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행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 우리 삶에 우여곡절이 필요하다는 과학적 증명
오이시 시게히로 지음, 신소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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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시게히로 오이시.
행복, 의미, 문화에 관한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저자는 이 책에 한국어판 특별 서문을 수록했다.



한국이 저자의 두 번째 고향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한국인이시고, 《행복의 기원》을 쓴 서은국 교수님과도 막연한 선후배 사이다.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을 밝힌 서문과 세계적인 학자들의 추천사까지 줄줄이 읽고 나니 기대감이 최고조에 오른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 하지만 곧 실망했다. 나는 책이 가리키는 방향과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인생의 가치를 '행복'이나 '의미'에 둔다.
하지만 저자는 좋은 삶이 행복이나 의미만으로 정의되지 않음을 꼬집으며 "세 번째 차원"을 제시한다.
- 행복한 삶 (편안하고 만족스럽고 즐거운 삶)
- 의미 있는 삶 (사회에 기여하고 변화를 일으킨 삶)
그렇다면 세 번째는?


바로 "정신적인 풍요로움"이다.
이 개념이 가장 우월해서가 아니라 심리학이 '행복'과 '의미'만을 따져왔기에 새로운 길을 강조한 것이다.


참신하고 장난스러워져라. 다채롭게 많은 경험을 추구하라.
열정적인 에너지로 삶을 탐색하고 세상에 도전하라.
우여곡절 속에서 흔들리며 확장하라.



"내가 떠난다면 힘들어지겠지만
남는다면 더 큰 말썽이 터지겠지." (더 클래시)
'정신적인 풍요로움'이라는 방향은 분명 매혹적이지만, 나처럼 안정적이고 평온한 일상을 지향하는 사람에겐 무언의 압박이었다. 남아있지 말고 떠나라고, 무한한 삶의 가능성을 누리라고 밖으로 떠미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의 구석구석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알게 됐다. 책은 "안정을 버리고 모험가가 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게 했다. 안분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초대를 어떻게 새로운 관점으로 바꿀 수 있을지 말이다. 인생은 단 하나의 좋은 경로를 택해야 하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여러 차원의 길을 동시에 걸을 수도 있다.



'단 하나의 정답'이라는 함정에서 탈출하기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성공'이라는 단일한 잣대로 좋은 삶을 정의해 왔다. 명문대, 대기업, 우수한 배우자라는 성공의 공식이 곧 행복이자 의미라고 믿어온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행복과 의미조차 때로는 함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역설적으로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행복이나 의미를 대체하는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 인생이라는 식탁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선택지 정도다. "누구나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며, 좋은 삶은 단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책은 안정을 추구하는 나의 삶 역시 그 자체로 '좋은 삶'의 범주 안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
SNS를 켜면 타인의 쾌적한 일상과 화려한 경험이 쏟아진다. 나의 일상은 그 앞에서 초라하게 느껴질 때, 샬러츠빌 중학교 교장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검은 쓰레기봉투에 짐을 담아 기숙사로 향하던 아들이 묻는다. "왜 우리는 여행가방이 없어요?" 아버지는 말했다. "얘야,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


여행 가이드북 같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 여행 가방이 필요했다면, 나만의 가치와 평온을 추구하는 내게는 사실 검은 봉투면 족하다. 모험하는 삶이 풍요롭다면, 안분지족하는 삶은 견고하다. 저자 또한 인정하듯 심리적 풍요는 종종 불안정함을 동반한다.


그 불안정을 감당할 그릇이 되지 못했다면 부러 폭풍 속을 달려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평안의 가치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에너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정적인 모험 : 4,000번의 생을 사는 법
경험이라고 하면 거창한 여행이나 활동을 떠올린다. 조이 할머니처럼 여든다섯에 빙하를 보러 떠나는 것만이 모험은 아니다. 모로코의 서점 주인 아지즈는 매일 12시간씩 서점을 지키며 휴가도 가지 않지만, 4,000권의 책을 통해 4,000번의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유학이나 여행 같은 물리적 이동 없이도, 문학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겪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풍요로워질 수 있다. 굳이 빙하 위에 서지 않아도 한 권의 소설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인지적 복잡성을 키우는 행위 자체가 정적인 모험이 된다. 에너지를 쏟아붓는 모험이 버겁다면, 앉은 자리에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미적 경험이면 충분하다.



이 책의 효용은 성격 개조에 있지 않다. 평온함 속에 장난기와 관점의 전환이라는 한 스푼을 섞어보는 것에 의미가 있음을 확인한다. 밋밋하고 고요한 일상에서 예기치 못한 작은 유머를 발견하고 그 경험을 소중히 되새기는 것 역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이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떠나라고 등 떠미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그곳에서의 여정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한다. "목적지만큼 여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안정을 사랑하는 나의 느린 걸음 또한 후회 없는 좋은 삶의 경로가 될 것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낯선 시선을 발견하는 미세한 변주로도 풍요로운 모험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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