는다면 그것은 현 자본주의 사회 계급의 재생산구조를 밝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람시가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을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지배에서 찾으려 했다면 부르디외는 우리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계급구조에 편입되어 재생산되는지에 대하여 찾아내려는 것이다.
이때의 계급이란 단순한 경제적 관계 이상을 의미한다. 계급이란 힘과 '의미'의 관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인 '의미', 다른 말로 한다면 우리의 문화적 환경이다. 개인이 어렸을때부터 어떤 환경과 교육 속에서 어떤 다른 의미를 획득하고 취향을 형성하게 되었는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상류계급이 경제자본을 바탕으로 학력자본을 획득하고, 고상한 취향마저 형성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지배를 인정받는 메커니즘의 실체, 그리고 노동자 계급은 벼락부자가 되어도 상류계급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원인들을 밝혀가다 보면 놀랄만큼 냉정하게 현실의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비투스, 장, 상징자본, 상징폭력 등의 부르디외의 개념들은 상당히 낯선 것이기에 1회의 세미나 안에서 부르디외가 제기하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부르디외의 저작들은 많이 번역되어 나온데 비해 부르디외 입문서나 해설서는 거의 없다시피 해서 초보자는 접근이 어렵다. 그나마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이 거의 유일한 책이지 않을까 싶다.
  
<문화이론 세미나 다섯 번째 날>

⑤부르디외 Ⅱ: 재생산과 대학문화 분석

◇주교재:『부르디외 사회학 입문』(파트리스 보네위츠, 동문선) 中 6 장
      『경제와 사회 33호』(97년 봄호) 中 구본홍·이철승·정동철, 객관적 기회와 주관적 희망
◇참고자료:


「주관적 기회와 객관적 희망」은 부르디외 이론을 이용하여 90년대 대학사회의 변화와 문화, 그리고 이러한 조건하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대학생들의 전략과 문화양식의 차이를 분석하고 있다.
글 자체로 흥미진진할뿐더러 우리가 매일매일 부딪치는 일상의 문제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저자들은 90년대 대학문화의 구조적 조건과 특징을 소비대중문화와 학점중심주의로 보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학생들은 외국어, 컴퓨터, 자격증, 인기 유망학과 등의 차별화된 자본획득전략을 구사하고, 계급에 따라 취향의 다양화가 나타난다고 본다.
이 글을 중심으로 우리 주변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찾아 이야기해 보고, 이런 계급 재생산 구조를 파괴하기 위한 대학의 역할이나 의미에 대해서도 토론할 수 있다.
 

 

<문화이론 세미나 여섯째 날>

⑥ 정리: 문화사회를 위하여


 ◇주교재: 『문화사회를 위하여』(심광현 이동현 편저, 문화과학사) 중 中 제1부 문화사회란
            무엇인가
 ◇참고교재)
 『혁명의 문화사』(강내희 외, 이후) 中「21세기의 혁명-'문화사회'라는 프로젝트」
 『작은 풍요』(강수돌, 이후) 中 제1부 「문제의 뿌리」, 제4부 「발상의 전환」


그람시부터 부르디외까지 문화이론을 살펴보면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우리의 역사와 사회를 기존의 '정치적'인 것이나 '경제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적인' 것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저항의 방식도 정치투쟁이나 경제투쟁이 아닌 문화투쟁의 측면을 중요시하며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시 세미나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그처럼 문화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문화로 투쟁한다는 것은 사실 말뿐이게 되기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 내일 끼니가 걱정인 사람, 하루 종일 과중한 노동으로 심신이 피곤한 사람, 실업자인 사람들에게 문화투쟁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강내희는 우리가 문화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라고 이야기한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이 이루어져서 각기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때 문화사회를 만들 여유도 생기고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운동을 꿈꾸는 사람은 노동운동과 반드시 연대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전 에너지를 노동운동에 우선적으로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노동운동에 좀 더 힘을 실어줄 필요는 있지만, 그 노동운동의 방식이 '문화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거대한 목표를 위해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죽이는 일, 조직 내부의 억압관계, 차별관계를 무시하는 일, 미래를 위해 지금의 문화적 욕구들을 억누르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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