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 소설, 향
최정나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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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작가정신의 서포터즈로 10월부터 3월까지 활동하고 있다. 올해 처음 받은 작가정신의 책은 《로아》라는 예쁜 이름의 제목과 다르게, 결코 예쁠 수 없는 아동학대를 그린 중편소설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폭력, 그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힘없는 존재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이야기한다.


7살 로아는 14살 친언니에게 참혹한 학대를 당하며, 언니가 결혼하는 날까지 끔찍하게 살아간다. 군중의 폭력을 응시하는 작품으로 주목받던 사진작가 아버지는 자살하고, 자신 외에 소중한 것이라곤 없던 엄마는 두 딸을 방치하는 데다 학대마저 방관하며 자기합리화 속에 살아간다. 폭력의 가해자, 언니 상은은 극심한 애정 결핍과 외로움으로 모든 삶의 에너지를 로아에게 분출한다. 로아를 괴롭히기 위해서만 사는 사람 같다. 유일하게 자기 편이라고 여긴 로아를 폭력으로 완벽하게 통제함으로써 소유하려 한다. 파괴적인 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해 최선을 다해 자신과 주변의 모든 세계를 지옥으로 만든다.


《로아》는 매우 교묘하고도 다층적인 폭력의 참상을 세심하게 밝힌다. 신체적 폭행은 물론이고 정신적, 언어적인 가스라이팅으로 어린아이의 내면세계를 무참히 밟는다. 그 악랄함에 혀를 내둘렀다. 책 초입에 이러한 경고 문구를 일러두는 책은 처음이다. "본문 중에 다소 폭력적이고 잔인한 표현이 있을 수 있어, 이와 관련된 정신적 외상이 있으신 분들은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폭력의 본질을 파헤쳐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인 만큼 중요하게 다뤄야 할 내용이지만, 그저 가상의 소설로 치부하고 읽기가 어려웠다. 평소 이런 장르의 콘텐츠를 유독 힘들어해,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장면들에 두통이 올 것 같았다. (19금일 정도로 일반적인 수준을 넘지는 않는다. 15세 이상 독서 추천)


"집에서 얼어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때쯤, 욕조에 차가운 물을 한가득 받아두고 로아를 불렀다. 욕실 앞으로 조르르 달려온 로아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목욕하자."
나는 내가 만든 세계를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로아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로아는 겁이 나는지 눈만 끔뻑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걸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언니 말을 잘 들어야지."
나는 로아를 잡아채 그대로 발가벗겨서 욕조로 밀어 넣었다. 로아는 기겁해서 물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첫인상이 중요하니까 물러서면 안 되었다. 나는 어깨에 힘을 실어 로아의 머리통을 물에 처넣었다. 한참 만에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민 로아는 입술을 덜덜 떨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괴로워하는 로아를 보니 희열이 피어올랐다."
- 19면


"나는 네가 되어본다. 언니가 되어 나를 본다.
너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본다."
《로아》의 가장 큰 특징은 "폭력의 객체와 주체의 완벽한 전복"을 그린 독특한 시점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로아가 언니의 입장으로 과거를 복기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중반부를 읽을 때까지도 이러한 설정을 공감하지 못했다. 고통스럽기 그지없던 어린 시절의 한복판을 굳이 언니로 돌아가야 했을까?


"이 회귀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밝혀두고 싶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을 편히 하려는 게 아니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보려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내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것을 마주하고, 거대한 벽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나를 둘러싼 세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똑똑히 봐야 했다. 거기서 새로운 씨앗이 움틀 거였다.
- 12면


가해자를 이해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로아》는 "이해"라는 길의 반대편을 향하고 있음을 줄곧 강조한다. 계속 생존하기 위해, 나로 살아가기 위해, 과거가 가로막은 현재의 벽을 부수기 위해,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이해를 철저하게 배제함으로써 나를 이해하려는 로아 자신을 위한 시도였다.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다른 이의 눈으로 낯설게 볼 때, 볼 수 없던 걸 보게 될 것이었다. 가정 폭력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의 무관심과 무책임, 전염되고 대물림되는 폭력의 입체적인 면모들까지 표현된다. 폭력을 더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였던 것이다.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인식의 대비가 괴리감을 만들며 복잡다단한 폭력의 현실을 낱낱이 비춰준다.


《로아》는 전형성으로 상은의 실체를 명명한다.
"상은의 세계는 슬픔의 실체는 없고 자기 연민만 가득했다. 타인은 없고 자신만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도 없는 세계,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이용 가치에 따라 선과 악이 바뀌는 세계, 그 안에서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기에 늘 불안에 시달리는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는 상처도 슬픔도 모두 전형이다. 전형적인 사고에 갇힌 자에게 자기 언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므로 생각도 없고 변화도 없는 세계, 고작 그런 세계, 고작 그런 사람, 나를 불안에 떨게 했던 이의 실체" (144면), "남을 괴롭히면서 이미 죽어 있는 자신을 한 번 더 죽이"는 사람이 상은이었다. (148면)


언니 상은을 조금도 이해하고 싶지 않게 선을 지켜주신 작가님께 감사했다.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 그 편에 슬쩍 마음 한 조각을 건네는 연민의 순간은 없었다. 상은은 나름의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이유가 있었다고 변명하지만, 피해자의 증언은 분명했기에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애정 결핍과 방치로 상처받음으로 폭력을 끝없이 내면화하고 세상에 대한 방어 기제로 나약함을 지키려 했다는 모든 이유가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니의 메커니즘으로 로아 자신을 보는 눈에는 언니의 시선이 녹아들 수밖에 없다. 그 혼돈한 경계에서 나는 로아가 언니의 마음을 다 알듯이 서술하는 그 자체가 한편으로 섬뜩했다. 가해자가 되어 상상에서 자신을 해하고, 또다시 고통 당하며, 가해자인 언니를 추측하며 극단으로 몰아감으로써 자신이 가해자가 되는 무한반복의 고통. 폭력으로 배우고 자가발전하며 세상의 이치를 비틀어 깨닫는 역겨운 인간이 되기가 얼마나 끔찍했을까. 작가님께 이 마주하기는 독자인 내가 읽어내기 힘들었던 고통의 수십 배가 넘도록 컸을 것 같다. 문장마다 서린 독기로 짐작할 수 있었다. 상은과 상은이 만든 무질서한 무자비함을 얼마나 버티기 힘들었을까.


한편으로 독자로서도 혼란스러운 지점이 있었다. 로아이면서 상은이기도 한 시점ㅣ지만 둘 다도 아닌 불분명한 자리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그런 이유로, 작가의 말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금지된 재현>을 언급한 것 같다. "로아는 금지당한 재현을 시도한다. 산산이 부서져 수많은 로아가 된다. 로아이면서도 로아가 아닌 모습으로, 새롭게. 동시에 그것을 보는 하나의 시선이 된다. 이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치자."


아이였던 로아의 순수한 시선과 언니의 폭력성이 뒤섞인 문장들 중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가름하기가 어려웠다. 가해자의 시선은 본 기억은 결코 객관적인 진실이 아닐 것이다. 기억은 주관적이고 불완전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형된다. <금지된 재현>에서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로아》의 폭력에 대한 기억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변형됐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혼란스러울 금지된 재현을 시도한 덕분에, 《로아》가 던지는 질문은 다른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했다. 많은 질문을 내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로아》는 탁월하다.


마지막으로, 회피에 관해 말하고 싶다. 아이들의 엄마인 기주와 상은은 극도의 회피 성향을 보인다. 나는 이 참극의 근본 원인이 바로 이 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의 문제를 알면서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크면 달라질 거라는 막연함으로 기가 막힌 방치와 방관으로 머문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튀김 기름이 시커멓도록 오래되어도 끝까지 교체하지 않는 것처럼. 남자와 쾌락으로 도망가고 피하며 온갖 핑계를 대어 아이들을 개선하려 적극적인 시도는 전혀 없다. 끔찍하게 무력하다.


상은 또한 마찬가지다. 괴상한 논리로 동생을 괴롭히며 애착을 두는 것으로, 자신을 방치한 엄마에 대한 분노와 복수로 남 탓만 하며 세상에서 도망간다. 폭력과 파멸만 가득한 섬에 로아를 가두고 곁에 두려워 할 뿐, 자신이 발 디딘 세계와 자신을 전혀 들여다보지 못한다. 회피와 공격 성향이 만나면 비극이 된다는 것을 이보다 소름 끼치게 그린 작품이 있을까.


작가정신의 서포터즈 작정단이 되지 않았다면 내 손으로는 절대 선택하지 못했을 이야기다. 힘들어도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몰입감이 결말까지 가도록 끝까지 밀어준다.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장과 촘촘한 서사의 맥락이 주는 힘이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듯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구성과 깊은 관념이 매력적으로 얽혀 (이런 표현 쓰기가 망설여지지만)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폭력의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탐구하길 좋아하는 분, 개성적인 문체와 독특한 서술 방식을 선호하는 분, 여운이 남는 결말을 좋아하는 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 출판사 작가정신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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