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그리고 ‘사회이행’ 1


진보평론  제22호
이광일ꋯ정치비평 편집위원

1. 들어가며

지난 4․15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입함으로써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 민주노동당에 어떤 위상과 의미를 부여하든 그것을 행위주체로서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그 동안의 비판적 논의, 특히 좌파 안에서의 논의들은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도 ‘노동자계급정당’의 출현에 대한 주의설적인 기대와 맞물려 외재적으로 진행되었던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제도 안에 둥지를 마련함으로써 이제 진보정치세력도 이른바 운동정치와 제도정치의 관계설정 문제를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 주목하면서 민주노동당은 과연 어떤 정당인지, 그리고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이 과정에서 진보정치세력들이 부르주아정치를 넘어가기 위해 고민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포함된다.
첫째, 민주노동당 내부의 ‘정치적 경향들,’ 혹은 ‘정파들’에 대한 이해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동당의 형성과정, 즉 민주노동당이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현실화되었는지, 그 궤적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 과정은 크게는 조직, 이념의 차원에서 자유주의정치세력들과 단절하고자 했던 진보정치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지만, 작게는 민주노동당 내부의 정파들이 어떻게 하나로 결합하여, 오늘과 같은 ‘동반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둘째, 민주노동당 안에 포진해 있는 각 정파의 노선과 ‘이행전략’ 등에 대한 이해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단일한 하나의 블록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재고는 제도 밖에 머물러 있는 좌파 진보정치세력들이 민주노동당과 어떠한 관점에서 어떻게 연대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보정치세력들이 연대와 사회이행을 고민할 때, 결코 우회할 수 없는 국가의 문제, 민주주의의 위상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2. 민주노동당은 어떤 정당인가

1) 형성과정과 내부구성

국제노동운동사에서 정당과 노동운동의 관계는 특정사회의 자본주의 성숙 정도, 그것이 세계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상, 정치적 상황, 특히 근대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헤게모니와 역할 정도, 그리고 노동운동의 내부 구조와 양상 등에 따라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양태로 대별할 수 있다.
일반논문/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그리고 ‘사회이행’
영․미계에서는 대중적인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자정치운동을 규정지었다면, 독일과 같은 후발사회에서는 노동자정치운동이 매우 중요한 선도적 역할을 하였고 대중노조운동은 이 속에서 영향 받으며 발전하였다. 반면 라틴계는 노동자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이 오랜 동안 분리되어 존재하였다. 독일의 경우, 자본주의의 미성숙과 부르주아지계급의 헤게모니 부재는 이들을 봉건세력과 동맹하도록 강제하였으며 정치적으로 그것은 ‘비스마르크체제’로 표현되었다. 1878년에 실시된 ‘사회주의자진압법’은 노동자계급운동에 대한 탄압의 상징이었고 따라서 국내외에서 혁명적 지식인, 활동가들에 의해 수행된 비합법운동에 의해 노동운동이 주도되었으며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물론 그와 분리될 수 없는 민주주의운동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871년 빠리코뮌의 좌절이후 혁명적 정치운동과 노동자 대중운동이 분리되면서 ‘생디깔리즘’이 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경과하며 진보적 노동운동이 제거된 이후 새로이 출발한 한국의 노동운동은 애초 이승만정권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유사국가기구로서 출발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임송자, “한국노총연구”(성균관대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03); 최장집, ꡔ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ꡕ(열음사, 1986) 참조.
이후 냉전분단구조 속에서 강제된 파시스트국가권력의 물리적 억압과 통제는 노동자정치운동의 성장은 물론 대중적인 노조운동의 존재마저도 위협하였다. 따라서 노동자대중운동은 상대적으로 반공에 대한 자기검열로부터 자유스러웠던 기독계, 그와 연계된 조직들의 후원과 지지를 받으며 자신의 권리신장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80년대 급진적 노동자정치운동이 출현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노동운동이, 나아가 노동자계급운동이 미발전된 이유로 국가권력의 탄압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의 ‘헤게모니’였다. 한국의 부르주아계급은 냉전분단체제 하에서 국가권력을 등에 없고 급속히 성장하였다. 이들은 지갑을 위해 ‘권위주의세력,’ 파시스트정치세력과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자유주의 정치세력들 또한 이들과 근본적으로 대립하지 않았다. 수구정치세력과 자유주의정치세력은 경제문제에서 상이한 견해를 보이기도 하였지만, 그것이 이들을 갈라놓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이광일, “한국의 민주주의와 노동정치: 급진노동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중심으로”(성균관대 정외과 박사학위논문, 1999) 참조.
물론 파이를 키우는데 목적을 둔 수출지상주의 정책과 분배를 고려한 정책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를 지니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갈등의 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이러한 정책의 차이보다 권력에의 접근가능성 문제와 연결된 정부구성방식의 문제였다. 즉,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정치적 태도를 결정지은 것은 집권을 위한 제도적인 경쟁가능성의 보장 여부였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주의정치세력의 행태는 수구정치세력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민중운동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것은 민중운동 안에서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좌파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나타났다. 70년대 ‘비판적 자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던 자유주의 좌파의 민중운동에 대한 헤게모니는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 확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이념, 조직에서 저열한 상황에 있던 노동자계급은 항상 이들 정치세력의 후미에 존재하며 그들의 권력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80년대는 파시스트세력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벌인 권력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노동자계급운동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바로 80년대 이후 본격화된 급진적인 노동자, 민중운동에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70년대 재야 출신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적 수준에서 민주노동당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세력은 이른바 80년대 사회변혁세력들이다. 이 가운데 현재 민주노동당에 참여하고 있는 세력은 수차례의 진보정당건설운동을 거치며 수구정치세력 혹은 자유주의정치세력에 동화된 부분을 제외한 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 이른바 ‘노동자의힘’ 등 ‘계급적 좌파’ 또한 민주노동당에 참여치 않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회변혁의 시대’였던 80년대에도 진보진영은 비판적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이들은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표현된 대중운동 속에서 자유주의 명망가들의 영향력을 뛰어넘지 못했다. 마르크스주의 등 비판사회과학이 소개되어 ‘비판적 자유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지속되었으나 대중적인 영향력의 측면에서 이들은 여전히 미약한 존재였다. 특히 87년 7-8월에 발생한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저항과 투쟁은 기존의 소규모 조직 활동에 익숙해 있던 이들 급진정치운동세력들이 대중운동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매우 제한시켰다. 이들은 다만 대중투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그것을 지원하고, 이 투쟁의 흐름을 어떻게 진보정치의 강화로 모아낼 것인가에 고민을 집중하였다.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엮음, [87’-88’ 정치위기와 노동운동-인노련 선집](거름, 1991); 이광일, 「민주화이행,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의 위상 그리고 헤게모니」 ꡔ진보평론ꡕ9호(2001) 등을 참조.
물론 이들의 활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감성적 수준의 성격이 강하였다. 70년대부터 사용된 ‘재야’라는 용어는 여전히 대중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80년대 민중운동은 급진운동들의 출현과 성장으로 특징지을 수 있지만, 대중들은 이러한 변화된 현실과 무관하게 ‘비판적 자유주의’의 상표가 된 ‘재야’라는 70년대식 용어를 통해 급진운동을 포함한 대부분의 운동을 이해하고 있었다.
대중이 70년대식 ‘재야’라는 개념으로 급진적 사회운동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헤게모니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민중운동의 통합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국민운동본부는 물론 노동운동의 본령이 정치투쟁임을 선언한 서울노동운동연합조차도 그 내부의 정치적 입장, 철학적 배경 등을 고려할 때 결코 70년대 재야운동의 뿌리와 영향으로부터 단절될 수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70년대 산업선교회 활동과 민주노조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비판적 자유주의자, 그리고 학생운동출신의 혁명적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이고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재야’로 뭉뚱그려져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87년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투쟁이야말로 최소민주주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축으로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운동이 분리되는 첫 계기였다.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받아들여지자 자유주의자들은 항상 그래 왔듯이 6.29선언에 동의하며 발 빠르게 민중운동과 결별하였다. 그 해 12월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민중운동진영은 친자유주의세력―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과 김영삼을 염두에 둔 ‘후보단일화론’으로 표현되었다―과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세력으로 이분되었다. 백기완선거대책본부(백선본)로 상징되었던 후자의 진보정치세력들은 제도 내에 독자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시도를 반복하였으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초기에 있었던 진보정당건설운동조차도 여전히 자유주의정치세력들과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채, 과거 ‘재야운동’의 동지라는 차원에서 그들과의 부분적인 ‘합종연합’의 형태를 통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70년대식 재야운동세력은 ‘균열되었으나 아직 뚜렷이 분화되지 않은 민중운동’을 제도 내 자유주의정치세력의 영향력 아래로 견인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교회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진보정치세력에 있어 그것은 시민사회 내의 또 다른 국가였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노동당은 제도 진입에 실패한 과거의 진보정당들과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정치세력들과의 분리를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대중운동에 정치적 지지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진보정당건설운동들이 명망가 중심의 정당조직이었다고 한다면, 따라서 개인수준의 이합집산이 반복되었다면, 민주노동당은 87년 이후 노동대중들의 요구와 투쟁이 반영된 정치조직이라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항한 97년 노동자총파업은 민주노동당 건설의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물론 공식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는 기존의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어느 정도 대표하고 있는가의 문제, 지금 민주노동당이 50%를 넘어서는 비정규노동자 등을 포함한 다수 노동자대중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적절히 대변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민주노동당은 어떠한 세력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80년대 중반이후 등장했던 정파들의 궤적을 고려할 때, 민주노동당은 크게 민중민주주의계열(PD)과 민족해방계열(NL)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87년 7-8월 노동자투쟁의 와중에서 결성된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등에 참여했던 활동가들, 이후 가칭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 추진위원회’에 참여했던 세력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장석준, 「역사의 거름이 된 20년」 ꡔ내일을 여는 역사ꡕ17호(2004/가을) 참조.
이들은 90년대 초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내부에서 ‘합법진보정당 건설’ 안이 부결되자 그로부터 이탈한 민중운동 명망가들과는 달리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급진노동운동의 핵심세력이었다. 애초 이들은 비합법 전위정당의 건설을 목표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87년 6월항쟁 이후 진전된 정치적 자유화와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계기로 합법정당건설노선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 것이 이른바 ‘신노선’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주대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ꡔ진보정치의 논리ꡕ(현장문학, 1994)참조.
그리고 이들은 97년 총파업과 국민승리21을 거치면서 민주노동당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당내에서 핵심세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민중민주주의계열에는 이들 이외에 급진사회주의를 표방하는 평등연대, 그리고 일명 ‘화요모임’으로 불렸던 ‘젊은 좌파그룹’ 등이 있다.
후자인 민족해방계열은 애초 독자적인 합법진보정당의 건설에 대해 소극이거나 반대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민주노동당 건설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태도는 90년대 초 전민련과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서 벌어졌던 합법정당건설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들이 반대 입장을 피력한 이래 지속되었다. 당시 이들의 이러한 정치적 태도는 87년에 있었던 민통련의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재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김철순, 「전민련 제2기 대의원대회의 역사적 의의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책 전환」, ꡔ사회주의자의 실천ꡕ(일빛, 1991), pp. 232-237 참조.
전민련의 해체 이후 일련의 부침 속에서 현재의 전국연합으로 결집되어 있는 이 세력은 민주대연합론에 근거한 ‘비판적 지지’로 92년 대선에서 자유주의 좌파와 정책연합을 이루기도 했지만, 그러한 발상과 정치적 태도는 92년 대선 패배 이후 자유주의 좌파세력이 이들과의 연합을 파기함으로써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들 비판적 자유주의세력이 고백한 반성의 핵심은 92년 대선을 앞두고 전국연합과의 선거연합이 대선에서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즉 ‘급진세력’과의 선거연합이 김대중을 선호하는 ‘안정희구세력’의 지지표를 이탈하게 만들면서 오히려 선거에서의 패배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제도 내 진입을 핵심 목표로 설정한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 확충을 위한 ‘국민정당’으로 변화욕구와 맞물리면서 전국연합이 민주노동당에 조직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현재 민주노동당 안에서 민족해방계열의 흐름은 정치적으로는 전국연합에 의해, 대중운동의 차원에서는 그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오랜 동안 자유주의좌파의 지지기반이었던 ‘전국농민운동총연맹’ 등에 의해 대변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전농의 정치협상에 대한 민족해방계열의 평가에 대해서는 김창현, 「민주노동당과 전농의 정치협상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 ꡔ이론과 실천ꡕ(2003/11)참조.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의 상당 부분이 이들 민족해방계열 흐름이나 이에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
다른 한편 민주노동당의 구성 주체 중 간과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이들은 90년을 전후로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진보정치에 관심을 두다가 민주노동당에 결합한 구성원들이다. 이른바 한국사회의 ‘68혁명세대’라고 불리곤 하는 이들은 80년대식 조직운동이 일단락되고 새로운 운동이 분화하는 계기로서의 91년 5월투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91년 5월투쟁을 서구 68혁명과 비교분석한 최근의 연구는 김정한, 「대중운동과 민주화: 91년 5월투쟁과 68년 5월혁명」, ꡔ91년 5월투쟁과 한국의 민주주의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 참조.
이들은 80년대에 형성된 민중민주주의 계열과 민족해방 계열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것에 종속되어 있지도 않다. 즉 이들은 한편으로 80년대 운동의 흐름에 견인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나, 다른 한편 각종 포스트주의를 흡수하면서 80년대 진보운동이 대중운동과 격리되며 증폭시켰던 자족적인 ‘이분법의 정파적 논리’를 비판하며 그것의 극복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들은 당 내부에, 특히 지도부에 강하게 남아 있는 과거 ‘정파적 운동의 짙은 그늘’이 청산될 때 비로소 민주노동당이 도약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민주노동당 안에서 하나의 정파로 조직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정책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다만 이들은 당 활동의 실질적 내용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세대라는 점에서, 향후 이들의 ‘자기인식 제고’를 통한 결속력 강화 여부에 따라 당내 영향력도 달라질 것이다. 특히 이들이 노동운동 등 민중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 가운데 어디에 더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는 민주노동당의 향후 정체성, 정치적 행보를 가늠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은 상이한 운동의 역사와 경험에 근거한 ‘정파들,’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에는 물론, 정치적 행보, 정책 수립과 그것의 우선순위 설정 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구조 자체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노동자계급과 대중의 해방, 인간해방을 위해 민주노동당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일그러뜨린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크고 작은 정책적, 정치적 사안들을 매개로 표출되고 있다.

2) 민주노동당의 ‘정치노선들’

민주노동당 안에 존재하는 정치노선은 80년대 급진운동들이 제시한 정치노선의 수용과 재구성의 결과이며 이러한 정치 지향들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심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분단 상황, 그리고 그 동안 진전된 자유주의적 정치개방 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는 진보정치세력들은 그 동안 공통적인 과제들과 씨름해 왔는데, 그 중 핵심적인 것은 첫째, 자본주의체제 밖에 대안은 존재하는가, 둘째, 만일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전자의 문제와 관련하여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노동자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대안 체제로 제시하고, 이를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노동자 해방을 목표로 하였던 사회주의 이념과 전통을 계승하되, 역사적으로 현존하였던 사회주의가 지녔던 비민주성과 관료적 억압 그리고 경제적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강령」 참조. 그 동안 민주노동당 강령에 대한 비판은 채만수, 「민주노동당 강령비판」, ꡔ진보평론ꡕ3(2000/); 정병기, 「민주노동당, 민중당인가 노동자당인가」(www.another0415.net) 등을 참조
이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대안사회의 상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체제가 극복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강령의 선언적 수준에 머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당 안에 존재하는 상이한 정치적 발상과 실천에 있다. 또한 여전히 민주노동당은 각 정파, 집단들의 조심스러운 ‘긴장과 협력’의 과정을 매개로 정체성의 형성과정에 있기 때문에 강령을 통해 현실에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그 현실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그 동안 민주노동당 내의 공식, 비공식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노선은 대체로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먼저 사회민주주의 경향은 기본적으로 사적소유와 시장으로 상징되는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그 모순을 해소 내지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유팔무, 「사회민주주의를 솔직하게 주장하자」, ꡔ이론과 실천ꡕ(2002/8) 참조.
주로 국가의 사후개입을 통해 자본주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삼는 사민주의 우파가 그 전형이다. 물론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주목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에 시선을 돌리는 ‘사민주의 좌파’ 또한 존재할 수 있으나 민주노동당 내부에서의 실체는 불분명하다.
이처럼 사민주의 노선은 이윤추구의 장으로서의 시장의 원리를 승인하며, 그로부터 야기되는 모순을 ‘중립자로서의 국가’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선거를 통한 집권을 전략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들 세력의 규모를 확실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실현가능한 정책대안 제시를 통한 대중적 지지 제고, 그를 통한 집권이라는 ‘실용주의 논리’를 강조하면서 당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민주노동당이 선거에서 성과를 거두면 거둘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다. 또한 이 노선은 그 의식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 지구적 수준에서 지배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모토, 즉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안팎은 없다”라는 담론과 ‘미래의 뿌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나약하지 않다.
사민주의노선은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역사적 생명력을 다했다고 평가되는 일국단위 프로젝트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 낭만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노선은 종속적 파시즘체제를 매개로 한 유혈적 테일러리즘 아래에서, 사회복지는 차치하고, 먹고 살 자유마저 부정당하였던, 그리고 IMF위기를 계기로 ‘무제한의 시장자유’가 강제되어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노선은 이러한 사민주의 노선을 비판한다. 이들은 사민주의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과 북유럽 등지에서 사민당 혹은 노동당의 이름으로 추구되었던 계급타협주의-수정자본주의 정치노선을 통칭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김현우,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알레르기를 넘어 나아가자」, ꡔ이론과 실천ꡕ(2002/10), pp. 118-119.
이들에게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는 선택지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 물질적 관계에 의한 인간의 질곡을 해소하고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보장하는, 그리고 인류와 생태계의 존속을 보장하는 유일한 이념, 체제, 깃발, 운동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우, 위의 글, p. 119.

사회주의노선은 사민주의와 달리 자본주의국가와 이윤추구의 장으로 기능하는 시장이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병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사적소유에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필수적이다. 물론 이것이 전면적 국유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해방의 새 세상을 가능케 하는 이념과 체제가 사회주의일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과 결과 모두가 민주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핵심이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 및 자유의 확대심화, 기층의 직접민주주의의 확장 및 자주관리적 거점의 분산과 확대를 접합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근저에서 변혁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들 사회주의그룹이 주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플란차스(N. Poulantzas)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니코스 플란차스,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 백의, 1994. 참조.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과거 민중민주주의 계열의 흐름 위에서 제기된 것이라면,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족해방 계열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아래에서 보이듯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와 사적소유에 대한 자신들의 궁극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물론 당 강령에 동의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들 또한 자본주의를 극복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적소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가운데 ‘2단계 변혁론’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2단계의 사회변혁은 1단계 변혁의 잔여범주로 간주되고 있는 듯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적 소유를 절대시하고 사회주의에 대해 극도로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기존의 부르주아민주주의와는 다르게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그 자체는 인정하되 그것이 갖는 반역사성,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보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철폐를 내세우는 사회주의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사회주의의 긍정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사회주의와 협력과 공존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진보적 민주주의는 부르주아민주주의와 구별 대립되는 개념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철폐와 사회주의적 소유의 전면화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사회주의이념과 다르며, 자본주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와 공통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적소유를 절대화하고 부르주아적 개인주의를 기초로 삼고 있는 부르주아민주주의와는 달리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그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것을 절대화하지 않고 민중의 이익의 견지에서 그것을 규제해야 한다고 보며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에 대해 반대하고 사회적 집단의 단합과 단결을 중요시하고 이 힘에 기초하여 사회적 진보를 추구하려 한다.” 김윤철, 「민주노동당 ‘집권전략논쟁’-이념 및 조직노선논쟁을 중심으로」, ꡔ역사비평ꡕ(2004/가을), p. 70에서 재인용.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입장이 이른바 민족문제(모순)와 맞물리면서 과거 민족해방그룹의 논리가 고스란히 재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발상 스스로가 비판했던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로부터 발생하는 모순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민족모순이 들어서게 되면서 그것의 해결이 모든 모순의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라는 낯익은 인식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 이르면, 다음에서 보이듯 ‘진보적 민주주의’는 ‘(반미)자주’와 동일시된다.

“우리사회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족자주를 핵으로 하는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민족자주가 실현되지 않고서는 우리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으며 우리사회 발전의 가장 주된 적은 바로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사회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족자주를 핵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사회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주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김윤철, 위의 글, p. 71에서 재인용


이런 맥락에서 노자간의 모순, 시장의 전횡, 특히 지금 그 모순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문제 등은 이들에게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이들에게는 노자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긴장, 갈등보다는 민족 사이의 모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무장한 세계화’를 통해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있음에도 이들은 양자의 내면화된 관계에 주목하기보다 정치․군사 측면에서 민족적인 측면을 주로 부각시킨다. 이라크파병과 같은 대외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 또한 이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가 ‘불균등발전을 동반한 민족문제―(신)제국주의는 그 전형이다―의 끊임없는 재생산 과정이었다는 점을 간과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본주의세계체제 안에서 민족모순은 지양될 수 없음에도 민족모순을 강조하며 그것의 극복을 당면의 핵심과제로 설정한다는 것은 곧 기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그것을 해소시키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체제 아래에서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심국가’로 진입하는 것뿐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가장 강력한 ‘(민족)국가주의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발상과 실천의 경향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 세력이 민주노동당 안에서 상당한 조직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80년대 중반이후 등장한 이 세력은 민족모순에 규정된 ‘생산력 미발전론’을 내세우며 부르주아적 사회관계를 촉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견해는 민족해방그룹의 식민지반봉건사회론 혹은 그것의 변형인 식민지반자본주의론, 종속자본주의론은 물론이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한국사회를 규정하며 민족민주혁명론을 제시했던 제헌의회그룹(이른바 CA) 등의 주장에도 각인되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이른바 좌파 내 ‘근대화론의 옹호자들’이었다. 따라서 사회정치적으로 그 영향력이 미약했던 이들이 종속적 파시스트지배체제와 결합된 자본의 무한착취를 비판하며 집권을 노리던 ‘민중지향적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 아래 포섭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이들의 정치적 행보를 추동한 과거 ‘자유주의 좌파’의 그 ‘진보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비판적 자유주의 세력은 브레튼․우즈체제 아래서 상대적으로 인정된 국민국가의 자율성 존중이라는 ‘국제합의’를 매개로 자신의 위상과 행동반경을 구할 수 있었다. 이른바 ‘수출동맹’이든, ‘분배동맹’이든 그것은 상대적이지만 국민국가의 자율적 역할을 인정하는 전후 자본주의세계체제에 규정되어 있었고 이것은 서구의 복지국가, 혹은 라틴아메리카의 ‘수입대체 민중주의’, 그리고 동아시아의 ‘개발독재’가 작동할 수 있었던 구조적 틀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광일, 「성장, 발전주의 지배담론의 신화와 딜레마: ‘발전주의 국가’에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로」, ꡔ한국의 정치사회적 지배담론과 민주주의 동학ꡕ(함께 읽는 책, 2003) 참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신체제의 ‘수출지향적 헤게모니전략’과 적대적 대북경쟁전략에 대항한 이들의 ‘대중경제론’과 ‘연합제통일 방안’이 더 의미를 지닐 수 있었고, 진보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의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제고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이 과정은 자유주의 좌파가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발현을 완화시키는 안전판 구실을 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맥락에서 성장한 ‘자유주의 좌파’가 해소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3당합당과 DJP연합을 통한 두 번의 권력분점, 국민통합21 정몽준의 후보단일화 철회로 성사된 뜻하지 않은 최초의 독자집권을 경과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광일, 「자유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전화: ‘민주주의’의 축소와 ‘국가물신’의 심화」, ꡔ정치비평ꡕ(2003/하반기), pp. 90-95.
이런 의미에서 보면 현재 노무현정권으로 상징되는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과 수구정치세력의 차이는 외견상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크지 않다. 이들 양 세력이 현재 대중의 삶을 규정하는 글로벌 신자유주의, 무장된 세계화 등을 둘러싼 의제보다 ‘과거사 문제’에 더욱 매달리고 갈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작업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 기저에는 현재 자신들이 노출하고 있는 보수성을 감추고자 하는 집권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노림수가 깔려 있다. 즉, 이들은 ‘개혁과 수구’라는 정치적 대립선을 재생산시킬 수 있을 때, 자신들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무장한 세계화로부터 파생된 문제는 이들의 주의설적 해결의지의 표현과는 무관한, 그들의 ‘계급적 경계’(class boundary)를 넘어서는 문제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민주노동당 내 민족해방 계열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깊게 내재되어 있던 과거의 관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최근 국가보안법 등 각종 개혁입법의 추진을 둘러싸고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공조하려는 이들의 정치적 발상과 행보 속에 드리워져 있다. 특히 민족해방계열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폐지입장을 취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행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을 자극하는 것이 원내 각 당의 세력분포를 반영한 현실론인데, 향후 선거라는 정치공학적인 측면을 고려해보더라도, 오히려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정치세력과의 차별성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불감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세력이 민주노동당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다수를 차지하며 현실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들 세력은 민주노동당의 성장이 반파시즘투쟁과 자유주의정치세력으로부터의 조직, 이념의 자립을 위한 좌파진보운동의 오랜 투쟁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민주노동당의 노선은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 흐름이 서로 경쟁하며 부침하는 가운데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압도하고 있는 이 시대에 그 방향은 당 내부의 긴장관계는 물론 좌파진보운동과 노동자, 대중투쟁의 향배에 의해 일정하게 조건지워질 것이다.

3) 민주노동당의 ‘이행 전략들’

만일 자본주의체제의 대안을 찾고자 한다면, ‘이행의 경로’를 고민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문제는 지난 80년대 변혁논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한국사회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가 충분히 논의되고 실천되기도 전, 구동구권의 붕괴와 맞물려 한국의 진보운동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이행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시대의 유물처럼 되어버렸다. 역사 속에서 현실화된 바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암울한 그늘은 이행의 문제를 우회하게 만들면서, 결국 진보정치의 빈곤을 조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이행의 문제는 정치노선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데, 사민주의와 민족해방계열의 흐름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상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선, 국제운동사의 경험에서 볼 때, 사민주의는 선거로 집권을 하고 그것을 통해 자본주의가 지니는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른바 양적인 개혁의 축적을 통해 그것을 완화, 해소시키고자 한다. 이 점에서 혹자는 이들에게 이행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1959년 독일 사민당이 고데스베르크강령(Godesberg Programm)을 채택한 이래 사민주의자들은 오랜 동안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와 그를 위한 양적 개혁을 주창해 왔으며 민주노동당 내의 사민주의 경향 또한 이러한 범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독일사민당의 이념, 정책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논의는 정병기, 「의회진출 초기, 독일사민당의 이념과 정책변화」, ꡔ진보평론ꡕ21(2004/가을) 참조.

이 노선은 당의 역할을 구체적 정책대안의 제시로 협소화시키는 발상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당의 기술관료화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향후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지향과 관련, 사회주의그룹이 주목하는 ‘사회운동적 정당론’에 대한 비판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즉 ‘사회운동적 정당론’이 ‘조합주의 대중투쟁’에 대한 보좌역을 수행하면서 제도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과 그 지도부가 정치력을 발휘하는데 압력과 제약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팔무, 앞의 글, p. 17.
하지만, 복지국가의 한 축이었던 사민주의야말로 조합주의의 상징이었고 바로 그러한 조직의 화석화가 새로운 사회운동 출현의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평가는 적실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사민주의의 화석화는 이른바 포드주의 복지국가체제에서의 조합주의 노동운동의 위기로 표현되었고, 이른바 68혁명을 계기로 ‘신사회운동’이 출현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사민주의의 딜레마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실현가능성에 대해서조차 그 어떤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정치를 제도화된 행위로 축소시키면서 그것을 노동자, 대중의 외부에 자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고통스럽고 지루한 파국을 거칠지도 모르는 ‘이행의 과정,’ 그 현실 가능성과 무관하게 모두가 바라는 ‘평화적 이행’조차도, 아니 사민주의적인 정책조차도 바로 그 노동자계급정치, 대중정치와 분리되어서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간과한다.
민족해방계열은 이행의 문제와 관련하여 명확한 상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은 아직 사회주의를 전면화시킬 단계가 아니기에, 특히 미국과의 관계로 대표되는 민족간의 모순이 해소되지 않은 채,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단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전민족의 단결’에 중점을 둘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당에 대한 이들의 다음과 같은 인식에 잘 나타나 있다.

“민족민주정당은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하여야 한다. 일부에서는 사회주의적 이념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의 강령에도 일부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사회의 성격으로 보나 당면 변혁의 임무로 볼 때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그 반대로 이른 바 개혁적 국민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하지 않고 일반민주주의 과제나 참여민주주의와 같은 강령을 내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또한 옳지 않다. 자주, 민주, 통일은 이미 시대의 대세로 되었다.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은 자주와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과 사대매국과 민족분열을 지향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갈 것이 분명하다.” 정대연, 「‘민족민주정당’ 건설에 주체적으로 나서자」(2002) 참조.


민족해방그룹은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외견상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선 1단계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구성하고 이후 2단계의 변혁과정을 거치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1단계의 과제를 성취하기 위한 민족민주정당의 조직과 ‘전민항쟁’이 이야기되고 있으나, 2단계 변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경로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행의 과정에서 변혁의 주요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국가에 대한 문제, 자본주의가 드러내는 모순의 극복 문제, 그리고 ‘이행의 동력’ 문제 등은 수면 아래 잠복되어 있다. 이러한 발상의 현실부정합성은 이미 지난 시기 수많은 논쟁을 통해 확인되었기에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물론 이것이 민주노동당 안에서 이들이 행사하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의 실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그룹 또한 사민주의그룹이나 민족해방그룹과 확연히 구분되는 명확한 이행의 경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민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체제 내 양적인 개혁 혹은 민족해방계열의 ‘2단계 변혁론’과 비교할 때, 구체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주로 혁명과 개혁의 관계, 구체적으로는 운동정치와 제도정치의 관계를 조망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자본의 시장 지배를 통제하고 해체하는 문제를 매개로 우회적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제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대강 살펴보면, 사민주의가 주장하듯 개혁에 의한 양적 축적은 변혁이라는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 자본주의체제의 위기는 ‘이중권력’의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자본과 시장의 통제는 현실적으로 국가권력 장악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따라서 국가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우회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자본이 강제하는 모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성두현, 「민주적 사회주의를 향하여」, ꡔ이론과 실천ꡕ(2002/8); 정종권, 「새로운 사회주의-민중의 참여와 조직화」, ꡔ이론과 실천ꡕ(2002/8)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은 글로벌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당면투쟁이 동시에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파악한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특징적인 것은 붕괴한 국가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파생한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특히 역사적인 ‘프롤레타리아독재’이후 심화된 관료주의와 국가소멸이 아닌 대중에 대한 국가의 자립화로 나아간 과정에 대한 반성과 고민은 국가를 매개로 하는 정치가 초래할 필연적 한계에 대한 인식을 매개하면서 운동정치의 강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들에게 ‘이중권력’의 조성은 레닌주의적 이행전략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게 해석되지 않는다. 즉 이들은 국가를 변혁 과정에서 조성될 ‘또 하나의 대중권력’에 외재적으로 대립하며 존재하는 사물로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레닌주의적 이행전략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에게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한 운동정치는 오히려 사회관계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긴장과 모순을 국가 속에 투영시키면서 국가의 관료화와 자립화를 방지하는 핵심 열쇠로 이해되고 있다. 이 때 이들에게는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을 지향하는 민주노동당 또한 이 과정을 매개하고 촉진하는 하나의 투쟁장소이다. 이현우, 앞의 글, p. 125 참조.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제기되는 이행논의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이 문제가 단지 ‘사민주의 정책’과 ‘사회주의 정책’을 결합시키는 문제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발상을 잘 보여주는 예는 최병천, 「한국사회, 사민주의와 사회주의 처방 ‘둘 다’ 필요하다」, ꡔ이론과 실천ꡕ(2004/7) 참조.
물론 대중의 삶과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 대안은 끊임없이 제시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정책이 기계적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사민주의의 실패’는 이미 이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물론 이행이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다가올지 선험적으로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대중에 대한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대중정치를 우회해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으며, 따라서 제도정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정책의 누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발상은 사회주의를 사민주의 정책의 누적된 그 무엇으로 파악하는, 더 나아가 결국 그것을 특정한 하나의 모델로 설정, 대체하고자 하는 ‘사민주의 발상’의 동어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역사를 뒤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구사회주의체제의 붕괴이후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프롤레타리아트독재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단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수준에서 대중권력의 총화로 구현되어야 할 ‘프롤레타리아트독재’가 그 노동자대중을 지배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냉정한 비판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다시 ‘프롤레타리아트독재론’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드러낸 모습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그 문제의식이 제기하고 있는 본질적 의미 때문이다. 물론 많은 논의에서 지적되었듯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이 노동자계급 등 대중에 대한 독재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내재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과연 자본주의국가는 중립적인가, 그리하여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은 여전히 우회할 수 없는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런 차원에서 그 동안 ‘이중권력’의 조성과 기존 국가의 해체, ‘프롤레타리아트독재’를 통한 이행전략에 대해 ‘진보진영’ 내에서 제기된 다양한 비판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논평들은 주로 역사적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한계와 오류를 비판하는 것에만 머물렀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안에서 제기되는 이행과 관련된 발상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다양한 정파들이 ‘긴장과 협조관계’ 속에 상존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이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발상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런 진단을 하는 이유는 여전히 자기형성 중인 민주노동당의 역량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가 민주노동당 내부의 긴장관계를 넘어서는, 전체 좌파진보정치의 현실과 미래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 내부의 논의와 관련하여 주목해 볼 발상은 ‘사회주의그룹’이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이다. 따라서 이를 매개로 당 내외 좌파진보진영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논의에서 자본주의사회관계를 포함한 기존의 비대칭적, 억압적 관계들을 문제시하는 발상들, 운동들의 참여를 미리 배제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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