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감각 - 식물을 보고 듣고 만질 때 우리 몸에 일어나는 일들
캐시 윌리스 지음, 신소희 옮김 / 김영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꾸준해야 한다”
이 말은 거의 신앙처럼 내 삶을 지배했다.
뭘 하든 며칠은 해야 하고, 몇 주는 유지해야 결과가 생긴다는 관념을 받들고 살았다.


그러니 자연과의 접촉 역시 자주, 오래, 충분히 해야만 ‘효과’가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초록 감각》을 읽고 이 신념이 미세하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흔들렸다.


옥스퍼드 생물학과 교수인 저자 캐시 윌리스는 말한다.
"자연의 미생물 다양성에 잠시 노출되기만 해도, 피부와 장내 미생물군의 다양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장내 미생물군이 체내에 들어와 장기를 변화시키고 면역계 기능과 건강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185면)


놀라웠다. 숲, 흙, 공기, 나무껍질에 살고 있는 자연 속 미생물(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원생생물 등)이 우리 몸과 건강에 직결되어 있었다. 당연하게 들리는 자연 예찬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생물학적 변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 있고, 심지어 우리 건강을 결정짓는 이 작은 존재들은 그 자체로 자연의 확장이다.


“잠시”가 “꾸준함” 못지않게 결정적일 수 있었다. 자연은, 혹은 자연과 접속하는 우리의 생물학적 시스템은, 찰나에도 반응한다. 그동안 내가 무심코 흘려보낸 숲속 산책 한 번, 흙을 맨손으로 만진 한 번이, 사실은 내 몸에 작은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왜 ‘잠시’라는 시간을 하찮게 여겼을까.
효율과 계획으로 중무장한 일상에서, 짧은 순간은 늘 덜 중요했고, 금방 사라지는 건 의미가 덜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 책은 되묻는다. “정말 그런가?”


‘잠시’의 자연은 그 자체로 강력하다.
피톤치드나 미생물, 자연의 소리와 빛, 바람 같은 환경요소들은 우리 몸과 감정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준다. 흙을 만지는 아이일수록 면역계가 더 안정되며, 정원 가꾸기를 하는 사람들은 덜 우울하고, 실내에 식물을 두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진다.
그 모든 변화가, 바로 그 ‘잠시’의 접촉에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거창하게 자연을 누릴 필요는 없다. 창밖으로 나무를 보고, 집안에 화분이나 다양한 빛깔의 생화를 놓고, 허브향 디퓨저를 곳곳에 두는 것. 피부에 닿는 거친 나무껍질을 쓰다듬고, 숨어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잠깐’이 내 몸과 마음을 새로 조율하는 데 충분할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깨닫자, 공원 벤치에 앉는 10분조차 참으로 귀하고 감사했다. 이 책에서도 20분 이상, 일주일에 최소 120분은 자연을 만끽하라지만 못 들은 척 슬며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변화를 위한 시간이 꼭 길 필요도, 스탑워치로 체크하듯 정확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자연은 말한다.


“나는 네 곁에 잠시 스쳐도 너를 바꿀 수 있다, 충분히.”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논문의 활자로 아는 자연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과학지식을 담은 정보의 책이라기보다 오감으로 자연을 감각하게 이끄는 책, 《초록 감각》이 건네는 싱그러운 자연의 선물을 받아보길 바란다.


#도서지원 #초록감각 #캐시윌리스 #김영사 #식물을보고듣고만질때우리몸에일어나는일들 #자연예찬 #자연의힘 #초록 #자연 #건강 #새소리 #환경미생물 #생태계 #과학책 #과학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