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떠나기 법정 스님 전집 2
법정(法頂) 스님 지음 / 샘터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법정스님의 수필집 "버리고 떠나기"를 읽었다. 1993년에 첫출판된 책이니 어지간히 '일찍' 읽은 셈이다. 작년에 "무소유"를 읽었는데, 지루하지도 않고 쉬우면서도 정신을 맑고 편안하게 해주는 글이라 생각되어 스님의 다른 책도 읽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파랑새님이 감명깊은 책이라고 추천을 해 주셨다.  

스님이 살아가시는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주변 분들 얘기 등 친근한 소재를 가지고 쉽고도 문학적인 언어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일러주신다. 그 동안 참 많이 방황하면서 살아왔고, 한때는 우리 사회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안계신다면서 쓸쓸해 했었는데, 글을 읽고나니 참으로 든든한 마음이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이렇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삶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라는 말씀은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말씀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사시지만 높은 영혼과 깊은 정신세계를 가지신 스님을 보니,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수록 정신세계는 더욱 넓고 풍요로와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복잡한 도시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직장인의 정신세계는 얼마나 형편없고 황폐한가? 반비례까지는 아니어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같다. 

부질없는 일에 얽매여 세월을 헛되지 보내지 말고 진짜로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은 내 가슴을 친다. 상황과 여건 때문에 하고픈 일을 못한다고 한탄해 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하고픈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나를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봐야 겠다.  

작년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 뵈온 스님의 모습은 스님의 정신세계와 지성의 높이에 비해 무척이나 소탈하고 진실되고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때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읽었다. 처음부터 빠짐없이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하나 출퇴근 시간을 쪼개어 읽다보니 듬성듬성 밑줄을 긋게 되었다.

혼자 보기 아까와서 밑줄 그은 부분 소개해 올립니다~. 이미 보신 분도 많으시겠지만..

맑게 흐르는 개울가에 무심히 앉아있노라면 사는 일이 조금은 허허롭게 묻어올 때가 있다. 한세상이 잠깐인데 부질없는 일에 얽매여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 얽매임에서 훨훨 벗어나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다할 때, 비로소 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일이 자신의 몫이 아닌 줄 알면서도 둘레의 형편 때문에 마지못해 질질 끌려간다면 그것은 온전할 삶일 수 없다. ('개울가'에서 중)

나쁜 친구란 일상적인 생활태도가 음울하고 불쾌한 자들, 육신은 살아있으면서 정신은 죽어있는 자들, 사상과 대화가 보잘것없는 자들. 또 나쁜 친구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끝도없이 지껄이고 있는 자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 보지도 암ㅎ고 상투적인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 자들이다.(이상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인용)

친구란 더 말할 것도 없이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인 메아리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내 이웃에서 나쁜 친구를 가려내기 전에 제 자신은 과연 남에게 좋은 친구의 구실을 하고 있는 지부터 살펴볼 일이다. ('어진 이를 가까이 하라' 중)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밟지 말라
내가 걷는 이 발자국
뒷사람의 길잡이 되리니

('승가의 기초교육' 중)

☞ 서산대사님의 한시. 옛 스승님들의 깊은 맘이 담겨있는 시. 감동~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인용..'그대가 곁에 있어도' 중)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면밀히 지켜보십시오, 자신의 생각과 말씨, 혹은 걸음걸이와 먹는 태도, 운전습관, 그리고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그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는 이 과정에서 순간순간 삶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안으로 살피고 지켜보는 일이 없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거친 황무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기 바로 이 자리' 중) 

☞ 이런 글을 보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것같은 기분이다. 지금까지는 외부세계에만 시선을 돌렸으니까. 내면세계에 돌리더라도 외부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자기자신의 외부세계의 수단이 된 셈이었다.

관광과 여행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관광은 흥청거리는 소비이지만, 여행의 삶의 탐구다. 일상의 굴레에서 훨훨 떨치고 벗어남으로써, 온갖 소유로부터 해방됨으로 써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신의 참 모습 앞에 마주서는 것이다. ('온화한 얼굴 상냥한 말씨' 중)

기도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후의 자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능을 가지고도 어쩔 수 없을 때 기도가 우리를 도와줍니다.('맑고 투명한 시간' 중)

☞ 그렇구나~ 기도가 이런 거 구나~

행복의 조건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단순하고 소박한 삶과 고양된 영혼이다. 머리는 무한한 창공에,발은 굳건한 대지에, 단순소박한 삶과 드높은 영혼이 우리들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꽃을 보러 정원으로 나가지 말라
그럴 필요는 없다.
그대 몸 안에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이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의 꽃잎을 달고 있다.
그 수천의 꽃잎 위에 앉으라
그 수천의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안에서나
정원 밖에서도
늘 피어있는 그 아름다움을 보라

(까르비의 시 인용..'아름다움과 조화의 신비')

당신의 마음에 어떤 믿음이 움터나면 그것을 가슴 속 깊은 곳에 은밀히 간직해 두고 하나의 씨앗이 되게 하라. 그 씨앗이 당신의 가슴속 토양에서 싹트게 하여 마침내 커다란 나무로 자라도록 기도하라. 묵묵히 기도하라. 사람은 누누가 신령스런 영혼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지라도 맑고 환한 그 영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그릇된 길에 헛눈을 팔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씨앗으로 묻으라' 중)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함게 사는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 몫을 더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갈등과 모순과 비리로 얽혀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개인이나 집단이 정서가 불안정해서 삶의 진실과 그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그러므로 차지하고 채우는 것은 어떤 으미에서 침체되고 묵은 가거의 늪에 갇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차지하고 채웠다가도 한 생각 돌이켜 미련없이 선뜻 버리고 비우는 것은 새로운 삶으로 열리는 통로다
('버리고 떠나기' 중)
 

2004년 3월2일 

삶가 고인의 명복을 빏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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