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파올라 퀸타발레 지음, 미겔 탕코 그림, 정원정 외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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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다.
그림책을 펼치면
봄날의 나른한 햇살이 쏟아져 나온다.


이 눈부신 계절과 잘 어울리는 레몬빛 세상에는 아이들이 산다. 표지에는 한 아이가 버드나무 아래 카라꽃 향기 짙은 들판에 엎드려 있다. 아이는 무엇을 하는 걸까?


" 씨앗을 심어요. 그리고 자라는 걸 지켜봐요."

겨울에 심은 씨앗에서 싹이 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카라꽃은 5~8월에 핀다. 눈이 지나가고 꽃이 만발하기까지, 아이에게는 아주 오랜 기다림이었을 텐데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서 자라고 있는 씨앗이 아이에게는 보이는 걸까.


"가끔은 망칠 수도 있어요.

비밀을 소중히 여기고
두려움 앞에도 마주 서 봐요."

친구가 잘라준 머리카락이 엉망이 되고, 종이컵 전화기로 비밀을 나누는 아이들. 뱀이 무섭지만 도망가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나뭇가지로 소통을 시도하는 모습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이제는 여기 없는 이들을 기억해요."
늘 천진하게 놀기만 하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죽은 새를 발견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친구들과 함께 생명의 마지막을 애도한다.


"떠나야 할 때는 떠나요.
손을 잡아요. 그리고 때가 되면 놓아줘요.
다가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을 준비가 되었나요?
스쳐 가는 이들에게 손 흔들어 줄 준비는요?"


《어떤 날은》은 아이에게 들려주는 어른의 목소리로 들리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아이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이 똑같은 날처럼 보여도 삶의 다채로운 순간과 경험들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 속에는 삶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와 응원이 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며,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적극적으로 살아가기를 권하는 따뜻한 격려가 담겼다.


원제목은 "making space"
《어떤 날은》이라는 제목으로 책의 초점이 공간에서 시간으로 이동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공간과 시간은 참 닮았다. 우리가 존재하는 터전이 지금 여기, 바로 시간과 공간이니 말이다.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은 곧 시간이기도 하고 마음이며 관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고 존재한다. 씨앗을 심고 기다린다. 친구들과 탐색하며 몰두하다가도 멈춘다. 죽음과 실패를 마주하기도 하고 이별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자신을 탐구하며, 틈틈이 작은 행운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은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을 시적인 문장과 부드럽고 간결한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매일의 어떤 날 속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작고 특별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소중히 여기는 섬세한 시선들이 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힘을 빼고 느슨하게 흐르듯 표현된 그림의 선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완벽하게 설계되고 구조화된 그림이 아니라 어딘가 조금은 부족한 듯한 그림은 편안하고 정겨웠다. 오직 검은 선과 노란 채색으로만 표현된 세상은 여백과 어우러지며 자유롭게 상상하고 문장을 음미할 여유를 준다.


문장도 그림도 단순해 보이지만 생동감이 넘친다. 단순하기에 메시지에 집중하게 한다. 두 번, 세 번 자꾸 들춰보게 만드는 매력이 가득하다. 일상의 날들을 덤덤하게 그저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고 작은 행복으로 채우며 적극적으로 여느 날들과 같지만 다른 어떤 날을 만드는 태도와 가치를 권하는 소리다. 그것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만드는 비밀을 속삭이는 그림책 《어떤 날은》의 노란빛 세상에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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