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쓸모없다 - 사노 요코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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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속담에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 친구라 했고,
프란시스 베이컨은
'자신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잡아먹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들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친구라면 내 슬픔을 나누고,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으며,
때로는 하나의 영혼처럼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일이
이렇게나 대단한 과업이었던가.



그래서일까.
우리는 상대가 진정한 친구가 되어줄 사람인지를
재빨리 판단하고, 그렇지 않다면
거리를 두라고 배운다.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 관계에 쓸 에너지를
나에게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 이런 통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는 사람이 있다.



사노 요코.
일본 그림책의 고전 <100만 번 산 고양이>를
비롯해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2003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자수포장" 훈장을 받았다.
냉소와 애정이 공존하는
통찰과 유머로 사랑받는 작가다.



"친구는 쓸모없다."
친구가 없어도 된다는 뜻으로 들리지만
실은 정반대다.
친구에게 쓸모를 요구하지 말라는 의미다.



"친구란 쓸모없는 한때를
함께 낭비하는 사이다."
-216면


특정한 목적 없이 만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별것 아닌 일로 웃고,
함께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


사노 요코가 말하는 친구는
쓸모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무용한 시간들을
함께 쌓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무용함이 곧 가치 없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에는
가치로 환산할 수 없어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 친구는 나의 멍청한 면, 한심한 면,
못난 면, 시시껄렁한 면을 전부 받아주었다.
이 친구가 없었다면 나의 얄밉고 시시한
구석들은 갈 곳을 잃고 내 안에 부글부글
넘쳐났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내가 과연 살 수 있었을까.
(중략)
우리가 함께 보낸 엄청나게 쓸모없는 시간의 흐름,
그 쓸모없음을 빨아들이며 우리는 살아온 것이다."
- 215면



친구 앞에서는 멋지고 현명한 사람인
척하지 않아도 된다. 투덜거리고 한심하게
굴어도 된다. 마음 내키는 대로
엉뚱한 말을 내뱉어도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서 잠시 내려와
더 나은 나를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우정에는 정말 목적이 없을까.
사노 요코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쓸모없는 것을 좋아했다.
당장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것,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는 것을 좋아했다.
능률이나 성적이나 발전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것이 제일 중요했다.

이윽고 그런 것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
온갖 무용함을 흡수해,
사람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토마토를 맺게 하리라고 믿었다."
- 218면






그러나 사노 요코가 말하는
'쓸모없음'은 낭비가 아니다.
삶은 당장 성과로 드러나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기다리며
기대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사람은 목적 없이 보낸 시간 속에서
조금씩 자기 자신으로 익어간다.
포도주가 시간을 견디며
깊이 숙성되듯이 말이다.



사노 요코가 좋아했던 쓸모없는 것들도
시간을 흡수하며 결국 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무언가가 된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냥 좋아하며
존재하면 된다.
친구와 함께라면 그래도 된다.


#도서지원 #사노요코 #친구는쓸모없다 #우정 #시절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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