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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평점 :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땅을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 한병철 [땅의 예찬]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정원을 상상해보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그동안 지나친 길 위의 꽃들에 대해 다시 떠올려본다. 그러면 굉장히 온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는 이렇게 땅을 온전히 느낄 때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가 도래하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땅에 대한 관심을 끄기 시작한다.
“디지털 문화는 인간을 작은 손가락 존재로 축소시킨다. …이야기는(내러티브)는 그 의미를 엄청나게 잃는다.…하지만 존재는 이야기지 헤아리기가 아니다.” (75~76p)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원을 가꾸는 일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그 과정을 애정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것이 존재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존재들이 헤아려져야 한다. 헤아리는 데에는 단순히 오랜 기간 동안 지켜보는 것만은 아니다. 작가가 정원을 가꾸며 꽃과 나무들에 대해 또 새롭게 알아가듯이 사랑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0과1로 이루어진 -복잡해보이나 한편으로는 또 단순하게 구성된-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환경을 파괴한다. 우리가 어디서 태어났고 살아가는 지에 대한 망각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말대로 땅으로 돌아가기란 행복으로 돌아가기(32p)인 것 같다. 최근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보곤 시골에서 한적하게 시간을 곱씹을 수 있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는 걸 보면 아직까지는 자연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관점에서 추위에도 약하고 환경에 따라 언제 시들지 모르는 꽃들을 보살핀다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꽃이 추위를 이겨내고 활짝 피는 과정들을 보면 어쩌면 이 과정들이 우리의 삶과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가까이 하는 스마트 폰, 컴퓨터보다 더 닮은 것은 자연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자연을 훼손시킨다.
“우리는 땅을 보호해야 한다. 보호하는 태도로 대하고, 잔인하게 착취하는 대신 찬양해야 한다.” (183p)
책에는 작가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들과 꽃에 대한 탐구가 책에 가득 들어있다. 그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자연스레 정원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 애정은 독자가 식물들의 성장과정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버드나무가 죽었을 때, 작가는 자신이 피를 흘린다고 생각한 일화를 보면서 그에 대한 애정이 어떤 크기와 깊이일지 상상해 보았다. 책에서 내가 느낀 애정들은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꽃 이름에서 나는 그 어떤 명령이나 권력요구가 아니라 사랑과 애착을 듣는다. …꽃 이름은 사랑의 말이다” (84p)
작가의 겨울 정원을 글을 통해 탐방하면서 꽃들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겨울에 피는 꽃은 동백꽃밖에 없는 줄 알았던 내게 많은 겨울 꽃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던 나와는 달리 힘차게 꽃봉오리를 피어낸 꽃들이 있다. 연약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동시에 꽃 이름을 보면서 참 재미있는 이름들도 많고 꽃의 특징을 잘 살린 이름들도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꽃 이름은 ‘가을시간너머’이다. 정원이 ‘불확실한기다림’을 갖고 있는 것과 이 꽃이 시간의 영원성을 정원에 불러오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너머에 있다는 것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동시에 기다려지기도 한다. 정원이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듯 너머에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참 즐거운 일로 느껴진다. 그래서 꽃이 가지는 ‘초월성’의 매력에 빠진 듯하다.
이 책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식물들에 대해 알아가는 점도 있지만, 작가가 정원을 가꾸며 느낀 생각들을 독자도 함께 사유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땅 위에서 숨쉬고, 또 거리에서 수많은 식물들을 지나치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자에 대해 좀 더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놓쳐왔던 것들을 책을 통해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