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자전거 여행 창비아동문고 250
김남중 지음, 허태준 그림 / 창비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진이는 자신을 '고장난 신호등' 이라고 말한다. 엄마와 아빠는 가운데에서 어쩔줄 몰라 하는 자신을 보지 못한채 싸우고 언성을 높인다. 엄마가 일을 한 후로 집안엔 냉기가 흘렀고 부모님은 서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 가운데에서 호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나 여기 있어요" 라고 온 몸으로 말하지만 부모님은 모르는 것 같다.

호진이는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라면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지 않는데, 일에 지친 엄마는 호진이의 마음도 모른채 나무라게 된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야속한 마음이 든 호진이는 말대꾸를 했고, 이 모습을 본 아빠는 호진이의 뺨을 때리게 된다. 그러자 이번엔 엄마가 아빠에게 화를 내며 그렇게 또 싸움은 시작된다.  

  

부모님이 싸움끝에 '이혼하자'라는 얘기가 나오자 호진이는 큰 충격을 받고 집을 나가기로 한다. 방바닥의 머리카락 만큼도 나한테 신경 쓰지 않는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괜찮다. 걱정하게 할수 있다면 더 좋다. 후회하게 할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라는 생각을 하며 벌인 가출. 거기에 보태 부모님이 싫어하는 삼촌한테로 간다. 부모님의 관심을 받고 싶고 자신의 기분도 알아달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렇게 갑작스레 집을 떠나 삼촌을 만나러 광주로 가게 된다. 그런데 삼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려고 했고,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호진이가 얼떨결에 참가하게 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모임의 명칭은 '여자친구'로 '여행하는 자전거 친구'의 줄임말 이었다. 자전거로 12일을,무려1100km를 달리는 코스! 가출치고는 건전하지만 몸은 더 고될 것이다. 

모임엔 외국인 커플부터 삼촌의 친구들, 학생, 성인 등등 십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13살 호진이가 막내였고, 자신의 의지로 참가한게 아닌지라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페달 구르는 방법으로 오르막길을, 브레이크 잡는 법을 배우면서 내리막길을 자연스게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달라지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같이 밥먹고 웃기도 하고 지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타인과의 관계를 배우게 된다. 아름다운 경관은 보너스로 얻었다.

오르막길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내리막길에서 천국을 맛보는 여행길. 흘린 땀만큼 몸과 마음은 가뿐해지고 밥은 꿀맛이다. 자전거 여행은 집,학교,학원밖에 몰랐던 호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해줬다.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수다,동료애,마음을 터놓은 경험은 항상 꽉 막혀있고 답답했던 마음을 씻어주었다.  날이 갈수록 온 몸은 뻐근해지고 관절은 녹슨 로봇처럼 삐걱삐걱 거렸지만 마음만큼은 청량해졌다.   

여행 중 틈틈이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데 처음엔 부모님의 반응이 예상대로 였고, 관계 또한 변한게 없었다. 아빠는 얼른 들어오라고 소리치고, 엄마도 아빠와 화해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떠나기 전과 똑같은 집이라면 돌아가기 싫다. 떠나기 전과 똑같은 엄마 아빠라면 만나기 싫다. 이렇게 멀리 떠나 헤매는 것도 그것 때문인데 아무 일 없었다는듯 돌아오라고? 돌아가고 싶을만큼 그리운 건 하나도 없다 라고 생각하는 호진이가 참으로 안쓰러웠다. 그리운게 하나도 없을만큼 호진이가 받은 상처는 많이 컸던가 보다.

하지만 한뼘 자란 호진이의 마음은 부모님께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터놓게 했고, 두 분을 화해시킬 기막힌 계획도 만들어냈다. 부모님 또한 호진이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줄만큼 마음의 여유를 찾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부모님을 놀라게 해주고 관심받고 싶어서 시작한 가출이 나쁜 결과를 준게 아니라 가족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부모님때문에 자신이 피해입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호진이가 엄마와 아빠도 나 못지않게 힘들다는걸 깨닫게 됐으니까. 그러고보면 어른들이 볼때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놀기만 하는 삼촌이 이번에 큰 역할을 해줬다. 자전거 여행이 없었다면 호진이와 가족은 서로를 더 힘들게 했을 테니까. 만약 삼촌이 집을 나온 호진이를 닥달하고 혼내기만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호진이가 부모님과 만나는 날, 더이상 호진이는 '고장난 신호등'이 아닐것이다. 반짝 반짝 빛을 내뿜고 자신의 존재를 한껏 눈부시게 보여주는 호진이가 되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
프랭크 맥클러스키 지음, 이종철 옮김 / 북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철학을 논하던 대학교수가 강의실을 나서자마자 불을 끄고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이 된다. 이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진 이는 프랭크 맥클러스키 교수이다. 마호팩 펄스라는 작은 마을의 소방서에 지원한 교수는 지원서를 낸지 10년만에 대원이 되었다. 처음엔 지원서를 내고 연락이 없어 불합격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누군가 지원서를 분실해버렸던 것. 인연이 없을줄 알았던 소방관이 10년뒤 우연히 맺어지게 되었고 그는 무려 12년 동안 펄스 소방서에서 대원들과 함께 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대원 대부분이 이 마을에서 자랐고 일종의 폐쇄된 사회였다. 그래서 그는 이방인,풋내기,신참내기에 불과했고 조금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뤄야했다. 남자들만의 방식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프랭크는 몇번이나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결국 버텼고 그들의 신뢰를 얻어냈다. 함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평생 신뢰할수 있는 동료를 얻게 된 것이다.  

교수와 소방관, 다르지만 같은 깨달음을 주는 두 직업을 함께 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랭크는 철학을 토론하기만 했던 삶보다, 불 속으로 뛰어든 삶에서 더 많은것을 깨닫게 된다.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기 시작했고, 잊고있던 사소한 경험과 즐거움에 가치를 두었다. 둘 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을 던져야 하는 점이 같다고 말하는 프랭크 교수. 또 철학과 소방관 세계에서 '어림짐작'은 금물이라고 한다. 촌각을 다투는 사고 현장에서 정확한 판단만이 생명을 구할수 있기 때문이고, 철학에서의 어림짐작은 위험한 결론을 낼수 있어서다.  

프랭크는 펄스 소방서 대원들과 함께 한 다양한 구조 현장과 그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인 철학과 연결지어서 얻어낸 깨달음을 적는데, 개인적으론 약간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어 보였다.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가 더 생동감있게 느껴졌고 그걸로도 충분히 많은걸 생각할수 있게 해줬다. 굳이 철학적인 사족을 덧씌우지 않아도 말이다.  

소방관으로 재직하면서 벌어진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중에서 소방관들은 평소 자신의 집을 잘 정돈하려고 애쓴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 이유가 새벽 4시에 누가 와서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란다. 자신들이 불행과 재난이 펼쳐진 집을 많이 보기 때문이라니 이것도 직업병인걸까?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긴 한다. 혹시 언제 응급실을 갈지 모르니 평소에 속옷,옷을 단정히 입어야겠단 그런 생각.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지금 하는 것 외에 말이다. 프랭크는 교수라는 직업을 사랑하지만, 또 한편으론 소방관으로서의 삶도 동경했고 좋아했다. 그리고 말로 그친게 아니라 진짜 소방관으로 일하게 됐다. 처음 훈련할땐 다리가 후들거리고 겁먹었던 그가 구급차를 몰기도 하고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는 반납한채 그 일을 말 그대로 즐겼다. 멋진 동료를 얻었고 또 다른 철학을 배웠다. 자신이 하고자하는 바를 이룬 그가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행자 - 어느 교도관의 첫 사형 집행기
김영옥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최근 사형제도를 주제로 한 한국영화가 등장했다. 조재현,윤계상 주연의 [집행자]로, 사형수의 입장이 아닌 집행관의 시선으로 바라봐서 크게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 작품의 시나리오를 쓴 김영옥 작가가 소설로 다시 엮어낸게 이 책인데 영화와 결말이 다르다고 해서 보게 됐다. 

신참 교도관이 된 재경은 솔직히 교도관이 어떤 직업인지 잘 모르고 들어간 경우다. 취업이 힘든 요즘, 교도관도 공무원이고 경쟁률이 다른 시험보다 적다는게 응모한 이유였다.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교도관이 된 것이다.  

그런 재경이 교도관으로서 첫 출근을 하게됐다. 각종 흉악범죄를 저지른 재소자와 사형수들이 있는 그곳은 예상보다 훨씬 어두운 곳 이었다. 더구나 선배 교도관 배종호는 재소자들을 쓰레기 취급했다. 재경은 선배의 거칠고 무서운 조언에 어안이 벙벙하고 납득하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선배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게된다. 이곳에선 자칫 주의를 방심하게 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수도 있는 교도소라는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감옥에 갇힌다고 재소자들이 순한 양이 되겠는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세상에 대한 분노, 갇혀있다는 것에 대한 괴로움을 어떻게든 방출해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교도관이 된다. 감옥안에서 만날수 있는 민간인(?)은 교도관 뿐 이니까 말이다. 온갖 폭력과 시비,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 바로 교도관 이었고, 이런 모습을 보는 재경의 마음은 어지럽기만 하다.  

반면 왕고참 김교위는 모범수와 장기를 두면서 배종호와는 달리 차분하고 친근하다. 재소자를 쓰레기가 아닌, 한 인간으로 대한다. 과거에 흉악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런 모습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오랜 세월 보면서 교화되는걸 알게되면 그럴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범수 이성환처럼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사람과는 마음을 터놓을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12년만에 사형집행 공문이 내려오며 교도소는 술렁이게 된다. 그 명단엔 이성환도 포함되어 있어 김교위의 마음은 괴로워진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집행해야하는 재경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교도관으로 지내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심적인 괴로움을 토로하는 재경의 모습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그의 영혼이 서서히 파괴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것 같아서다.  

아무리 법집행 이라 하더라도, 내 손으로 죽이는게 아니라 하더라도, 극악무도한 살인자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죽이는데 개입하는건 큰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방금전까지 숨을 쉬고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걸 봐야만 했던 교도관들. 재경의 여자친구가 낙태를 하는 장면과 겹치며 '살인'의 끔찍함을 보여준다. 사형집행은 무고한 사람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 밖엔 되지 않는다. 인간의 심장이 차갑다면 모를까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약함을 자랑하라 - 절망의 끝에서 나를 살리신 성령님의 음성
이효진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 속 이효진씨의 얼굴은 매끄럽지 못하다. 세살때 뜨거운 물의 수증기가 연약한 피부에 3도 화상을 입힌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과 왼손은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됐다. 아차하는 작은 부주의가 그녀의 미래까지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런 딸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어린 시절 친구들은 그녀를 파충류 괴물 같다면 놀렸다고 한다. 어린 가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상처였다. 남자도 그렇겠지만, 여자에게 특히 더 얼굴이 중요하다. 사춘기 시절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거울을 보고, 예쁘게 화장도 하며 꾸미게 된다.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시기인데,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얼굴을 숨기는데 급급했다.  

아이들의 놀림, 특히 한 아이는 그녀를 보고 무섭다며 엉엉 울었다는데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많은 혼란과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내 얼굴이 왜 이런지, 내 삶은 왜 이리 비참한지에 대해 그녀는 누군가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그녀가 왜 이런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35년간을 어둠과 절망 속에서 보냈다는 그녀. 하지만 이젠 더이상 괴롭지도,어둠속에 숨지도 않는다. 아픔을 툭툭 털고 새 인생을 살수 있었던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이상 화상 입은 얼굴에서 슬픔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더이상 부러울것도, 부끄러울것도 없다고 말하는데 그런 생각이 참 대단해 보인다.  

하나님께서 '네 약함을 자랑하라'라고 하셨고, 그녀는 상처입은 얼굴을 통해 주님의 증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럴수 있다면 자신의 고난은 결국 하나님께 쓰임받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라면서.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당당히 내세울수 있는 장점을 자랑하기 마련이다. 단점이나 상처는 되도록 숨기고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만난 후로 자신의 약함을 당당히 드러냈다. 그녀의 인생과 가치관을 바꾸게 해준 종교는 그 자체로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꼭 기독교가 아니라도 좋다. 세상에서 나 만 비참하고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할때 누군가 날 구원해주는게 있다면 그거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 기회를 붙잡고 의지한다면 더이상 불행에게 발을 붙잡히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아니라도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는게 있다면 잡아야 한다.  

이렇게 당당히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린시절의 아픔 상처를 딛고 그 누구보다 멋진 삶을 사는 그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도 그녀의 믿음이 굳건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심리학자로 중독증세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딸이 있었던 대니얼 고틀립. 그 당시의 그는 참으로 행복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하고자 하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른세살에 닥친 교통사고는 그를 평생 휠체어에 앉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으로 바꿔버렸다.  한창 때 나이에 닥친 불의의 사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아내와 이혼하고 두 딸에게 아버지로서 해줘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이상 불행해하지 않는다. 사고는 육체적인 불편을 줬지만 정신적인 깨달음을 주었고,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과 상담을 해주니 말이다. 자신의 삶에서 불행만 보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 대니얼. 그가 해주는 충고,조언 이기에 더 가슴에 와닿는다.

사고를 당하기 전, 대니얼은 몸이 아픈 아내를 돌봤다고 한다. 그 과정이 힘들기도 하고 일방적인 희생과 강요받는 느낌이 들어 억울함도 생겼단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이 드는 자신이 싫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당신을 돌보느라 힘들고 지쳐"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묵묵히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돌보고 있는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이따금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니얼이 보살핌을 받는 입장에 처했다. 돌보는 사람도 힘들지만 보살핌을 받는 사람도 화나고 힘든건 마찬가지이다.  나를 보살피는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희생하고 있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상처가 됐고 죄책감도 생겼다. 또 사람들이 날 조금 더 챙겨주기 바라면서도, 보살핌을 거부하기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누군가 내 몸을 닦아주고 음식을 챙겨주고 오줌주머니를 비워주는 일 등에서 자립심과 자존감을 뺏긴것도 같다.

대니얼이 지금에와서 후회하는건 사고를 당한 직후 아내와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지나치게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때 서로를 꼭 안아주거나 원망하거나 울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저자는 뒤늦게 후회한다.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터 놓고 힘들면 힘들다고, 지치면 지친다고 말하는게 진정한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눈물을 펑펑 흘리고 소리를 지르는게 마음의 위안을 주기도 한다. 상대방이 상처 받을까봐 아무 내색을 하지 않는게 오히려 독이 된다.

이처럼  사고는 대니얼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언지, 사람으로 산다는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고심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최악의 상황을 맞았지만 그래도 살아지더라는 것이다. 처음엔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원망, 분노가 생겼다. 다니엘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가해자에게 저주를 퍼붓고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화'가 자신을 살아남게 하고 상처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화와 분노때문에 정작 피해를 보는건 자기 자신이었다. 소중한 삶을 느끼고 즐길 시간을 화 내느라 소비하는 꼴이 됐으니까. 대니얼은 용서란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와 화를 완전히 버리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대니얼이 만난 사람중에도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 한사람은 재활훈련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가 없자 곧바로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희망을 놓았더니 현실을 냉정하게 대면할수 있었고, 운명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하니 마음의 평안을 얻을수 있었단다. 사람들은 '희망'을 품는걸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때로는 '희망놓음'이 더 큰 약이 될수가 있다.  

정체성도 마찬가지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정체성 찾기란 환상을 쫒는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물론 정체성은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저자는 "지혜로움이란 우리에게 정체성이 없어도 살아갈수 있음을 아는것. 때로는 대명사 '나'를 보이지 않는 잉크로 써야 한다는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사람들의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놓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이 안되면 불안해한다. 낡은 이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면 이론대로 일이 풀릴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이렇게 이론은 우리를 옭아매고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렇게 생긴 불안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데, 이를 억지로 해소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란다. 그 과정에서 불안은 더이상 내 삶을 장악할수 없게 된다는게 대니얼의 조언이다. 완전히 떨쳐버릴순 없지만 불안에 휘둘리진 않는 현명한 길 같다. 

대니얼은 자신의 문제 외에도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와 부모님의 관계와 에피소드, 자신에게 상담을 해온 이들이 겪은 부모와의 문제등을 소개하며 조언을 해준다. 특히 그는 오랜세월동안 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서로를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였단다. 상대방을 바꾸려 했지만 그건 쉬운일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처럼 살지 말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원하지만, 정작 아이는 부모를 보면서 역할모델을 삼는다. 아이에게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이 마음 가는곳을 발견해서 행복을 찾도록 도와줘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다치고 상처받지만 결국은 치유되기 때문에 아이를 믿어야 한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위해주면 결국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는 셈이다. 부모가 자신의 인생부터 돌보는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내게 심리치료란 사람들이 자신안의 인간다움을 이해하고 그와 더불어 편안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니얼 고틀립. 그가 전해준 이야기와 메시지를 통해 조금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됐다.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완벽하게 자신을 알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깨지고 아프고 상처입어도 조금씩 노력하고 이해한다면 더 나은 오늘,내일이 될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