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무인도
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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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견디기 어렵다.
즐긴다고 말하는 건 나를 속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무인도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혼자여서 편하고
가끔은 몹시 행복하다는 점이다."
-11면


에세이판 <삼시세끼>를 읽는 기분이었다. 1장은 소설다운 스토리도, 플롯도 없이 주인공만 등장할 뿐인데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이 슴슴한 이야기의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온 걸까.


도시와는 전혀 다른 결이 좋았다.
도시의 삶은 끊임없는 속도 경쟁이다. 늘 분주하고 촉박하다. 할 일은 넘친다. 그에 비해 무인도에서의 삶은 비효율과 고독의 반복이다. 물질을 하고 텃밭을 가꿔 끼니를 마련하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모든 것을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일궈가는 일상이 정갈했다. 텅 빈 여백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인도의 느린 공기 속에서 명상하는 기분이다.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누군가의 호흡을 듣는 느낌이다. 이야기가 달려가는 긴박감 없이 존재가 머무는 느긋함이 편안했다.


수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바다의 물결, 바람과 새소리, 해 질 무렵 하늘색으로 삶을 가득 채운 감각들이 은은한 재미를 불러왔다. 뭔가를 일으키지 않아서 오히려 존재 자체가 깊이 들어오는 침투력이 은근하다. 이 낯선 밀도가 이 소설의 힘 같다.



"혼자 무인도에서 지내기로 하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 중 한가지는 바로
매일 아침 산책이다.
그때 정갈한 옷차림을 갖추고
나가는 것 또한 나와의 약속이다.
혼자 살면서 자칫 내 생활이 흐트러질까 봐서,
그 피치 못할 불안정함을 무엇으로 다잡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것이다.
내 삶을 바꾸려 찾아온 곳에서
스스로 나태해지고 염증을 느끼고 싶진 않다.
그러니 섬을 잘 가꾸려면
내가 어느 정도는 말끔히 살아야 한다."
- 56, 57면


이 장면이 특히 좋았다. 완벽히 혼자인 시간은 방치되기 쉽기에 매일을 설계하기는 쉽지 않다. 지안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규칙을 만들고, 정체성을 엮는다.


문득 궁금했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만 채운다면 어떨까? 내가 시간을 주도하지 못하는 건 바빠서가 아니라, 나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안은 무인도에서 자기를 돌보는 방식을 선택했고, 나는 도시에서 나를 흘려보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흐트러지기 쉬운 일상을 주도하고, 시간을 정성스럽게 가꾸는 지안의 삶에서 자신을 향한 사랑과 삶에 대한 존중을 배운다. 스스로를 존귀하게 대하는 자세와 삶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지안이 무인도에서 얻은 큰 선물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데리고 무던히 살아가는 《나의 완벽한 무인도》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를 비춰보는 깨끗한 거울 같았다. 지안의 하루하루는 특별한 사건 없이도 묵직했다.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과 가까워졌다. 세상에서 떨어진 것 같지만 오히려 세상의 본질에 더 다가간 것 같았다.


이 소설을 덮고 나면, 어쩌면 당신도 내일 아침의 공기를 조금 더 오래 느껴보고 싶을지 모르겠다. 손에 닿은 물의 온도와 입에서 녹는 밥알의 단맛에 기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 존재하는 자신을 만나는 연습이 우리만의 작은 섬에서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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