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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평점 :
"나방 안에 40억 년의 지구가 들어 있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는 나방을 통해 세상의 숨겨진 면모와 신비함을 전하는 생태학 입문서이자 자연 에세이다. 나방이라는 작은 생명체에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지구의 역사를 통해 작지만 놀라운 생명의 위대함을 마음껏 엿볼 수 있다.
나방은 약 2억 년 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청된다. 공룡이 번성했던 중생대 쥐라기 시대로 오랜 시간 진화해 온 곤충이다.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고 수많은 종으로 분화하며 지구 환경의 변화와 생명의 역사를 함께 겪어온 존재인 것이다.
저자 팀 블랙번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생물학교 교수이자 30년 넘게 생물 다양성을 연구해 온 생태학자다. 저자는 코로나 시기에 아내가 준 생일 선물 '나방 덫'을 옥상에 설치하면서 밤사이 몰려든 나방을 구분하고 놓아주는 동안 나방에 매혹되기 시작한다. 숨겨진 세상을 비추는 나방 덫이라는 창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고 더 큰 장면의 일부가 담긴 작은 그림, 나방이라는 조각으로 자연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춰나간다.
저자는 이 책이"나방에 관한 책이 아니다."라며 나방과 나방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연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고 싶다고 말한다. 대사 한 줄은 극의 전체 속에서 의미를 갖듯, 작은 동물에게 주의를 기울일 때 그들의 상호 관계, 더 넓은 생명 그물과의 연결 고리 그리고 생명에 대한 더 큰 진실이 드러남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자연의 작용과 작용 방식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에서 전하고 있는 것이다.
《 The Jewel Box: How Moths Illuminate Nature’s Hidden Rules 》 보석 상자라는 원제목을 출판사 김영사는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로 완전히 바꾸었다. 나방이 빛을 쫓아다니는 것은 일반 상식 아닌가? 책을 읽으며 제목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의외의 제목으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인발적인 인식을 뒤집어 나방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는 똑똑한 전략이었다. 그 상식은 틀렸던 것이다.
가로등 불빛 주변을 맴도는 나방들은 빛을 좋아해서 빛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빛을 '쫓는' 것이 아니라 빛에 의해 '혼란을 겪는' 것에 가깝다. 나방은 달빛이나 별빛으로 방향을 잡아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날아다니는데 인공적인 빛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는다. '함정 효과'로 빛에 갇히는 것이다.
게다가 나방의 눈은 어두운 환경에 특화되어 있어 밝은 빛에 매우 민감하다. 강한 인공조명은 나방의 시각 시스템에 과부하를 일으켜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 지속 가능한 지구의 방식을 방해하는 인간이 빛 공해로 나방에게 피해를 주면서 혐오스러운 해충으로 오해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 무척 미안해진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가 인간 중심적이고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 나방을 열린 눈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의 원제 《보석 상자》처럼 저자는 나방 덫에 모인 나방들을 자연의 숨겨진 아름다움과 규칙을 지닌 보석으로 비유한다. 보석 상자 속 다양한 보석들이 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듯, 나방의 다양한 종은 고유의 아름다움과 생태적 특징을 지니며 거대한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나방은 정말 보석일까? 그렇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오래 보면 나방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놀랍도록 다채롭고 화려한 나방의 무늬를 본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거기에 나방의 생태적 맥락을 이해한다면 나방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에 경탄할 수 있다.
나방은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150만의 생물종에서 10분의 1인 약 16만 종이 나방이다. 나비는 그중 2만 종을 차지한다. (나비는 낮에 활동하는 나방의 일종이다.) 나방은 종의 수가 가장 부유한 유기체 중 하나인 것이다. "애벌레가 식물 조직을 섭취해 살 찌우는 능력은 아주 귀중한 능력이다. 양상추만 먹고 살아남으려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 11면) 나방의 유충인 애벌레가 식물의 잎을 먹음으로 식물의 성장을 조절하고, 배설물로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하기도 한다. 나방의 사체는 역시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새, 박쥐, 거미, 다른 곤충 등 다양한 동물의 중요한 먹이 공급원이기도 하다. 나방이 사라진다면 나방을 먹이로 하는 동물들에게 연쇄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방은 생태계의 먹이 사슬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나방은 꽃의 수분을 돕는 중요한 매개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잠들어 보지 못하는 밤, 꿀벌을 대신해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돕는다. 특히 밤에 피는 꽃들은 나방 덕분에 수분되는 경우가 많다. 도시 식물의 1/3을 나방이 수분시킨다고 한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을 통해 가장 인상 깊었던 메시지는 "선택과 운"관한 가르침이었다. 나방의 생존은 선택과 운의 복잡한 상호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진화적으로 선택된 전략은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지만, 최종적인 결과는 우연적인 사건과 환경적인 요인, 운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먹이를 찾기 위해 특정 장소를 선택했지만, 그곳에 천적이 있다면 선택은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살면서 다양한 선택을 하지만, 결과는 예측 불가능한 우연과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다. 인간의 활동이 다른 생물들의 '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역시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가 전하는 중요한 경고였다.
모든 생명은 주어진 시간에 한정된 자원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정체성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답이 도출되고 그 결과 지구는 매우 다양한 생물종으로 채워졌다. 탄생과 죽음 사이 생이 되는 시간 속에서 나방이든 인간이든 모든 생명은 각자의 최선으로 전쟁을 치루듯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어떤 종도 홀로 존재하는 외딴섬이 아니다. 아주 작은 미생물부터 나방과 인간을 포함한 광활한 우주까지, 연결되지 않은 채 상호작용하지 않는 존재는 없음을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를 통해 확인했다.
분투하며 이룩한 생태를 통해 나방은 자연의 지혜를 대변하고 있다. 그 소중한 보석의 가르침을 교훈으로 품고 인간이 다양한 동식물와 공존하는 방식, 그리고 환경에 대한 책임을 깊게 되짚을 수 있길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추천한다.
"인류는 끝없는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자연을 갉아먹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개체군, 군집, 종의 흐름을 주도하는 과정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결국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패배를 맛보게 되는 건 과연 누구일까? 답을 미리 말해주자면, 우리 인간일 것이다."
- 409면
*** 출판사 김영사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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