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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버스데이 걸
365일 중 생일인 하루는 나에게 특별한 날이다. 작가의 표현처럼 ‘유례를 찾기 힘든 공평한’ 날이다. 그 중에서도 십대에서 이십대로 넘어가는 스무살의 생일은 왠지 모르게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단순하게 앞자리가 바뀌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점은 성인이 되어 독립적인 나로 향하는 첫 날이란 것이다. 스무 살의 내 생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열아홉에서 스물이 되면서 느꼈던 그 미묘한 감정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 책은 작가가 ‘나’로 등장하고 43쪽에 그림으로도 하루키가 나온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스무 살 생일에 겪었던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듣는 현재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604호에 있던 가구 진열까지 생각날 정도로 그때가 생생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르바이트를 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대타를 해주기로 했던 친구의 아픔과, 유난히도 많이 내리던 비, 멀쩡하던 매니저의 복통 등은 평범한 일상을 자꾸 비틀어 놓는다. 또 마침 그녀의 생일이다. 그녀가 604호에서 겪었던 일은 이러한 일들이 연쇄되어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장과, 절대로 갈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604호로 그녀가 향하게 된다. 거기다가 이때까지 식당 직원들을 통해 들어왔던 사장의 이야기들과 사장의 독특한 화법은 그가 마치 마술사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것은 만일 실제로 이루어져버리면 그 결과 나 자신이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 저는 상상이 안 돼요.…저한테는 인생이란 것이 아직 잘 잡히지 않고 있어요. 정말로. 그 구조를 잘 모르겠어요.”_48쪽
그녀가 자신의 생일에 관해 했던 말들이 나에게 참 깊게 울렸다. 인생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잘 잡히지 않는 것이지만 이제 막 활발히 삶을 시작해나가는 청춘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별 것 아닌 한 요소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 한마디가 반가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 같다. 결국 그녀가 빈 소원이 무엇인지는 끝내 정확히 알 순 없었다. 그러나 어렴풋이 알 만한 것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그녀의 소원은 삶에 대한 원론적인 고찰을 통해 나온 바람이란 점이다. 시간이 중요한 이 소원은 사장의 말대로 아주 간단히 이룰 수 있는 것이지만 완전히 이루어내기까지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마음가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인생의 끝에 가야지만 내가 끝내 가졌는지, 그러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소원은 음식처럼 시간이 중요했던 것이 아닐까.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_57쪽
자신 이외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스무 살의 그녀가 말한 말과 상응된다. 나 자신 이외의 것에 눈을 두다 보면 정말로 무너질 수 있다. 부차적인 것들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온전히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어찌됐든 다시 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기에. 이런 생각을 자신의 생일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나누는 것이 참 절묘하다. 생일은 내가 존재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그리고 그녀가 살면서 깨달은 것과 겹쳐서 생각해보면 생일과 나라는 존재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동안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생일은 그냥 지나쳐도 무방한 날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생일의 특별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창한 생일 파티가 아니더라도 생일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나, 눈 감아 줄 수 있는 실수들이 있을 것이다. 다가올 내 생일에는 그 특별함을 나만의 방식대로 잘 즐겨봐야겠다. 하루키처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실천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