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 - 영화와 광고로 본 문화의 두 얼굴
김선희 지음, 송진욱 그림 / 풀빛 / 2011년 5월
평점 :
우리는 인터넷과 정보매체의 발달로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의 대중문화를 클릭 한번으로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됐다. 영화나 드라마, 음악과 광고 등 다양한 대중매체는 전보다 풍요로운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이는 그 나라의 문화도 자연스레 알게해 줬는데, 현재 사회 구성원들의 욕망과 기호가 대중문화 속에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중문화를 즐기고 소비하기만 할 뿐, 그 뒤에 감춰진 것에 대해선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나 부터도 그런데 때로는 너무 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넘쳐나 그것을 소화하기에도 버거운 느낌이다. 이런 상황이니 점점 거대한 힘을 지닌 대중문화의 물결속에서 개인은 어쩔수없이 휩쓸려가게 된다. 처음엔 다양한 음식을 맛 볼수 있다는게 행복하지만,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계속 이것 저것 입 안에 넣어주면 피하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문화를 피할 방법도 없다. 포털 싸이트를 들어가는 순간 궁금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가십뉴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 처럼 말이다. 모두 다 자신의 가치관대로 의사결정과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에 속한 개인은 알게모르게 그 문화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고 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는 영화,드라마,광고 등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미지를 통해 그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 본다. 그저 즐기고 소비하기만 했지,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던 터라 흥미롭게 읽게 됐는데 그 중에서도 광고 쪽에 많은 관심이 생기고 수긍이 가게 됐다. 지금도 TV를 틀면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와 각종 보험 광고를 떠올려보자. 유독 한국에선 자동차 광고를 할 때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멋진 옷을 입고 드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자주 내보낸다. 그러고보니 외국 자동차 광고는 주로 가족 단위로 캠핑을 가거나 하는 장면들이 많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자동차 광고가 위와 같이 비슷한 포맷으로 나오는건 우리나라가 젊음을 추구하고 그것이 곧 성공과 경제적 능력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30대 초반에 비싼 자동차를 끌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남자들이 얼마나 될까 싶은데, 이런 환상을 품은 광고를 통해 이 차를 구입하면 광고 속 남자처럼 보일거라는 욕구를 만들어낸다. 이런 모습은 명품소비에서도 나타나는데, 비싼 값을 치루고 소비자들이 얻는 건 새로운 사회적 신분이다. 이 가방만 가지면, 이 시계를 차면 나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는 이미지를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사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과시적 소비가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명품소비를 하는 걸 개인의 선택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는 곧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과시적 소비라는 것 자체가 생기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대출광고와 보험 광고를 보면 마음이 찝찝한데, 요새 나오는 노인 치매 보험이 대표적 인 것 같다. 치매를 개인과 가족이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이기 때문에, 노인들로 하여금 나중에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 하라며 불안감을 조성하는게 씁쓸하고 화가 난다. 생명보험도 이와 다르지 않는데 거기선 이 시대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가장이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궁핍한 삶을 살게 될 테니(생활고에 시달리는 아내의 눈물과 주눅들어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아버지는 두려움에 몸을 흠칫 떤다. 그러면서 지금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을 보며 이 웃음을 평생 지켜줘야지 하는 다짐을 하며 그 대안이 보험이라고 말해준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지금 당장 보험을 들어라! 라는 협박을 하는 것 같아서다. 그렇지 않은 아버지는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돈을 버는 일꾼으로만 한정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상조 보험을 보면 죽어서도 돈 걱정을 해야 하는 것 같아 쓴웃음이 나온다.
한 시대, 한 문화권의 광고에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와 이상이 반영되어 있다. 광고문구들은 단순한 상품 선전이 아니라 내 삶을 지도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 체질부터 소비지향으로 바꾸려 한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사랑 이야기 외에도 부자와 서민의 생활상을 비교하는데 많은 할애를 하고 재미를 찾는다. 빈곤 가정이지만 가족의 따뜻함이 있는 금잔디와 돈으로 못하는게 없지만 외로움을 겪는 구준표의 신분(?)을 뛰어 넘은 사랑이야기는 아시아에서 여러번 리메이크 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가난한 여자가 부자 남자를 만나 신분상승을 겪는 이야기는 '꽃보다 남자' 외에도 자주 보는 단골 소재이다. 한국 드라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평소엔 만나기도 힘든 재벌들이 브라운관 속에선 널리고 널렸다. 가난하지만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않는 씩씩하고 착한 여자와 나쁜 남자이지만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재벌남은 서로에게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일종의 문화쇼크를 받고, 그 차이점을 넘어서 사랑을 이룬다.
이렇게 현실로 벌어질 일이 제로에 가까운 판타지 드라마가 유독 인기를 끄는 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신분 이동을 할 수 없는 사회구조 탓이라는게 저자의 설명인데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사람들의 신분상승의 욕구는 강렬하지만 길이 막혀있으니 이런 드라마로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금잔디에겐 구준표에게 없는 가족의 사랑을, 구준표에겐 금잔디가 가지지 않은 재력을 주며 걷으로 보기엔 동등한 입장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현실에선 결코 없을 판타지를 만족시켜준다.
영화를 통해서도 그 문화의 시선과 가치관을 엿 볼수 있다. 특히 '인디애나 존스', '300' ,그리고 '반지의 제왕' 에서 보여지는 동양의 모습은 서구인과 정반대로 그려진다. 서구인이 선 이라면 동양인을 비롯한 비서구인은 악이나 적 이고 모습마저 괴물로 그리거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고 미개하게 그려진다. 어렸을 땐 미국 오락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이미지를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이미지들이 강력한 선입견으로 굳어지고, 다른 문화를 접할 때 판단하는 잣대로 작용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우리에게 '경험 없는 기억'을 만들어 내고 결정하는 기준 역할을 한다 는 것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소수민족들의 삶을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의 표상으로 본다거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이유없는 배척과 편견을 만들어 내는 것 처럼 말이다.
천만 관객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에선 우리나라 국민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이미지가 담겨져 있다. 어머니와 형은 동생을 위해 희생을 하고, 그것을 관객은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며 눈물을 흘렸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건 숭고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걸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이에 대해 누구도 반대의사를 던지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이 한마디로 모든게 설명 됐다. 이는 한국 사회가 개인보다 가족을 중시하고 더 나아가 가족적 관계를 사회 전체로 확장하려는 가족주의 사회 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형이 희생한 이유는 가족 이라는 것 이외에도 똑똑한 동생이 성공해 자신들을 구제해줄 거라는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건 자신과 동생을 철저히 도구화, 대상화 시켰기 때문인데 이는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도 보여진다. 순수하지 않는 희생이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굴곡진 역사의 피해자가 된 형제의 이야기에 슬퍼 하게 됐던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알려면 드라마,영화,광고를 보자. 때로는 개그 유행어에도 그 문화를 살아가는 이들의 욕망과 가치관, 사회의 흐름을 엿 볼수가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라던가, 한때 전국민의 인삿말이 된 "부자되세요" 등은 그저 웃고 넘기기엔 씁쓸한 뒷맛이 있는 대사였다. 이 책을 읽으니 더 이상 팝콘을 먹으며 희희낙락 하면서 대중문화를 즐기진 못할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보지도 않겠지만),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는 새로운 버릇이 생길 것 같다. 대중문화처럼 펄떡펄떡 살아있는 사회 공부도 또 없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