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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선인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김호연이 돌아왔다.
시나리오 작가로 시작해 만화 스토리 작가, 편집자까지 거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독보적인 "이야기꾼"이 된 작가.
책과 거리가 먼 아들 녀석도 <불편한 편의점> 한 권은 뚝딱 읽어낼 만큼, 그의 문장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며들어 읽게 하는 따뜻함이 있다. 나도 늘 작가님의 신작을 기다 왔지만 이번 신작 《서울의 선인》은 유독 나를 설레게 했다.
작품의 모티프가 창세기에서 왔다.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땅으로 보내신다. 이때 아브라함은 "의인 50명을 찾으시면 이 도시를 멸망시키지 말아 주소서."라고 간구한다. 끝내 그 기준을 "열 명"까지 낮추며 거듭 애원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열 명의 의인조차 없었고, 결국 도시는 불타 사라진다.
《서울의 선인》에서도 서울을 멸망시키기에 앞서 천사가 서울로 내려온다.
"전에 말했지만 나는 천사예요.
타락한 도시 서울을 멸망시키러 온.
근데 위에서 마지막 체크를 하래요.
그러니까 여기에 아직도 의인이 남아 있는지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20면
얼굴에 피어싱을 주렁주렁 달고 재미교포처럼 서툰 한국말을 구사하는 "성갑"(성스러운 가브리엘)이라는 구수한 이름의 천사가 나타난다. 소설의 주인공은 북한산 아래 오래된 동네에서 17년째 철물점을 운영하는 "제1회 서울 의인상" 수상자 김재근이다. 과거 이 일로 경찰이 되었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그는 불문율처럼 그 시절을 숨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재근의 아들이 큰 사고를 친다. 합의금 4천만 원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재근은 어쩔 수 없이 성갑의 기묘한 제의를 받아들인다.
"나 서울에 의인 있는지 확인하는 미션 받았어.
근데 서울 너무 큰 거야.
힘들다고 했더니 위에서 서울 의인상 수상자 중에
찾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아저씨 도움 받아야 해."
"의인상 수상자 한 명에 5백 해요.
그동안 수상자 아홉 명이고 아저씨 빼면 여덟 명.
여덟 명 다 확인하면 4천만 원."
- 23면
그렇게 재근은 과거 서울 의인상을 받은 여덟 명을 찾아 아직도 의인으로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아주 옛날에는 열 명이었는데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한 명만 있어도 봐주기로 했어요. 믿기 힘들면 믿지 않아도 돼요. 원래 믿음이란 게 안 믿기는 걸 믿어야 믿음이니까. 그냥 아저씨는 아저씨 일해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해요."
- 43면
휴, 천만다행이다. 단 한 명의 의인만 있어도 서울은 무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황량하고 이기적인 도시에 과연 그 한 명이 온전히 남아 있을까?
"북한산에서 시작된 큰불의 연기구름이
검은 군대가 되어 서울을 덮치고 있었다."
- 272면
"저 도시의 멸망이 일주일 남았다.
문득 서울을 지키고 싶어졌다."
이번 작품도 김호연이 김호연했다.
“시대의 공기”를 느끼려 노력하고, 인간과 관계를 중심에 두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판타지적 질문 위에서 재미와 묵직한 통찰을 함께 밀어 올린다.
명확한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에 다음 장을 궁금해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스토리 속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상갑이가 어떤 얼굴로, 얼마나 어수룩한 발음으로 혀를 굴리며 재근이와 대화하고 있을지 말이다.
이번에도 작가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다.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탄탄한 서사 감각으로 서로에게 기댄 채 상처를 회복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며 선함과 회복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소설, 《서울의 선인》
각박하고 메마른 현실 속에서 우리가 붙잡고 그리워해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뭉근하게 끓여 맛있게 보여준다. 비현실적인 서울의 풍경이 가장 현실적인 위로로 믿어지는 것도 김호연이 믿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마법 때문이 아닐까.
판타지라는 거울을 통해 비춘 인간 내면의 선한 의지가 책을 덮은 후에도 긴 여운과 함께 포만감으로 뜨끈하게 남는다. 지금도 상갑이의 어수룩한 발음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그 어설픈 온기가 나를 미소 짓게 하고, 다시금 사람답게 살고 싶어지게 한다.
회색빛 메마른 도시에서
서로를 구원하는 기적을 맛보고 싶다면,
《서울의 선인》 한 번 주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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