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식당
최봉수 지음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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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한 그림체와 고양이의 매력을 듬뿍 담은 스토리 진행은 독자로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든다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귀여운 생명체들이 울적함을 날려주기도 한다 책도 그렇다고양이의 젤리 발바닥처럼 폭신한  커버를 열면 고양이들만의 비밀 공간으로 초대된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라 생각한다문장이 길지도 않고 그림이 정교하지도 않다그러나 그 간단함은 우리가 오늘 느낀 무거운 일들을 덜어준다게으르고 뚱뚱한 고양이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동글동글해진다바쁘게 돌아가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푹신한 침대에 앉아 책을 펴고 고양이 식당으로 들어서면 마음이 밝아진다.

 

"잠깐, 고양이 식당에 예약이라니요? 이상한 일이네요. 고양이들은 낮잠을 자며 기다릴 뿐 예약은 하지 않거든요."

 

전반적으로 나태하고 식탐 많은 고양이들의 성향을 잘 드러낸다그러나 이 특징들은 나쁜 요소로 보이기보다 오히려 귀여움을 느끼게 만든다이 식당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그들의 느긋함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에게 늘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하지만 나는 끼어들기보다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 세계가 빛나길 바라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작가는 필시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이 분명하다. 고독한 미식가. 개냥이, 냥냥 펀치 등 현재 온라인 상에서 한번씩 회자되었던 단어들이 등장하여 독자들의 재미를 돋운다. 스펙터클한 이야기도 아닌데 흡입력이 있다. 이 이유 중 하나는 책 속에서 이야기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시에 크리스마스 파티의 이야기는 따뜻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식당과 크리스마스 파티 이야기를 주제로 하니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온다. 다양한 모습의 고양이들과 맛있는 음식 그림이 함께이니, 책을 읽는 내내 즐겁다. 귀여움으로 무장한 이 책은 독자들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고양이가 주는 행복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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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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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365일 중 생일인 하루는 나에게 특별한 날이다. 작가의 표현처럼 유례를 찾기 힘든 공평한날이다. 그 중에서도 십대에서 이십대로 넘어가는 스무살의 생일은 왠지 모르게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단순하게 앞자리가 바뀌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점은 성인이 되어 독립적인 나로 향하는 첫 날이란 것이다. 스무 살의 내 생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열아홉에서 스물이 되면서 느꼈던 그 미묘한 감정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 책은 작가가 로 등장하고 43쪽에 그림으로도 하루키가 나온다. 그리고 가 그녀의 스무 살 생일에 겪었던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듣는 현재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604호에 있던 가구 진열까지 생각날 정도로 그때가 생생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르바이트를 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대타를 해주기로 했던 친구의 아픔과, 유난히도 많이 내리던 비, 멀쩡하던 매니저의 복통 등은 평범한 일상을 자꾸 비틀어 놓는다. 또 마침 그녀의 생일이다. 그녀가 604호에서 겪었던 일은 이러한 일들이 연쇄되어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장과, 절대로 갈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604호로 그녀가 향하게 된다. 거기다가 이때까지 식당 직원들을 통해 들어왔던 사장의 이야기들과 사장의 독특한 화법은 그가 마치 마술사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것은 만일 실제로 이루어져버리면 그 결과 나 자신이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 저는 상상이 안 돼요.저한테는 인생이란 것이 아직 잘 잡히지 않고 있어요. 정말로. 그 구조를 잘 모르겠어요.”_48

 

 그녀가 자신의 생일에 관해 했던 말들이 나에게 참 깊게 울렸다. 인생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잘 잡히지 않는 것이지만 이제 막 활발히 삶을 시작해나가는 청춘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별 것 아닌 한 요소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 한마디가 반가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 같다. 결국 그녀가 빈 소원이 무엇인지는 끝내 정확히 알 순 없었다. 그러나 어렴풋이 알 만한 것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그녀의 소원은 삶에 대한 원론적인 고찰을 통해 나온 바람이란 점이다. 시간이 중요한 이 소원은 사장의 말대로 아주 간단히 이룰 수 있는 것이지만 완전히 이루어내기까지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마음가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인생의 끝에 가야지만 내가 끝내 가졌는지, 그러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소원은 음식처럼 시간이 중요했던 것이 아닐까.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_57

 

 자신 이외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스무 살의 그녀가 말한 말과 상응된다. 나 자신 이외의 것에 눈을 두다 보면 정말로 무너질 수 있다. 부차적인 것들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온전히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어찌됐든 다시 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기에. 이런 생각을 자신의 생일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나누는 것이 참 절묘하다. 생일은 내가 존재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그리고 그녀가 살면서 깨달은 것과 겹쳐서 생각해보면 생일과 나라는 존재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동안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생일은 그냥 지나쳐도 무방한 날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생일의 특별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창한 생일 파티가 아니더라도 생일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나, 눈 감아 줄 수 있는 실수들이 있을 것이다. 다가올 내 생일에는 그 특별함을 나만의 방식대로 잘 즐겨봐야겠다. 하루키처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실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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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온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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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의 등장인물들을 제외하고 주인공을 비롯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소수자라고 볼 수 있다.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난무했던 그 사회에서 그들은 숨죽여 지내야만 했다. 어떤 일이든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들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회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벙어리, 깜둥이라는 서슴없이 내뱉는 권력자들에게 꿈쩍할 수 없었다. 그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는 스트릭랜드의 생각들을 문장으로 읽으면 약자에 대한 혐오가 가득하다. 엘라이자를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도 순종적이며, 말을 못해 조용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의 부인인 레이니도 남편이 없을 때 해방감을 느낄 정도였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엘라이자는 어떠한 조건을 통해 보지 않고 있는 그 자체로 자신을 바라보는 F-1의 생물체와 마주하게 된다. 짧막한 수화로 소통하고 눈빛으로 대화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사랑이었다. 사랑을 통해 진정한 존재로 거듭난 다는 것은 큰 용기를 불어 넣는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곳곳에 스며들어가 있다. 젤다는 흑인이기에 어떤 일에 연루된다면 바로 자신이 위험에 쳐한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엘라이자를 위해 나선다. 자일스도 자신의 오랜 친구를 사랑하기에 오컴에서 괴생물체를 빼내오는 작전에 동참한다. 또 브루스터는 젤다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엘라이자에게 전화 거는 것을 막는다.

 

그 둘은 서로 사랑해. 기억 못 해? 사랑이 어떤 건지 기억 못하는 거야?”

당연히 기억하지. 그래서 당신이 전화를 걸게 내버려 둘 수 없어.” _416

 

그래서 엘라이자, 젤다, 자일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용기를 내고 나선다. 그리고 싸운다. 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알기에 연대하며 지지한다. 흑인 가족을 말도 안 되는 말로 가게에서 내쫓는 브래드에게 일침을 가한 자일스였다. 서로 사랑하기에 깊게 결속되는 이 관계들을 보면서 그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랑이란 것은 마치 물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 말고도 수많은 형태의 사랑이 있다. 그 대상도 마찬가지다. 진심으로 나를 알아봐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외적인 모습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건 인간이 아니잖아!” 그럼 우리도 사람이 아닌 거예요. _233~234

 

이처럼 우리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겠지만 인간에게 가장 강력하게 새겨지는 감정은 사랑인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보았고 책에서도 보았다. 우리가 느끼는 것들을 외면하며 산다면 그게 정말로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엘라이자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그리고 괴생명체와 엘라이자는 상호보완의 관계였다. 서로가 닮은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것이든 서로에게 결핍된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혼자서 가는 건 싫어요.내게는 필요해요._432

 

함께 지내며 수화를 배운 그가 엘라이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 처음에는 말하는 것도 몰라 눈빛으로 대화를 했다가 수화를 배워 마음을 표현하기까지의 시간과 감정들이 떠올랐다. 안은 그 시간이 영원하길 바랐던 것처럼 그들이 영원한 사랑을 하길 바랐다. 감정이라는 것은 형태가 분명하지 않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듯, 감정이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지 않을까? 누구나 이런 사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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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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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쉬는 것과 밥은 우리에게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당연한 일이기에 숨 쉬고 밥 먹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게 맞지만 요즘의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작가의 경험처럼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야 내가 편히 숨 쉴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 갖가지 일들과 상념에 둘러싸여 잘 느껴지지 않던 내 본래의 존재는 그제야 커다랗게 느껴진다.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오직 두 가지, 숨 쉬는 것과 밥 먹는 것이다.”_16

 

 두 가지에 집중하면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간단한 일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나를 둘러싼 층들을 하나둘씩 내려놓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작가는 직접 옷을 만들고, 명상을 하며, 생식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다가간다. 때로는 신앙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에게 주어진 카르마가 무엇이며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곱씹는 일은 삶을 바라보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 내 존재가 단단해야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혜안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작가는 명상법과 생식을 택했다. 안정된 마음을 갖기까지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산 속에 들어가 살기도 하고 타국의 성인(聖人)에게서 가르침을 얻기도 했다. 작가의 삶은 평탄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내면의 혼란과 다양한 상황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수많은 일을 겪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그렇게 찾아온 평화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묘하게 고요함이 느껴진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살기 위하여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나는 계속 묻는다.”_189

 

 몸과 마음가짐을 깨끗하게 하려면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계속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각자의 올바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선 자신을 잘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버리고 취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도 바뀌게 될 것이다. 작가의 삶이 되어버린 명상도 그 방법을 알려줄 좋은 수련활동이라 생각한다.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요즘의 우리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다. 정갈한 식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그동안 바쁜 삶에 치여 단순하게 밥을 먹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들이 몇 번이나 있었을지 생각해봤다. 단순하게 이 순간과 나를 형성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단순해지기. 이것은 나의 존재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다 보면 내 신체에 대한 감각도 예민해진다. 몸 속 세포를 형성하는 음식이 큰 영향을 미친다. 요즘 나는 음식이 가진 에너지가 일상생활과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과 집에서 한 밥은 겉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에너지 측면에서 큰 차이가 났다.

 

영양분만큼 중요한 것은 음식이 가진 에너지이다.에너지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진기와 허기로 나뉜다. 때로는 생기라고도 표현된다.” _49

 

 바쁠수록 더욱 이 생기를 놓쳐선 안 된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지만 생기를 품은 밥과 그렇지 않은 밥에 따라 하루의 질이 달라진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내 존재는 생기를 바탕으로 활성화된다. 한 때 나에게 밥은 허기를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온전히 나 자신을 생각해서 밥 먹는 일에만 집중해도 활력이 생겼다. 숨 쉬고 밥 먹는 것이 일상에서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났다. 나를 이루는 세포들이 가진 힘의 원천은 어디서 온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숨쉬기와 밥 먹기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심심한 맛의 반찬과 따뜻한 쌀 밥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진다. 한동안 얕봤던 음식이 가진 힘을 다시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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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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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땅을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 한병철 [땅의 예찬]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정원을 상상해보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그동안 지나친 길 위의 꽃들에 대해 다시 떠올려본다. 그러면 굉장히 온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는 이렇게 땅을 온전히 느낄 때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가 도래하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땅에 대한 관심을 끄기 시작한다.

 

디지털 문화는 인간을 작은 손가락 존재로 축소시킨다. 이야기는(내러티브)는 그 의미를 엄청나게 잃는다.하지만 존재는 이야기지 헤아리기가 아니다.” (75~76p)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원을 가꾸는 일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그 과정을 애정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것이 존재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존재들이 헤아려져야 한다. 헤아리는 데에는 단순히 오랜 기간 동안 지켜보는 것만은 아니다. 작가가 정원을 가꾸며 꽃과 나무들에 대해 또 새롭게 알아가듯이 사랑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01로 이루어진 -복잡해보이나 한편으로는 또 단순하게 구성된-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환경을 파괴한다. 우리가 어디서 태어났고 살아가는 지에 대한 망각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말대로 땅으로 돌아가기란 행복으로 돌아가기(32p)인 것 같다. 최근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보곤 시골에서 한적하게 시간을 곱씹을 수 있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는 걸 보면 아직까지는 자연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관점에서 추위에도 약하고 환경에 따라 언제 시들지 모르는 꽃들을 보살핀다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꽃이 추위를 이겨내고 활짝 피는 과정들을 보면 어쩌면 이 과정들이 우리의 삶과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가까이 하는 스마트 폰, 컴퓨터보다 더 닮은 것은 자연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자연을 훼손시킨다.

 

우리는 땅을 보호해야 한다. 보호하는 태도로 대하고, 잔인하게 착취하는 대신 찬양해야 한다.” (183p)

 

책에는 작가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들과 꽃에 대한 탐구가 책에 가득 들어있다. 그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자연스레 정원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 애정은 독자가 식물들의 성장과정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버드나무가 죽었을 때, 작가는 자신이 피를 흘린다고 생각한 일화를 보면서 그에 대한 애정이 어떤 크기와 깊이일지 상상해 보았다. 책에서 내가 느낀 애정들은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꽃 이름에서 나는 그 어떤 명령이나 권력요구가 아니라 사랑과 애착을 듣는다. 꽃 이름은 사랑의 말이다” (84p)

 

작가의 겨울 정원을 글을 통해 탐방하면서 꽃들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겨울에 피는 꽃은 동백꽃밖에 없는 줄 알았던 내게 많은 겨울 꽃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던 나와는 달리 힘차게 꽃봉오리를 피어낸 꽃들이 있다. 연약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동시에 꽃 이름을 보면서 참 재미있는 이름들도 많고 꽃의 특징을 잘 살린 이름들도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꽃 이름은 가을시간너머이다. 정원이 불확실한기다림을 갖고 있는 것과 이 꽃이 시간의 영원성을 정원에 불러오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너머에 있다는 것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동시에 기다려지기도 한다. 정원이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듯 너머에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참 즐거운 일로 느껴진다. 그래서 꽃이 가지는 초월성의 매력에 빠진 듯하다.

 

이 책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식물들에 대해 알아가는 점도 있지만, 작가가 정원을 가꾸며 느낀 생각들을 독자도 함께 사유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땅 위에서 숨쉬고, 또 거리에서 수많은 식물들을 지나치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자에 대해 좀 더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놓쳐왔던 것들을 책을 통해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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