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자전거 여행 창비아동문고 250
김남중 지음, 허태준 그림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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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이는 자신을 '고장난 신호등' 이라고 말한다. 엄마와 아빠는 가운데에서 어쩔줄 몰라 하는 자신을 보지 못한채 싸우고 언성을 높인다. 엄마가 일을 한 후로 집안엔 냉기가 흘렀고 부모님은 서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 가운데에서 호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나 여기 있어요" 라고 온 몸으로 말하지만 부모님은 모르는 것 같다.

호진이는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라면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지 않는데, 일에 지친 엄마는 호진이의 마음도 모른채 나무라게 된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야속한 마음이 든 호진이는 말대꾸를 했고, 이 모습을 본 아빠는 호진이의 뺨을 때리게 된다. 그러자 이번엔 엄마가 아빠에게 화를 내며 그렇게 또 싸움은 시작된다.  

  

부모님이 싸움끝에 '이혼하자'라는 얘기가 나오자 호진이는 큰 충격을 받고 집을 나가기로 한다. 방바닥의 머리카락 만큼도 나한테 신경 쓰지 않는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괜찮다. 걱정하게 할수 있다면 더 좋다. 후회하게 할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라는 생각을 하며 벌인 가출. 거기에 보태 부모님이 싫어하는 삼촌한테로 간다. 부모님의 관심을 받고 싶고 자신의 기분도 알아달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렇게 갑작스레 집을 떠나 삼촌을 만나러 광주로 가게 된다. 그런데 삼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려고 했고,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호진이가 얼떨결에 참가하게 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모임의 명칭은 '여자친구'로 '여행하는 자전거 친구'의 줄임말 이었다. 자전거로 12일을,무려1100km를 달리는 코스! 가출치고는 건전하지만 몸은 더 고될 것이다. 

모임엔 외국인 커플부터 삼촌의 친구들, 학생, 성인 등등 십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13살 호진이가 막내였고, 자신의 의지로 참가한게 아닌지라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페달 구르는 방법으로 오르막길을, 브레이크 잡는 법을 배우면서 내리막길을 자연스게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달라지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같이 밥먹고 웃기도 하고 지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타인과의 관계를 배우게 된다. 아름다운 경관은 보너스로 얻었다.

오르막길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내리막길에서 천국을 맛보는 여행길. 흘린 땀만큼 몸과 마음은 가뿐해지고 밥은 꿀맛이다. 자전거 여행은 집,학교,학원밖에 몰랐던 호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해줬다.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수다,동료애,마음을 터놓은 경험은 항상 꽉 막혀있고 답답했던 마음을 씻어주었다.  날이 갈수록 온 몸은 뻐근해지고 관절은 녹슨 로봇처럼 삐걱삐걱 거렸지만 마음만큼은 청량해졌다.   

여행 중 틈틈이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데 처음엔 부모님의 반응이 예상대로 였고, 관계 또한 변한게 없었다. 아빠는 얼른 들어오라고 소리치고, 엄마도 아빠와 화해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떠나기 전과 똑같은 집이라면 돌아가기 싫다. 떠나기 전과 똑같은 엄마 아빠라면 만나기 싫다. 이렇게 멀리 떠나 헤매는 것도 그것 때문인데 아무 일 없었다는듯 돌아오라고? 돌아가고 싶을만큼 그리운 건 하나도 없다 라고 생각하는 호진이가 참으로 안쓰러웠다. 그리운게 하나도 없을만큼 호진이가 받은 상처는 많이 컸던가 보다.

하지만 한뼘 자란 호진이의 마음은 부모님께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터놓게 했고, 두 분을 화해시킬 기막힌 계획도 만들어냈다. 부모님 또한 호진이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줄만큼 마음의 여유를 찾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부모님을 놀라게 해주고 관심받고 싶어서 시작한 가출이 나쁜 결과를 준게 아니라 가족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부모님때문에 자신이 피해입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호진이가 엄마와 아빠도 나 못지않게 힘들다는걸 깨닫게 됐으니까. 그러고보면 어른들이 볼때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놀기만 하는 삼촌이 이번에 큰 역할을 해줬다. 자전거 여행이 없었다면 호진이와 가족은 서로를 더 힘들게 했을 테니까. 만약 삼촌이 집을 나온 호진이를 닥달하고 혼내기만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호진이가 부모님과 만나는 날, 더이상 호진이는 '고장난 신호등'이 아닐것이다. 반짝 반짝 빛을 내뿜고 자신의 존재를 한껏 눈부시게 보여주는 호진이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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