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더 귀하다 - 아픔의 최전선에서 어느 소방관이 마주한 것들
백경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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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더 귀하다》는 8년 차 소방관 구급대원인 저자 백경이 마주한 가난, 고통, 죽음의 현장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픔의 최전선에서 어느 소방관이 마주한 것들"
부제목에서 밝히듯, 저자가 소방관이라고 해서 화재를 진압하고 사람들을 긴급 구조하는 현장이 등장할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소방공무원은 구급대원,
화재진압대원, 구조대원 등으로 나누어진다고 하니, 《당신이 더 귀하다》의 저자는 앰뷸런스를 타는 "구급대원"이다.


사실 《당신이 더 귀하다》 서평단 당첨 소식을 듣고 놀랐다. 내 기억으로 나는 이 책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기 두려워 마음을 닫아 건 사람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간절한 심폐소생술"이라는 추천사가 딱 나였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두려웠다. 그들의 고통이 너무 괴로워서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당신이 더 귀하다》가 내게 왔다.


프롤로그를 읽고 《당신이 더 귀하다》에 다가가기 주저했던 마음이 단번에 사라졌다. 일반인이었던 작가의 첫 책이어서 사실 문학작품으로 갖는 기대치는 낮았다. 프롤로그 단 2장만 읽었는데 깜짝 놀랐다. 시적이고 담담하게 풀어간 문장들은 깊고 깊었다. 보통 사람의 글이 아니었다. 책장이 왼쪽으로 쌓이면서 알 수 있었다. 《당신이 더 귀하다》는 글이라기보다는 파도 치던 저자의 삶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그 때를 그저 종이에 옮겨놓아 여전히 물결 치는 바다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현실로 살아가는 자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삶으로 쓴 기록이었다.


이렇게 《당신이 더 귀하다》에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라도 읽기 쉽게 간결하게 쓰인 뛰어난 가독성 덕분이다. 또, 현장감 있는 생생한 경험 서술과 대문자 F이실 것 같은 세밀한 감정 묘사 덕분에 몰입감까지 높아 책을 중간에 덮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신파적이거나 감정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울리는 진솔한 삶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의외였던 점은 "사건"이 아닌 그 안에 "사람"을 중심에 둔 책이라는 사실이다. 구급대원의 경험은 일반인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 쉬웠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자극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글로 오히려 책에 대한 화제성은 높아졌겠지만 《당신이 더 귀하다》는 아픔의 최전선에서 마주하는 현실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렸다. 극적인 사건을 통해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기보다, 소방관이 일상에서 겪는 고뇌와 만나는 사람들의 아픔에 집중한다. 사회의 아픔을 '특별한 비극'이 아닌 '세상의 일부'로 '우리의 일부'로 이해한다.


그 이유는 《당신이 더 귀하다》가 "언제 죽을지 몰라서 쓰는 글"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구급차를 몰고 간 곳에는 자주 비가 내렸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빗물에 흠뻑 젖어 집 안까지 비구름을 몰고 왹에 이르렀다. 잘 크고 있는 아이들이 사고를 당해 죽거나 크게 다치는 상상을 했고 아내가 기분이 안 좋은 날엔 그걸 자살의 전조라고 여기며 불안에 떨었다. 일하는 동안은 내가 오만가지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장면을 떠올렸다. 고속도로에서 구급 활동을 하다가 차에 치이거나, 정신질환자의 칼에 맞거나, 또는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에 마음이 무너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그래서 틈날 때마다 유서를 썼다. 잡힐 듯 말 듯 한 죽음에 먼저 손을 내민 일이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 5면


살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글은 삶은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과 분들어야 할 것들이 분명해진다. 사람은 붙들어야 할 것이었다. 인간성을 가진 어떤 삶도 가치 있기 때문에 저자 자신의 삶 또한 가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유서가 삶의 위로가 된 것이다. 기운을 차린 저자의 눈에 그가 만난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이 기록에 드러났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 사람들 또한 나와 같은 무게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깨닫자 마침내 비구름이 걷혔다. 애초에 그건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가난하고, 아프고, 죽음을 앞두고 있을지언정 그들은 힘껏 살아가고 있었다," ( -6면)
"빗줄기를 뚫고 달리는 이른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과 비슷하다. 시작은 시야를 흐리는 비참한 광경 때문에 마음이 무겁지만 쓰면 쓸수록 들어나는 뜨거운 삶으로부터 진한 감동을 받는다." ( -7면)


작가님은 바란다. 《당신이 더 귀하다》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대신 같은 체온을 가진 인간이라 생각하면 좋겠다고. 그 진심이 책의 곳곳에서 표현된다.
"누군가 가난과 외로움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같은 말로 포장하는 건 눈앞의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손바닥 뒤엔 분명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 부서져라 내 손을 쥐는 모습에서 나는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을 보았다. 그래서 언제라도 다시 만난다면 또 손을 내밀 것이다. 당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 35, 36면


《당신이 더 귀하다》를 읽으면서 여러번 울었다. 계속 읽어가는 데에 용기가 필요했다. 작은 일에 힘들어하고 웃음 짓던 지난 날의 내가 왠지 부끄럽고 우스웠다. 각자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각자가 느끼는 아픔의 무게를 비교해선 안 된다고 고상한 척했던 나는 치졸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인생들이 여기 처참하고 외롭게 살고 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 놓지 못하는 손과 망부석처럼 맨발로 구겨 넣은 털신이 있다.


"추우니 들어가시라 말해도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털신에 맨발을 구겨 넣으며 밖으로 나왔다. 더는 커피 마시란 얘기는 않았지만 그 말이 입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또 한 번 눈을 맞추기 겁나서 고개를 돌렸다. 출동할 때는 미처 몰랐는데 소복한 눈길 위에 구급차가 지난 바퀴 자국 말고는 다른 흔적이 없었다. 그걸 보니 무엇 때문에 할머니가 이 먼 곳까지 떠나왔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곧 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아마 할머니가 떠나온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할머니를 떠나갔을 테니까. 그러므로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할머니를 떠났는가, 그렇게 묻는 것이 옳은 질문이었다. 할머니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언젠가 할머니도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서, 할머니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엄마나 아빠, 친구들, 운이 좋으면 사랑해 마지않았던 어떤 한 사람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허벅다리가 따끈해지는 아랫목에 모여서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실 것이다."
- 22, 23면


가끔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당신이 더 귀하다》는 극적인 서사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깊이 표현한다. 슬픔과 분노, 따뜻함과 희망 같은 다양한 감정을 차분하게 전하기에 오히려 더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비유와 은유로 현실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님만의 문학적 표현과 감수성도 아름다웠다. 저자의 회상과 생각들이 현장의 시선과 교차된 방식도 일반 에세이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당신이 더 귀하다》 같이 아픈 글을 왜 읽어야 할까.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창이었다.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의 불평등, 차별, 제도적 허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픈 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대 의식을 갖는 것은, 같은 생명을 가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의무임을 깨닫는다. 일상에 매몰돼 좁아진 시야를 넓히고, 세상의 다양한 구석들을 돌아보며, 다함께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동력이 《당신이 더 귀하다》 같은 작은 이야기 속에 크게 숨어 있었다.


겁을 먹고 읽기 시작했지만 책장을 덮으며 단단하게 덮혀진 마음이 느껴진다. 많은 인생과 울고 웃으며 함께 살아낸 것 같다. 《당신이 더 귀하다》 속 고통을 마주하는 조금의 용기를 낸다면, 더 크게 웃고 더 진하게 울며 힘차게 살고 싶어진 한 뼘 더 자란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결코 고통과 아픔만 줄지은 이야기가 아님을, 그 사이사이에 눈부시게 새어나오는 빛과 따스함을 꼭 경험해보길 바란다.




*** 출판사 다산북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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