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
전영애 지음, 최경은 정리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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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은 전영애 교수님이 지으셨지만 최경은 님이 정리해 탄생한 책이다. 왜 정리가 필요했을까?


최경은 님은 인천에서 여주까지 매주 대중교통으로 여백서원을 찾아와 흩어져 사라지는 교수님의 말을 간수해두겠다고 유튜브를 혼자 배워가며 '괴테 할머니 TV'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골라 글로 정리한 책이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이다.


"시간이 생겨 전영애 선생님과 바닥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샌가 ...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
그러다가 서울대 학생들은 이런 수업을 들었겠다는 생각에 다수의 서울대 학생을 향한 근본 없는 시기심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런 못난 마음으로 '이런 거 같이 좀 두루 들어볼 수 있도록 뭔가를 해야겠다'는 소박한 결심을 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 222, 223면 (최경은 님 후기)


영상을 글로 바꾼 책이라 입말이 포근하게 들리지만 강의로 단련된 교수님의 능숙한 화술 덕분에 잘 다듬어진 글을 읽는 것에 더 가까웠다. 교수님의 다정하고 달콤한 목소리가 동시에 음성지원되는 것 같아 즐거웠다.


몇 달 전, 영상으로 우연히 전영애 교수님을 알게 된 뒤, 선하고 해맑은 미소에 반해 한동안 강의를 찾아 들었다. 알면 알수록 깊고 따뜻한 통찰에 놀랐다. 누구나 꿈꾸는 온화한 할머니의 전형이 전영애 교수님이 아닐까. 아름답기 그지없는 귀여운 할머니, 전영애 교수님을 존경한다. 전작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를 사두고 미처 읽어보기도 전에,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까지 만나게 되어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은 평생 괴테를 연구하고 번역해 온 전영애 교수님이 괴테의 삶과 작품을 통해 체화한 지혜와 통찰을 전한다. 하나처럼 닮아있는 괴테와 교수님의 메시지가 균형 잡힌 삶의 자세와 철학을 제시한다. 진정한 어른의 관록과 진솔함이 삶과 사람을 향한 뭉근한 사랑 안에서 독자를 내내 비추는 책이다.


2024년의 마지막 날과 2025년 새해의 첫날을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과 함께 한 것이 무척 감사하다. 책을 펼칠 때마다 인생책이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말씀들이 소중해 천천히 아껴 읽으며 교수님을 만났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내 옆의 좋은 이웃만 만나는 게 아니라 몇백 년 전의 어느 누구까지 만나는 일입니다. 엄청난 일이지요." ( -21면) 270년 전의 괴테와 동시대를 사는 교수님을 동시에 만나 뵐 수 있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교수님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에는 괴테의 말과 삶이 진하게 스며있다. <파우스트>를 완성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60년을 써서 완성했지만, 괴테는 <파우스트>가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염려했다.


그러면서도 '아, 나는 이제 수양도 좀 하고 공부도 좀 해야 될 사람인데'라고 생각하며 죽기 닷새 전까지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기에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했던 것이다. 늘 호기심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꾸준함을 갖춘 사람, 그래서 나이 들수록 새로워지는 사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과 끝없는 배움, 성장의 추구는 교수님에게서도 눈에 띄게 발견되는 태도였다. 간절히 바라는 것을 닮아간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두 인생이다.


괴테는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등 문학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오랫동안 봉직하며 도로 건설, 광산 개발, 교육 개혁 등 다양한 행정 업무를 수행한 정치가였다. 색채론과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등 자연 과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으며, 인간의 턱뼈(악간골)를 발견한 과학자이다. 풍경화와 초상화를 중심으로 상당한 양의 작품을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사람이 어찌하면 그렇게 클 수 있는가?' 교수님은 괴테가 문제를 감당한 방법에서 그 답을 찾았다. 괴테는 정면 대결로 답이 없는 인생의 문제를 감내나 극복 정도가 아니라 훌쩍 뛰어넘는다. 꼬마일 때 연극 대본을 썼는데 극단에서 무대로 올려주지 않자 프랑스의 대극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는다.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대학에 들어가지만 당대의 문학 조류에 맞지 않아 글이 어마어마하게 비판받자, 비판의 기준을 알기 위해 독일문학을 있는 대로 다 읽고는 아예 독일문학사를 써버린다. 이렇게 대단한 괴테의 역작 <파우스트>에 2025년 올해 꼭 도전해야겠다.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 속 교수님의 시간관도 인상 깊었다. 시간을 흘러가는 개념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경작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시간은 농부가 밭을 갈듯, 삶의 의미를 일구어 가는 소중한 자원인 것이다. 지금 여기의 현재를 살기에 죽음을 굳이 떠올리지 않으신다. "감히 말하자면 늘 힘껏 살았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거기에 어떤 후회나 회한 같은 게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어서 언제 회수당해도 불만 없다는 생각입니다." (-158면) 최선을 다했기에 삶에 여한이 없다는 말씀이 어찌나 멋진지 놀라울 뿐이다.


"길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마저 하라. 근심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당신을 영원히 내동댕이쳐 균형을 잃게 할 뿐." 괴테의 말처럼 초조와 후회는 털고 나이 들수록 시간이 부족해져 나쁜 것들을 제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 순간이 좋은 일로 가득하게 되었다는 말씀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여백서원"의 이름처럼 쉼과 여백을 중히 여겨 바쁜 일상에서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모습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학회 일정을 마치면 하루는 온전히 비워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삶의 균형을 잡고 내면을 돌보는 자세를 본받고 싶다.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은 괴테와 콜라보한 교수님만의 시각으로 삶에 대한 깊은 지혜와 위로를 전한다. 읽는 이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부드럽고 다정하게 인생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교수님 평생의 삶으로 어려울 수 있는 괴테의 철학과 정수를 소화해 진하게 우러난 통찰과 성찰을 먹기 쉬운 훌륭한 요리로 내어주셨다. 프란츠 카프카, 그림 형제, 헤르만 헤세, 쉴러 등 다양한 독일 문학 이야기까지 더해 다채로운 인문학 별미식도 맛볼 수 있다. 한 해의 시작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으로 장인이 평생을 우려낸 뜨끈한 보양식 한 권 꼭 드셔보시길 강추합니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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