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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에 대하여
이예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평점 :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에 대하여
이예지 인터뷰집"
사람을 가장 궁금해하는 끝없는 질문자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GQ〉 〈씨네21〉 등에서 기자 및 에디터로 일해온 글쟁이다. 서문을 읽자마자 대단한 필력가임을 알 수 있었다.
적확한 어휘로 치밀하게 설계된 글맛이 났다. 짧지만 긴 속뜻을 압축한 문장들은 명쾌했다. '아, 난 이런 글을 쓰고 싶구나.' 낭독하고 필사하며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은 글이었다.
작가 정서경, 뮤지션 김윤아, 배우 전도연, 배구선수 김연경, 영화감독 이경미, 배우 심은경, 뮤지션 전소연, 작가 김은희, 미술감독 류성희, 소설가 정보라, 댄서 모니카, 뮤지션 씨엘, 아나운서 강지영, 희극인 김민경, 소설가 최은영까지.
15명과 나눈 인터뷰는 무엇부터 들어야 할지 망설여지는 풍성한 만찬이었다. 몇몇 낯선 이름도 보였지만, 대부분이 익히 알려진 이들이라 기대와 호기심이 부풀어 오른 채 첫 페이지를 넘겼다.
"이들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알게 됐을까?" 하는 질문을 안고 그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성공에 이르렀는지 알아내 비법을 훔쳐 내 것으로 삼고 싶었다.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과정을 염탐하는 심정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질문이 바뀌어 있었다.
"이들은 무엇을 선택했고 어떻게 지켜냈는가?"
그들은 인생의 비기를 알아낸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되기를 원한 자들이었다. 유일무이한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하고 지켜내기 위해 변화 속에 자신을 던지며 쉬지 않고 도전한 사람들이었다.
"막상 공부해보니 철학은 너무 논리적이었어요. 저는 논리를 잘 못 참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죠. 저는 논리의 비약과 이야기의 도약을 좋아하거든요. 나는 탈락이다, 싶었죠. 그리고 영상원에 갔어요."
- 작가 정서경
"제가 국내에만 있었다면 이런 기록들을 세우지 못했을 거예요. 해외에서 뛴 경험이 저를 성장시켰고, 지금의 김연경을 만들었죠. 선수로뿐 아니라 인간으로도요. 타지에 나가 혼자 지내면서 생활력과 책임감도 더 많이 강해졌고,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들도 생겼어요."
- 배구선수 김연경
"벗어나고 싶은데, 차마 두려워서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스스로를 압박하면 오히려 사방이 벽으로 막혀요. 그 대신 계속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게 천천히 변화할 시간을 주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만 잊지 않는다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배우 심은경
방식도, 분야도 하나같이 다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자신에 대해 잘 알기에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성공한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되어가며 지경을 확장하고 고유한 색깔을 밝히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팬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인터뷰이는 최은영 작가님이었다. <쇼코의 미소>는 작가님이 내 속에 갔다 오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유일한 소설이다. 그 이유를 이번에 알게 됐다.
"저는 많이 참는 버릇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 정도의 인내심을 작동시키기 위해선 에너지를 정말 많이 써야 하거든요. 결국 그 인내심이 자신 뿐 아니라 관계도 훼손시키고요. 어릴 때부터 누구나 사회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만들어온 행동 패턴이 있는데, 제게는 그것이 갈등을 회피하고 참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쌓아두면 결국 병이 되잖아요. 30대까지 그렇게 살았고, 상담을 장기간 받으면서 그것에 제 패턴이고 제게 해로운 방식이었다는 걸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잘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고치려고 노력 중입니다."
- 작가 최은영
작가님의 인터뷰 속에 내가 있었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낸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완전히 극복하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큰 위안을 얻었다. 최은영 작가님의 전작을 모조리 읽어보고 싶은 열망이 불타오른다.
15명에게 건넨 공통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나도 가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해서 참 반가웠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각자가 발견한 믿음은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명확히 보여주는 거울 같다.
"나만 옳지는 않다.
모든 건 불확실하다.
내가 했던 노력들.
내 마음의 소리.
운. 될 놈은 된다. 그러니까 열심히 하자. 그래서 무엇이든 후회가 없습니다.
타인에게서 내가 견딜 수 없는 부분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나의 것이다. 즉 스스로에게서 싫어하는 모습을 투사해서 본 것이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을까?
이 예쁘고 커다란 질문을 손에 쥐고 다니는 하루는
분명히 더 나다운 멋진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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