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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평점 :
" 《아인슈타인의 꿈》의 한국어판이 처음 출간된 지 이제 25년이 다 되어갑니다.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1993년 저는 이 책의 성공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 후 전 세계에서 이 작은 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주고받다가 결혼하게 된 연인들,
사랑하는 부모가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이 책을 낭독하며 위안을 준 사람들,
이 책에 영감을 받아 음악, 발레, 연극과 같은 작품을 만들고
공연한 음악가와 무용가와 배우 들......
우리는 모두 세상을 조금씩 바꿉니다.
저는 이 책으로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물리학자이자 인문학자, 작가인 앨런 라이트먼.
과학 시대의 영성을 탐구한 그의 전작,
《초월하는 뇌》를 무척 인상 깊게 읽었다.
그런 그의 첫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재출간된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아인슈타인의 꿈》 은 내게 파격적이었다.
소설은 인물, 배경, 사건이 중심이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인물과 사건보다
"시간적 배경"에 핵심 역할을 부여한다.
주인공도, 줄거리도 없는
철학적이고 실험적인 소설을 완성했다.
1905년,
젊은 아인슈타인이 특허청에서 일하면서
특수상대성이론을 구상하던 시기.
그는 연구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자지 못해 많은 꿈을 꾼다.
이론을 고민하면서 꾼 꿈들은 "시간이 다른 세계"였고,
영화의 몇 장면처럼 잠시 흐르는 꿈들을 모은 것이 소설 《아인슈타인의 꿈》이다.
2장 분량의 짧은 꿈들이 30개의 장으로 변주되는 색다른 구성이다.
하나의 긴 스토리가 아니라서
중심인물이나 주요 사건이 없다.
꿈속의 세상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작동한다.
다른 시간 속 전혀 다른 삶의 양상과 감정들은
흥미롭고, 신기하지만 낯설고 무섭기도 했다.
물리학자라는 저자의 직함이
부담스러웠다면 걱정 마시라.
이 책엔 공식 대신 상상력이 담겨 있다.
작가가 해체하고 새롭게 조립한 시간을 따라,
다르게 살아볼 상상력만 있으면 된다.
순서대로 읽을 것도 없다.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페이지는
곧 시간 여행을 떠나는 문이 된다.
꿈속 세상에 자신을 등장시킨다면,
어느새 사고와 시선이 확장되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원으로 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악수와 입맞춤, 출생, 주고받은 말 등
모든 것이 정확하게 그대로 되풀이된다."
- 23면
"지구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간이 더디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몇몇 사람들은 젊음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자 산으로 집을 옮겼다."
-37면
"사람들이 단 하루만 사는 세계를 생각해 보자.
누구나 해돋이를 한 번, 해넘이를 한 번 본다."
- 103면
"사람들이 영원히 산다고 생각해 보자.
이상하게도 도시마다 사람들은
두 가지 종족으로 갈라진다.
나중족과 지금족이다."
- 111면
시처럼 읽는 소설에 가깝다.
한 편 읽고 멈춰도 되고,
하루에 한두 편씩 천천히 읽으면 더 좋다.
한 번에 다 읽기보다,
음미하면서 읽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낯선 모양의 시간 속에서 여러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이 세계라면 어떻게 살까?
시간이 멈춘다면 가장 간직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일까?'
시간과 관련된 물음들은
삶과 죽음, 욕망과 삶의 허무함.... 같은
인생의 본질로 이어졌다.
우리는 어쩌면 30가지의 다양한 시간을
모두 살아본 건 아닐까.
어떤 날은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서 지루하고,
어떤 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서 아쉽고,
어떤 기억은 반복해서 떠오르고,
어떤 일은 원인과 결과가 헷갈릴 만큼 복잡하다.
때로는 미래를 알 것 같고,
때로는 모든 게 멈춘 것 같다.
다양한 시간의 얼굴을
우리는 이미
조금씩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이 펼쳐준 "특별한 시간 세계"는,
인간이 느끼는 마음속 시간의 풍경을
비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길게 늘여보고 줄여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과거의 지금이었고,
미래의 지금일,
그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구나!
결국 시간은 모두
"지금"의 연속이다.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시간을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의 꿈》은 넌지시 알려준다.
새로운 믿음도 얻었다.
수많은 시간의 얼굴 중,
강물처럼 흐르는 바로 이 시간의 형태가
인간에게 가장 온당하고 완전한 시간이라는 것을.
조물주가 창조한 시간의 무늬들 중,
이 흐름이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선물이라는 것을.
서른 번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단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지금,
나는 정말 살아 있는가."
잠잠한 물결처럼,
이 질문은 한동안
나를 계속 흔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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