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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평점 :
《자기만의 집》은 21살 호은이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엄마와 이혼해 따로 살고 있는 아빠가 대학생인 호은이 지내는 기숙사 앞으로 불쑥 찾아온다. 15살 이복동생 승지를 엄마에게 맡겨달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남긴 채 사라진다. 엄마 윤선은 호은, 승지와 함께 아빠를 찾아 나선다. 한 편의 로드무비처럼 아빠의 집과 직장, 친구들을 만나보지만 소용없다.
"어른들은 정말 너무들 했다. 엄마의 애인인 아저씨에다, 엄마의 전남편인 아빠, 내 양육권을 포기한 아빠가 키우는 아빠의 새로운 딸 승지...... 도대체 관계 정립이 안 되어 어색하게 방황하는 내 정신세계는 안중에도 없이 제멋대로들이다. 겨우겨우 근육을 풀어 엄마의 애인을 받아들였는데, 이번엔 동생이라니."
- 44면
"나에게 떠맡기겠다는 수작인 거야?"
엄마는 정말 숨이 턱 막히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혼한 전처가, 전남편이 재혼해 생긴 아이를 맡는 일 같은 건 세상에 없는 일이다.
- 53면
어쩔 수 없이 세 사람은 윤선의 집에서 부대끼며 함께 한다. 관계 속에서 오해하고, 사랑하고, 외로워하고, 깨달아가는 과정들이 주옥같은 문장들로 얽혀 예술로 완성된다.
《자기만의 집》은 질문하는 소설이다.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쉴 새 없이 물음표를 던진다. 소설 속 인물들도 자신에게, 서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한다. 그것들은 고스란히 독자에게 쏟아져 마음속에서 뒹군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의 본질을 묻는 것 같았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냐고, 당신은 누구냐고 정답 없는 대답을 촉구한다. 인물들과 함께 고민하며 내 시선은 자주 책과 창밖 하늘을 오갔다. 어렵지만 풀다 보면 알 것 같았다. 답을 찾지 못해도, 답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독서를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모르는 작가들이 숱하지만, 이렇게나 훌륭한 소설가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는 사실이 어리둥절하다. 서평단으로 엄청난 책들을 많이 만났지만, 《자기만의 집》처럼 대단한 책을 무료로 지원받아도 되나 죄송한 마음이 든 건 처음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밑줄 긋고, 인덱스로 표시하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이 수놓인 예술작품 같은 소설이었다. 한국문학의 독보적인 목소리, 삶을 꿰뚫는 감각적인 문장이라는 평을 듣는 전경린의 필력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다. (미리보기로라도 당장 경험해 보시길!)
"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 278면
"오즈의 마법사"처럼 토네이도에 집이 통째로 휩쓸려 세차게 흔들리다 다시 땅에 안착한 뒤, 호은이 간절하고도 다정하게 외치는 말이다. "내 존재로부터 솟아나 흐르는 물결 속에 얼굴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었다. 물결은 점점 더 깊고 큰 강물이 되겠지. 나만의 강물이....."(278면) 호은은 알아버렸다. 모두가 자신만의 강을 가지고 있음을, 시어서 도저히 먹지 못할 것 같은 레몬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디고 다룰 수 있게 되면 결국은 시원한 레모네이드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인생에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언제나 좋은 일은 나쁜 일과 함께 온다. 반대로 나쁜 일에도 좋은 일이 끼어서 같이 온다. 빛과 그림자는 하나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 닫힌 문 뒤로 새롭게 열리는 문의 존재를 믿는 것. 나와 내가 거할 집,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 또한 그렇게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들이 뒤엉켜 균열을 만든다. 깨질지라도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인생의 깊이 있는 주제에 천착해 자신만의 길을 찾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었다. 개인적으로 완벽한 해피엔딩을 읽는 기쁨이 컸던 《자기만의 집》. 강력 추천한다.
"네가 파고들 때마다 엄만 내 가슴이 이렇게 깊은가 하고 놀랐어. 그 연하고 따스하고 포근한 두 팔로 나의 목을 꽉 안고 눈물을 흘릴 때, 엄만 경험한 적 없는 감동에 젖었어. 자기에게 화를 내는 사람을 그토록 깊숙이 끌어안는 존재가 자식 외에 또 있을까........ 호은아, 난 그렇게 엄마가 되기 시작했어. 지금도 너를 안을 때마다 난 조금씩 더 큰 엄마가 되어가고 있어."
- 25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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