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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
김미리.귀찮 지음 / 밝은세상 / 2025년 4월
평점 :
이 책은 두 사람, 김미리 작가와 귀찮(김윤수) 작가가 각각의 삶과 계절을 기록하며 주고받은 편지집이다. 서로 다른 공간, 다른 감정을 품은 두 존재가, 같은 사계절을 통과하며 각자의 마음을 꺼내 모았다. 서로를 설득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나는 이렇게 느끼고 있어"라고 담담히 털어놓는 이야기 속에, 서로를 궁금해하고 존중하는 마음들이 곱게 놓여있다.
딱히 용건이 없는 편지를 쓴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쓸모를 따지자면 무용하고, 이득을 따지자면 남는 게 없다.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 긴 문장으로 찬찬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일상을 나누는 과정은 답답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를 읽으며 생각했다. 편지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필요로 하는 소통 방식이라는걸.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라는 외침을 편지가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선명히 들을 수 있을까.
내 마음도 활짝 열리는 것 같았다. 말이 아닌 글로 타인과 내밀하게 교감하는 경험. 쓸모를 넘어 대가 없이 내주는 시간과 마음에서 사람의 향기가 났다. 들숨에 들숨으로 폐부 깊숙이 채우고 싶은 향기였다.
작가들은 빠른 대화 대신, 느린 기록을 택했다. 한 사람의 계절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답하지 않는다. 충분히 살아낸 후에, 각자의 삶과 감정을 곱씹어 다시 꺼낸다. 이 과정은 어쩌면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관계의 예의'일지도 모르겠다. 빠른 반응보다 깊은 이해를, 즉각적인 판단보다 긴 여운을 중시하는 태도. 그 느린 교환이야말로, 이 책에서 돋보이는 지점이다.
나란히 수놓인 활자들 사이로 작가들의 수다가 펼쳐진다. 내가 편지를 받은 것처럼 설레고 신났다. 품격 있으면서도 은은하게 웃기는 글들을 읽으며 욕심이 났다. 오만하게도 내가 글을 매우 매우 잘 쓰게 된다면 이렇게 쓸 것만 같다고, 아니 이렇게 꼭 써보고 싶다고. 어쩜 이렇게도 곱고 예쁜 마음들이 한가득 담겼는지 참으로 선물 같은 책이었다.
계절이라는 흐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계절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봄은 언제나 기쁨이 아니고, 겨울은 반드시 고통만도 아니다. 희망과 두려움, 기쁨과 공허가 한 계절 안에서도 엇갈려 스며든다. 그 사실을 두 작가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함께 있음'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태도였다. 둘은 나란히 있지만, 결코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 같은 봄에도 다른 슬픔을 겪고, 같은 여름에도 다른 기쁨을 품는다. 그 다름을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고, 서로의 거리를 존중한다.
"우리는 다르다. 그러나 나란히 있을 수 있다."라는 선언이, 관계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것 같다. 관계란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채로도 함께 머무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끝내 이해할 수 없어도, 그래도 괜찮다고 믿고 싶기도 했다.
빠르고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만이 소통의 전부가 되어버린 시대에, 이 책은 효율을 거스르는 편지를 선보였다. 쓸모없음 속에 깃든 존엄. 속도 대신 머무름을 선택하는 용기. 편지가 그렇듯 가장 소중한 것은, 언제나 시간과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나란히 걷는 일이다.
같은 속도일 필요도 없고,
같은 목적지를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나란히 계절을 건너는 일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동행임을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에서 배웠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도 한 자락 편지가 되었다. 고운 이에게 꾹꾹 눌러 편지를 쓰고 싶다. 쓸모를 따지지도,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고. "우리는 다르지만, 나란히 걸을 수 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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