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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캐럴라인 도즈 페넉 지음, 김희순 옮김 / 까치 / 2025년 4월
평점 :
"유럽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아메리카 또한 "유럽"을 발견했다"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권력을 가진 자가 역사를 기록한다.
캐럴라인 도즈 페넉의 《야만의 해변에서》는 권력이 관점이 된 유럽 중심의 역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정복자'의 세계사에서, '정복당한 자'는 조용히 침묵 당한다.
하지만 이 책은 유럽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역사가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을 '경험하고, 살아낸' 서사를 되살린다. 침묵으로 가라앉은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저너스를 수면으로 올려 반전과 반란, 통념을 뒤엎는 이야기로 기울어진 역사의 시선에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저자는 아즈텍, 마야, 이누이트 등 다양한 원주민들이 모두 노예가 아니었음을 밝힌다. 귀족, 외교관, 하인, 통역사, 가족, 연예인, 노예 등 다양한 신분으로 유럽 대륙에 존재했음을 풍부한 사료로 증명한다. 놀라웠다. 제국주의 구조 속에서도 저항하고 교섭하고 생존한 주체적인 ‘역사의 행위자’, 대항해 시대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중심에 있던 인디저너스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인디저너스들은 이 역사의 중심이었으며,
중심이고, 중심이어야 한다."
- 335면
저자는 인디저너스를 식민주의나 정복자의 프레임에서 빼내어 "다른 경로로 여행했던 사람들"로 재설정한다. 대항해 시대 한 세기 전부터, 그들은 여행으로 새로운 세계를 조성하고 향유했다. 무역하고 약탈하고 협상하고 결혼하고 어울리고 싸웠던 광대한 연결망이 오늘날의 범세계주의적인 현대의 씨앗이었음을 말한다.
《야만의 해변에서》는 인종적인 비방으로 흔히 쓰는 "야만"이라는 단어로 책의 핵심을 강조했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를 ‘야만의 땅’이라 불렀지만, 반대편에서 원주민들이 바라본 유럽 역시 실상은 낯설고 비이성적이며 야만적이었다.
"그곳은 자원이 넘쳐나는데도 불평등과 빈곤이 만연했고,
침략 이전의 가치와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땅이었다.
또한 어린아이가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곳이었으며,
평범한 사람들은 그 부당함을 불평 없이 온순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곳이었다."
- 19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믿어온 ‘문명 vs 야만’의 구분이 과연 타당한지 묻게 된다. 유럽의 발전은 착취와 침묵 위에 세워졌고, 원주민들의 정체성과 지식은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지워졌다. 약자의 역사가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서 지워지고 숨겨진 자들을 복원해 ‘제대로 본다’는 것은 소거된 목소리를 재구성하고 통합하는 작업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두고 뒤늦게 왜 이런 복잡한 과정이 필요할까. 그래야 과거의 침묵이 오늘날의 억압으로 되풀이되지 않는다. 편향된 관점은 문화와 역사로 이어졌고, 지금도 인디저너스의 후손들은 여전히 불이익을 받으며 식민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왜곡된 구조 속에 피해자가 여전히 살아 있다. 중심과 주변의 구조를 밝히고, 주변화를 드러냄으로써 인식의 틀 자체를 바꾸는 것, 그렇게 후손들이 자기 정세성을 왜곡 없이 구성하고 제자리를 찾아 미래를 재설정하는 것. 역사학자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진짜 이야기를 완성해낸 저자가 자랑스럽다.
유럽 중심의 프레임 자체를 깨어 기존의 역사 구조를 재구성한 《야만의 해변에서》는 현재를 바꾸기 위해 잘 조정된 렌즈이자,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지도였다.
그동안 얼마나 일방적인 시선으로 세계사를 바라봤는지, 그리고 이제 어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지를 돌아본다. 체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포함한 진짜 역사도 점점 더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터부시하고 제외함으로 문제의 해법일 수도 있는 다름의 가능성까지 없애는 불행이 우리에게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도 야만이라는 단어를 은밀하게,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들이대고 있는 건 아닐까?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침묵시키고 있는 존재는 없나?
반대편의 시선으로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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