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 읽기와 이론학습

김 현 우
사회 90, 본지 편집위원


1. 들어가며

남한에 알튀세르가 본격적으로 소개된지도 대략 3년여가 되었다. 언제부터가 '본격적으로'인가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간간이 네오맑스주의나 구조주의의 일부로 주변적으로 소개된 것들과 윤소영의 [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88년)를 위시한 연구를 제외한다면, {맑스를 위하여}(백의)의 출간 이후 그의 저작의 잇달은 출간과 논의가 시작된 90년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알튀세르 수입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모로 무척이나 기묘하고도 복잡한 인물이었다. 그의 정치역정과 인생역정이 그러했고, 프랑스에서의 오랜 침묵과 금기(그의 죽음에 즈음한 회고작업을 제외한다면)와는 대조적으로 남한에 상륙한--더군다나 남한 계투의 패배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때를 같이한--이 땅의 분위기 또한 그러했다.
우리도 잘 아는 어떤 교수는 "알튀세르가 스타킹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강의 중에 그의 이론을 소개한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지금의 소위 '알튀세르 열풍'을 생각한다면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읽어보면 쓴웃음마저 나오는 다음의 인용문은 88년말에 출판된 책의 역자서문 중 일부인데, 그 당시의 지적 분위기가 지금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은 역자의 오류나 무지를 지적하고자 하는 바도 아니며, 역자 또한 최근의 개정판에서는 관련 구절을 대폭 수정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 책이 알튀세르의 구조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쓰여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구조주의 일반이 갖는 인식론적 문제점을 이 책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변증법적 인식력을 가진 독자라면 이러한 점들을 쉽게 간파하리라. 문제점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계철학사Ⅱ,Ⅲ}(녹두, 1986)이나 {철학의 기초이론}(두레, 1987), {사적유물론}(새길, 1988)을 참조하면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맑스를 위하여}와 {자본론 읽기}가 출간되었을 때, 후학들은 낯선 이름과 함께 잘 이해되지도 않는 생소한 여러 개념들을 진지하게 따라나갔다. 테제화된 변증법적 유물론과 붕괴론적 사구체론에 '자생적으로' 회의를 느끼고 있던 우리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바랬고, 알튀세르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발리바르의 역사유물론에 관한 저작이나 몇가지 해설서의 출간은 자료에 목말라하던 이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일이었다.
이것은 이 땅에 이른바 '알튀세르 르네상스'를 낳았다. 이론투쟁의 침체와 사회과학 서적의 판매부진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의 저작과 해설서들은 예외를 기록했으며, 단기간에 그렇게 집중적인 소개와 연구가 이루어진 이론가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석박사 논문도 그에 관한 내용에 할애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긍정적으로만, 건강하게만 이루어진 과정이었는지, 그리고 실속있는 결과만을 낳았는지는 의심해 볼 일이다. 알튀세르를 다시 읽으며 '맑스주의의 새로운 전화'를 이루자는 주장은 너무 이론을 신비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알튀세리안들의 논의들이 노동자계급의 해방투쟁에 별 도움을 못주는 것은 아닌지는 의심해 볼 일이다. 중층결정과 ISA라는 개념이 마치 문화와 이데올로기 연구에 운동의 사활이 걸린 듯한 문화열풍에 도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면에 토대분석의 임무는 경제결정론 쯤으로 전락되고 있지 않은지는 의심해 볼 일이다. 혹은 신식국독자론자들이 혹은 포스트론자들이 알튀세르를 자기 구미에 맞게 추출 윤색하여 결과적으로 실천가나 후학들이 알튀세르를 멀리하거나 피상적으로 지나치게 하고마는 역편향을 낳지는 않았는지는 의심해 볼 일이다.
이제 알튀세르의 '열풍'도 어느정도 사그라드는 것 같다. 소개와 논의의 임계치를 어느정도 충족시키기도 했지만 다른 다양한 이론적 관심들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이른바 알튀세르 열풍에 대한 정리와 평가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열풍이 퇴조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알튀세르 열풍이 한때의 유행일 수는 있어도 한때의 해프닝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알튀세르에 대한 관심은 맑스-레닌이나 그람시에 대한 관심 만큼이나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이 알튀세르 이론에 대한 총괄적이고 구체적인 소개나 평가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작업이라면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전문적 이론가들의 몫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학부에서의 이론학습, 특히 학회에서의 학습에서 알튀세르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즉 알튀세르의 이론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과 '얻을 수 없는 것', 그리고 학습에 있어서의 몇가지 난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한 약간의 관점을 제안해 보려는 것이다.

2. 피할 것인가, 말 것인가?

쓰는 이마다 다른 함의를 가지지만 어쨌든 표현 하나는 공인되는 이른바 '맑스주의의 위기'의 시대에 있어, 모두들 대안적 학습내용과 방식을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노릇일런지 모른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모색의 와중에 알튀세르라는 인물은 '죽은' 비유로 치자면 '뜨거운 감자' 처지에 놓여있는 듯이 보인다. 몇몇은 아주 적극적으로--그것도 서로 다른 이유에서--알튀세르를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몇몇은 또한 적극적으로--또한 몇가지 이유에서--알튀세르는 안보는 편이 좋다고 말한다.
맑스주의에 대한 입장이 알튀세르에 대한 입장으로 드러나고 판단되어 지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알튀세르가 원한 것이었을까? '알튀세르는 피해가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대안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대안은 원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저작까지를 원전--맑스, 엥겔스, 레닌의 저작만이 원전인가? 혹은 스탈린은? 그람시는? 마오, 트로츠키는?--으로 포함시킬 것인가도 문제려니와, 원전의 직독해가 '진리'나 '과학'을 보증해 주리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맑스주의 전통을 하나의 교리체제로서 텍스트의 선집과 동일시 한다는 것은 최악의 교조주의에 이르는 길을 여는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동일화는 텍스트의 선정을 지배하는 원리가 존재함을 전제로 할 것이지만, 이런 원리들은 결코 자명하지 않을 뿐더러 그 선정은 자의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그리고 더 우세하다고 생각되는 입장은 '알튀세르는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즉 그냥 피해갈 수 없는 정도인지, 아니면 정면으로 부딪히고 적극 흡수해야할 대상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심지어 '알-바주의'라는 냉소적 표현까지도 등장하는데, "알튀세르를 통해서 맑스주의를 재구성하자는 것"을 시도하는 이들은 이 정반대편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이들도 몇가지 해명할 점을 남긴다고 생각되는데, 왜 하필이면 다른 이론가가 아닌 '알튀세르를 통해서'인지, 그리고 '어떤 알튀세르'--전기 또는 후기 알튀세르? 아니면 사실은 후기 발리바르?--를 '어떻게' 통해서 인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러한 시도가 문제제기성인지, 아니면 맑스주의의 전화와 관련한 확실한 경과점으로서인지에 대한 명확한 응답이 그것이다. 물론 현하의 학습풍토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이는 분명 책임질 수 없는 '정치적 개입'이 될 터이기에 이쯤에서 그치도록 하자.
그러나 최근에 접하게 된 어떤 커리큘럼 자료집에서는 철학뿐만 아니라 정치학원론, 국가론까지 알튀세르의 후기저작 일색으로 채워넣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우리의 정치학 이해에 있어 알튀세르의 {당내에서 더이상 지속될 수 없는 것들}이 맑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이나 레닌의 정치학 저작들을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체적인 입장이 과연 견실한 혁명가가 수용할만한 것인지에 대한 지적도 사족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알튀세르는 피해갈 수 없다'의 편에 서있는 이들에게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은, 스스로 경계하면서도 알튀세르에 대해 '진리의 담지자'로서의 표상을 가지는 것이라 할 것이다. '진리의 담지자로서의 맑스'라는 관념이 낳는 편향을 극복하고자 알튀세르의 문제제기로 우회를 감행한 것이 역설적인 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3. 알튀세르 독해에 있어 고려할 점들

(1) '진리의 담지자'로서의 알튀세르 부수기

이제부터의 논의는 G.엘리어트의 {이론의 우회}와 A.캘리니코스의 {맑스주의의 미래는 있는가}의 입장을 기반으로 하려 한다. 왜냐하면 이 두권이 지금까지 소개된 알튀세르 이론의 분석 비판서 중 가장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론의 우회}는 엘리어트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스스로 "'反-反알튀세르주의'라고 필자가 특징적으로 부르려는 그런 입장"에 서서, 맑스주의에 대한 알튀세르 이론의 잠정적인 대차대조표 작성을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큰 맘 먹고 거금(만원)을 들여 사볼 만한 책이며, 차분히 읽어 보면 이 글을 읽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으리라 확신한다. 캘리니코스의 책은 E.P.톰슨에 어느정도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그와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즉 알튀세르를 노동계급의 실천과는 전혀 무관한 스콜라적인 인물로 매도하는 톰슨의 입장에는 반대하는 그런 책이다. {맑스주의의 미래는 있는가}라는 책에 "알튀세르"라는 글자가 부제로라도 들어갔더라면 훨씬 많이 팔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문제는 번역이 정말 엉망이라는 것인데 For Marx를 {마르크스론}으로 번역한 것은 그 중 애교인 편이다. 결정적인 것은 후주가 번역이 안된 채 영문 그대로 실려있다는 점이다.
알튀세르를 피해갈 수 없다는 데에는 일단 동의하도록 하자. 그 이유는 무엇인가?
캘리니코스는 알튀세르의 영향은 스웨덴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전 유럽의 사회주의 지식인들에게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분명코 지난 15년간의 "맑스로 돌아가자"는 운동 속에서 역사유물론의 기본명제를 재정립하고자 시도했던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 알튀세르 개인에게 한정시킬 수 있는 이유가 아닐 것이다. 즉 그로부터 비롯되거나 직간접적으로 영향받은 많은 흐름들이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페리 앤더슨도 83년에 "알튀세르주의적 조류는 아마도 가장 강력하게 존속해온" 학파라고 평가한 바 있다. 엘리어트의 글에서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평가한 부분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알튀세르의 맑스 재독해는, 비록 그것이 아무리 원문의 맥락에 저의를 개입시킨 독해였으며 이론적으로 논쟁적인 독해였을지라도, {자본론}의 정당한 탁월성을 복구하면서, 맑스주의자들이 맑스의 초기저작에 대한 무비판적 숭배에서 벗어나서 후기저작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다. 알튀세르의 시기구분이 도발적 행위였든 아니면 하나의 자극이었든 간에,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은 역사유물론의 발생 및 발전에 관해 실질적으로 능가할 수 없는 수준의 논쟁과 연구를 유발하였던 것이다.
둘째, 알튀세르의 합리주의적 인식론과 이와 결합된 독해 및 비판양식--특히 철학에 대한 알튀세르의 초기해석--은 과학적 이론의 인식상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주요한 장점을 지니고 있음으로써, 시기적절하게도 세로운 세대의 맑스주의자들에게 맑스의 포부가 새로운 과학을 수립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일깨우면서, 스탈린주의적 실용주의에게 과학을 양도하지 않을 수 있었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반경험주의적 인식론이 취한 최종적인 형태가 애당초에는 회피하려고 했던 관념론과 상대주의와 제휴하기 시작하였을지라도, 과학철학에 관한 맑스주의적 성찰에서 이룩된 결정적인 진보를 대표하였다.
세째, 프레드릭 제임슨이 사회구성체의 개념화에서 "알튀세르적 혁명"이라고 간주한 것으로, 알튀세르가 그 발견의 영예를 맑스에게로 돌린 "대륙", 즉 역사라는 대륙의 몇몇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도록 아주 다양한 분야의 맑스주의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저작,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문학이론, 담론이론, 법이론에 이르기 까지. 쇠틀러, 플란차스, 라클라우, 발리바르, 아글리에타, 리피에츠, 카스텔, 이글턴, 폐쇠 등은 우리도 떠올릴 수 있는 이름들이다. 부분적으로 알튀세르주의적인 빙산은 미학, 문화연구, 문학비평, 대중매체 및 영화연구 등에도 뻗쳐있는 것이다.
네째, 알튀세르는 스탈린주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으며, 알튀세르주의가 스탈린주의의 결과일지라도, 스탈린주의의 연속은 아니다. 즉 맑스주의 이론의 탈스탈린화에 알튀세르가 기여하는 지점에 대한 평가이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는 우리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학습에 알튀세르라는 인물이 가로 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의 '수입'의 사후적 정당성은 후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알튀세르 학습은 어렵다. 그리고 위험성이 존재한다. 그 어려움의 원인은 몇가지가 있겠으나, 알튀세르 이론의 계기의 복합성, 알튀세르 자신의 입장변경(전기/후기), 개입수단의 복합성(알튀세르 특유의 폭넓은 지성사 전유)에 대한 이해 곤란, 그리고 사소하게는 이론 수입 초기에 불가피한 수많은 오역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위험성은 알튀세르 맑스주의의 몇가지 '나쁜 습관'들에 주로 기인하는 것인데, 엘리어트는 또한 이를 네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알튀세르 스스로 그 자체의 출현에 앞선 시기는 '이론의 백지상태'였다고 암시한 데서, 그리고 (맑스, 레닌, 마오를 제외한) 맑스주의의 역사는 알튀세르 이전의 모든 사람들이 인간주의적-역사주의자로서 갇혀있던 어둠이었다고 묘사한데서 드러나듯이 그의 지적 배타성이 문제가 된다. 이 지적 오만(?)으로 주변화된 것은 바로 그였다.
둘째, 알튀세르주의의 특징은 맑스주의의 권능을 지나치게 확신하고 이 권능에 대해 근본적인 신중함을 전혀 갖지 않았다. 이 권능에 대한 단정 속에는 인과응보의 씨앗이 들어있었다.
세째, 비록 알튀세르주의가 '교수들을 위한 맑스주의'라는 비난은 잘못이지만, 실제로 알튀세르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재구성에 따라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 프랑스 정세의 구체적인 분석을 결코 수행하지 않는 직무태만을 저질렀다.
네째, 알튀세르가 프랑스 맑스주의의 탈스탈린화에 엄청나게 기여했을지라도, 그 '마오주의화'는 이론적으로 퇴보적이며 정치적으로 위험한 혼란일 수 있다. 마오주의 중국에 대한 환상과 뒤이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하는 환멸이 그것이다.

그의 방법론을 철학적으로 문제삼는 이들도 많다. 알튀세르의 저서들은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이후 맑스주의 철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러나 바로 이러한 비교야말로 알튀세르의 저서들이 갖는 한계성과 위험성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루카치의 연구가 신칸트주의 철학과 베버의 사회학에서 도출한 범주들을 가지고 맑스의 기본이론들을 재구성하려다가 실패한 것처럼, 알튀세르의 연구도 역시 그의 이론체계의 몇몇 기본적 개념들 때문에 손상받고 있다는 것이다. 허나 모든 새로운--또한 그렇기 때문에 가치있는--이론적 시도는 그만큼의 위험성 또한 감수하기 마련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비판은 어느 정도 삭감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몇가지 '일반화된' 비난을 환기시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캘리니코스의 경우에는 S.홀(Stuart Hall)이 알튀세르 입장의 문제점을 4가지 논(isms) 즉, 경험론(empricism), 다원론(pluralism), 기능론(functionalism), 관념론(idealism)으로 요약한 것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상의 문제들은 알튀세르 학습에 있어서의 고려대상, 혹은 검증대상으로 삼으면 되는 것들이다. 이제 이보다 더 어렵고도 핵심적인 문제가 있으니 우리가 알튀세르의 이론으로부터 실제로 얻고자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것이 어려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60년대의 기세등등한 이론적 선언과 77년 이후의 심각하기 이를데 없는 자기부정의 대립 때문이다. 전자와 후자는 동전의 양면, 또는 인과응보로 설명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튀세르에게서 무언가를 섭취한다고 했을때 어느 쪽에 기반을 둘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엘리어트는 프랑스공산당과 마오주의 중국이라는 양대 지평이 알튀세르를 언제나 속박하였다는 것, 그리고 1965년 이후의 그의 거의 모든 저작이 궁극적으로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맑스를 위하여}와 {자본론 읽기}의 각주에 불과하였다는 것은 주목되어온 사실들이라고 평가한다. 1977년에 스스로 선언했던 '맑스주의의 위기'의 와중에서, 알튀세르는 또한 맑스주의와 레닌주의적 전통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으며, 그것의 입증이 알튀세르의 작업의 목적이었던, 그리고 알튀세르주의의 제 1조였던 '인식론적 단절'을 사실상 청산함으로써
알튀세르주의를 포기하였다. 비록 여러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때늦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 더이상 지속되어선 안될 것들]이 공산당의 전사 알튀세르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맑스주의]는 부지불식간에 맑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의 부고장을 썼던 셈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역사유물론은 출발부터 결함이 있었고, 맑스 이래로 발전되지 못했고, 스탈린 치하에서 왜곡되었고, 비극적 역사에 의해 위신이 떨어졌으며, 관념론으로 가득차 버렸다. 맑스주의는 애초에 공백과 난점을, 즉 잉여가치의 회계적 서술 및 변증법의 곤란, 국가론 정치이론의 부재 등을 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쩔 것인가? '새로운 전화'가 '대중운동'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자는 묘한 낙관론과 이어지는 침묵(좌절?)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기와 후기의 알튀세르는 같은 문제설정의 양면이기는 하되--물론 양 쪽에는 마오주의에 대한 환상과 좌절이라는 정치적 배경이 개입한다--후기에는 알튀세르주의를 특징짓는 요소들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게 된다. 이 이상으로 알튀세르 학습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필자의 생각은 초기 저작에 기반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학부 학회에서의 '알튀세르 학습'이라면, 그리고 앞에서 엘리어트가 알튀세르의 기여로 정당하게 평가했던 측면을 섭취하기 위한 학습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알튀세르 학습을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사전이해로서 필요한 것들을 짚어보았다고 한다면, 뒤늦기는 하지만 "우리가 알튀세르를 학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해 본다. 그의 기여를 다시 단순화하자면 결국은 문제를 던지는 방식, 그리고 그것과 결합된 몇가지 개념과 몇가지 영역에 걸친 불완전한 이론들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알튀세르에 대한 학습을 단순화하자면 그러한 것들을 이해하고 암송하거나, 습득하고 흉내내는, 그리고 동시에 상대화하거나 동일시하는 과정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튀세르를 읽으면서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하나는 이론이 주장된 맥락의 이해일 것이고, 또 하나는 개념의 이해일 것이다. 알튀세르에게 있어서 '개념의 이해'는 특히나 중요한데, 그에게 있어 '문제틀'이란 "개념들의 체계적 조합"이기 때문이다.

(2) 병 속의 메시지들--불완전한 이론들

알튀세르는 저술이란, 병 속에 메시지를 담아 망망대해로 던지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가 {맑스를 위하여}와 {자본론 읽기}의 형태로 전파시켰던 메시지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 것인가가 이제부터의 문제이다. 그의 불완전한 이론들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도 그 메시지를 잡으려면 망망대해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회가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이론적 메조키즘은 권장되어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몇가지 이론영역에 관하여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조악한 코멘트 정도이다.

1) 철학-과학철학

캘리니코스는 알튀세르가 혁명적 실천의 문제를 실천적, 정치적으로 회피함으로써 그의 이론적 논의에 끼친 효과는 심지어 그의 강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다소 과격하게 이야기하는데, 왜냐하면 알튀세르의 긍정적 업적이 놓여 있는 곳은 바로 정치적 실천의 문제와는 동떨어진 영역이랄 수 있는 변증법의 구조, 과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철학의 제2의 정의는 이론적 스탈린주의의 붕괴에 기여하거나 맑스주의 이론의 탈스탈린화를 도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적대물과 동일한 스펙트럼 상의 반대편 끝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의 위상에 대한 후기입장은 '철학의 발전'이라는 관념, 또는 철학의 체계화와 불완전성 간의 모순 긴장 관계를 무시하게 하는데, 득보다 실이 훨씬 큰 듯 하다. 어쨌든 알튀세르의 기여는 가장 주요하게는 철학-과학철학의 영역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테드 벤튼, 알렉스 캘리니코스, 앤드류 콜리에, 특히 로이 바스카(R.Bhaska) 등의 중요한 철학적, 과학철학적 저작들은 모두 알튀세르의 시도에 제각기 다른 정도로 빚지고 있으며, 그 정당성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알튀세르에 심취하던 국내 이론가들 중 일부가 과학철학에 몰두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현상이 아닐런지.

2) 사회구성체론

알튀세르는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 등의 표현을 써가며 역사유물론이 '역사철학'이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제한된 이론으로서의 맑스주의'가 역사유물론이 과학이 되려고 열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구성체론에서 흔히 문제가 되는 두가지만 소개하자.
첫째, '중첩결정' 개념과 관련하여: '중첩결정' 개념이 오히려 스탈린주의를 구명하고 있다는 지적. 즉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자성을 입증함으로써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어떻게 해서 사회주의 경제기초와 양립할 수 있었는지를 해명한다는 것이다. 샤를 베틀레임의 대작, {소련의 계급투쟁}(Class Struggle in the USSR)도 비슷한 혐의가 있는데, 베틀레임과 알튀세르의 이론은 '스탈린은 사회주의 건설을 경제성장 및 기술발전과 동일시했고(경제주의), 따라서 계급투쟁의 핵심적 역할을 무시했다(인간주의)'는 것은, 금세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정인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의 변질 과정을 단순한 하나의 지적인 역사로 환원해 버림으로써 오직 상부구조에서의 일탈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컨대 '소련에서도 문화혁명(계급투쟁)이 일어났다면'과 같은 가정은 토대분석의 의의를 간과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생산관계 우위론'과 관련하여: 역사유물론의 기초는 사회구성체들은 그들의 지배적인 생산관계에 의해 설명된다는 명제에 있다. 이것이 생산관계의 '설명상 우위성' 명제이다. '전체 사회구조의 내면적 비밀을 드러내 주는 것'은 국가, 의식형태들 또는 생산력 발전단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자연변형의 '물질적' 과정을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들--직접적 생산자들에 대한 생산조건 소유자들의 직접적 관계--의 성격인 것이다.

3) 이데올로기론

그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기여는 걸출하고도 어려운 논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부터 비롯할 것이다. 이데올로기론은 정치전략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지배이데올로기 분석의 기능적 도구에 머무는 것 같다.
이 분석방법은 노동계급과 그 동맹세력이 '우선' 이 ISA를 장악하면 자본주의 국가기구와 아무런 폭력적 대결을 하지 않고서도 정치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한 정치전력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손쉽게 활용될 수 있다. 심지어 캘리니코스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가 프랑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원칙을 포기한 데 대해 치밀하고도 논리정연한 비판을 가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 자신은 부르조아 국가기구를 분쇄해야 한다는 맑스 및 레닌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개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4) 정치학

알튀세르는 공산당의 이론적 권위에만 도전했을 뿐 당의 정치적 권위에는 도전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의 정치학은 이상할 정도로 비정치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서 즉각적으로 얻어올 수 있는 정치학이 존재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맑스주의 위기에 관한 후기의 몇가지 저술들이 이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정치학'을 대체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3) 병 속의 메시지들--개념들

{맑스를 위하여}의 영어판에서 Ben Brewster는 친절하게도 Glossary(용어해설)에 30여개에 달하는 알튀세르의 개념들을 아주 잘 정리해 놓고 있는데, 이 또한 중요한 병 속의 메시지일 것이다. 정식으로 말하거니와 그 용어들을 설명할 수 있다면 알튀세르를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다른 학문분과에서 빌어온, 그리고 알튀세르의 맥락으로 특수하게 가공되어 사용되는 개념들이 우리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 그러나 대강의 이해는 용어 유행만을 낳을 뿐이다.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은, '이론적 실천', '모순들의 응축, 대체, 융합','문제틀', '불균등 발전', '인식론적 단절', '일반성Ⅰ,Ⅱ,Ⅲ', '중층결정', '지배내 구조', '철학', '독해(reading)', '휴머니즘' 정도라고 생각된다. '문제틀'(problematic)개념은 너무 넓은 뜻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는데, 쿤의 '패러다임'(paradigm), 푸코의 '인식소'(epistemes) 등과 비교해 보면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층결정'개념은 국내에 대략 4가지의 번역어가 나와있는데(중층결정, 중첩결정, 중복결정, 과잉결정) 각 번역어의 장단점이 있지만, 여러 심급/층위가 여러 차례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중첩결정'이 가장 나은 번역어인 듯하다.
'심급' 개념은 법률학적 개념이자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빌어온 개념이기도 한데, 알튀세르의 심급은 대단히 유동적이기 때문에 각 심급의 일반이론 수립을 어렵게 한다. 심급의 위계성이라는 문제는 '자유와 필연'이라는 전통적 문제의 몫이 되고 마는 것이다.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라는 개념도 논란이 많은데, 축어적 해석 보다는 개념이 등장한 정치적 맥락과 효과를 전제한 후에 개념의 정당성을 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때로는 말장난 같은 논구를 거부해서는 안된다. 알튀세르의 많은 개념이 일반적인 '추상명사'화 되어 많이들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튀세르도 말했듯 "단어에 대한 투쟁은 철학적 투쟁의 일 부분"이기 때문이다.

4. 발리바르 읽기

이 글에서 발리바르를 깊게 다룰 수는 없다. 국내에서는 알튀세르-발리바르의 쌍으로 읽히고 있지만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후기 발리바르이며, 앞서서 알튀세르의 초기저작들에 관심을 집중할 것을 제안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리바르가 일급 이론가는 아니더라도, 그리고 스스로 알튀세르의 "가장 말잘듣는 제자"에 불과하다고 표현했더라도 발리바르가 알튀세르 학파의 적자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의 역사유물론 연구 또한, 알튀세르 학습이 포스트구조주의로 귀결되지 않는 유일한 발전전망으로 공유되고 있기에 약간의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발리바르는 {자본론 읽기}의 3부부터 이름을 내밀고 있지만 {역사유물론 연구}나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경제학 비판}, 그리고 아주 최근에는 {역사유물론의 전화} 등의 책으로 소개되고 있다. 발리바르가 비판적 정정을 위해 기본적인 관점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은 '정치경제학 비판'의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보다도 (후기)맑스이론을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 '정치/경제'라고 하는 개념쌍에서 출발하는 (전기) 맑스의 소외론적, 인간학적 문제설정의 지배이데올로기 효과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완전하게나마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발리바르에 의하면, 맑스의 이론 자체는 전기와 후기 간의 불완전한 인식론적 단절로 인해, 후기의 문제설정에 의해 제기된 다양한 과학적 질문들, 즉 이데올로기, 프롤레타리아 정치, (혁명)당, 계급투쟁 등이 초기의 이데올로기적 문제설정의 효과에 의해 지배됨으로써 부단히 환원론적, 목적론적 해결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불완전한 단절의 효과는 맑스 자신의 저작들 곳곳에서 이론적, 실천적 모순, 불일치, 결핍으로 이어진다.
결국 발리바르는 국가/시민사회의 이분법이 경제 이데올로기--사적 영역으로서의 경제의 자생적 조절이라는 관념--의 효과라고 보면서, 무엇보다도 국가/시민사회의 이분법을 해체함으로써만 맑스에게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관점은 맑스 자신의 모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장치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생산과정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은 착취관계로서의 자본-노동관계는 그 자체가 경제적이면서도 동시에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는 결코 부르주아적 공공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이제 노동의 정치, 생산의 정치, 나아가 프롤레타리아의 대중정치를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당장 의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 스탈린은 국가를 사회화하려 했고, 그람시는 사회를 국가화하려 했다는 비유는 타당한가? 소비에트라는 권력형태가 자본주의 사회에 특징적인 경제와 정치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경향을 대표한다는 주장은 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인가? 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구체적인 방식과 절차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등등.
발리바르의 문제제기들은 아직 평가되기에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전화'라는 한편으로는 개방적이고 솔직한 구상이 다른 한편으로는 맑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다른 식의 문제설정들을 비근본적이고 몰가치한 것으로 폄하하는 폐쇄성으로 드러나고 있지않나 하는 느낌이다. {인종, 민족, 계급}을 통해 발리바르와 공동작업을 한 월러스타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또한 의아한 일이다. '진리의 담지자'라는 위험한 표상은 발리바르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5. 루카치가 루카치이듯, 알튀세르도 알튀세르일 뿐

애초에 글이 의도했던 바는 알튀세르 수용하면서 흔히 나타나는 세가지 모습들--거부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 사용되는 유행어만 양산하거나, 실천의 모든 해결책을 알튀세르로부터 찾으려고 하는 경향을 비판하고자 함이었다. 그 의도에는 어느정도 충실하려 했으나, 정작 어떤 텍스트를 어떻게 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이 글은 교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문'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정운영의 [알튀세르를 위한 추도사]나 박형준의 [서구맑스주의, '위기의 역사'와 '역사의 위기'], 또는 정태석, 하주영의 논문 정도를 보면 좋을 것이다. 전기/후기 입장의 차이가 쉽게 정리된 글은 정태석의 [맑스주의 위기와 알튀세르], 알튀세르 이론의 의의에 관한 국내논쟁으로는 {사회평론} 92년 8월호 등등. 그러나 이러한 소개서나 해설서를 장황하게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맑스 레닌에 대한 우회에, 알튀세르에 대한 우회까지 겹쳐서는 곤란할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 범위와 주장에서 압도적인, 이 지적인 묘기"는 역사유물론의 발전에 분명히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맑스주의 문화 전체를 위해서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그의(그리고 그만의) 저작, 구절, 테제 들에서 직접 실천적 함의를 도출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그의 저작은 계속 읽혀야 한다. 그러나 그의 저작은 우리가 맑스의, 레닌의, 루카치의, 그람시의, 트로츠키의 저작을 읽는 만큼(만) 읽혀야 한다. 역으로, 우리는 알튀세르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만큼 '다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도 말로만의 인정이 아닌 실제 '학습'으로 말이다. 말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그 사람을 판단한다는 그 기준으로 말이다. 더구나 알튀세르 이론에 대한 평가와 학습은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이다. 알튀세르는 그의 지난한 투쟁 만큼이나 그리고 이 땅의 계급투쟁의 미래 만큼이나 오래 지속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튀세르로부터 배워야할 정신은 무엇보다도 "맑스를 위하여"와 "자본론 읽기"라는 제목의 두 슬로건이라는 것, 그리고 {자본론}읽기를 {자본론 읽기}로 대체해선 안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동감이 가는 대목인 것이다. 


                                                   학 / 회 / 평 / 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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