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 - 잘못된 의학은 어떻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마티 마카리 지음, 김성훈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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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마카리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


마케팅을 위해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을 거란 의심을 하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읽을수록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었구나,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학계의 집단사고와 권위주의가 어떻게 잘못된 관행으로 뿌리내렸는지, 어떻게 환자를 죽이는지 수많은 사례들을 소개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리는 진단과 처방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절대적 권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충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당신의 의사가 틀렸다면? 그 오류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의학계 전체가 수십 년간 공유해온 '집단적 맹점' 때문이라면?"


2002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학 저널에 호르몬 대체 요법(HRT)이 유방암 위험을 26%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의사들은 즉각 처방을 중단했다. 갱년기 증상으로 고통받던 수십만 여성들이 약을 끊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연구자들이 강조한 '26% 증가'는 상대위험도였고, 실제 절대위험도는 고작 0.08%에 불과했다. 1만 명 중 8명이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공포는 이미 퍼진 뒤였다. 저자는 잘못된 해석으로 HRT를 중단한 여성들 중 약 14만 명이 심혈관 질환과 골다공증으로 조기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를 바로잡는 데는 10년 이상이 걸렸다. 왜일까? 한번 만들어진 '공식 입장'은 체면과 이해관계 때문에 쉽게 뒤집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의학계의 맹점, '권위의 관성'이다.


2000년, 미국 소아과학회는 부모들에게 지침을 내렸다. "아기가 3세가 될 때까지 땅콩을 주지 마세요." 알레르기 예방을 위한 권고였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미국에서 땅콩 알레르기 아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반면 영국과 이스라엘에서는 생후 초기부터 땅콩을 먹이는 문화가 있었고, 알레르기 발생률은 훨씬 낮았다.


면역 시스템은 조기 노출을 통해 학습되고 형성된다. 땅콩을 피하면 피할수록 몸은 그것을 '위험한 이물질'로 인식하게 된다. 땅콩 알레르기를 만든 건 의학계였다. 2017년이 되어서야 소아과학회는 정반대의 지침을 발표했다. "생후 4~6개월부터 땅콩을 안전하게 노출시키세요." 17년 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불필요한 알레르기로 고통받았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기에 이를 바로잡는 데 이렇게나 긴 시간이 걸렸다.


저자는 이것을 '집단사고'라 부른다. 의학계 안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은 비과학적이거나 과격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동료평가 시스템은 폐쇄적이고, 기존 권위자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만 저널에 실린다. 연구비는 정설을 강화하는 연구로 흘러간다.


이 책은 단순히 의료계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마카리는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첫째, 환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선 안 된다. 의사의 말을 무조건 믿기보다 질문해야 한다. "이 권고의 근거가 되는 연구는 무엇인가요?" "대안은 없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 가이드라인이 바뀐 적이 있나요? 왜 바뀌었나요?"


둘째, 세컨드 오피니언을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특히 수술이나 장기 치료가 권고될 때는 반드시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한 명의 의사 말이 진리가 아니다. 의학은 확률의 학문이고, 같은 증상에도 여러 접근법이 있을 수 있다.


셋째, 통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의사가 "이 약이 위험을 30% 줄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게 상대위험도인지 절대위험도인지 물어야 한다. 100명 중 10명이 줄어드는 건지, 1만 명 중 3명이 줄어드는 건지에 따라 결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책은 의료 불신을 키우는 비난이 아니라 더 나은 의료를 위한 뼈아픈 충고다. 의료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의사도 틀릴 수 있다. 저널에 실린 연구도 뒤집힐 수 있다. 정부 가이드라인도 20년 뒤에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하지만 이 진실을 아는 것이 당신을 지킨다.




수많은 의사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가족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의료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며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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