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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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년 미국은 뿌리 깊은 갈등과 대립이 표면화되면서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으로 분리된다. 진보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연방공화국은 국민의 인권과 복지, 자유 실현을 목표로 한다. 공화국연맹은 신성 모독죄를 저지르거나 임신중지 수술을 받을 경우 화형에 처할 수 있는 청교도적 신권정치를 부활시킨다. 두 나라의 국경을 이루는 미니애폴리스의 중립지대에서 치열한 첩보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복 자매인 정보 요원들이 상대를 제거해야 할 타깃으로 정하고 치밀한 작전을 수립한다.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원더풀 랜드는 과연 가능한가?"
- 뒤표지 줄거리


2036년, 가까운 미래를 그린 SF 소설이자 정보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첩보 스릴러이다. 무조건 재미있다! 왜 더글라스 케네디인지 알겠더라.


촘촘한 상황 설정, 세심하게 풀어낸 인물들의 심리 묘사. 긴장감 넘치는 플롯과 다양한 인물 간의 조화. 필사하고 싶은 인생 문장들까지! 푹 빠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야기였다.


거기다가 미국이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가 된다! 비현실적이지만 호기심을 끄는 배경을 알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책을 펼쳐보지 않을까 싶다. 일단 《원더풀 랜드》를 읽으면 장강명 작가님처럼 진짜로 일어날 법한 스토리구나 금세 설득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무척이나 있을 법한 세계관임은 분명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그저 소설로 읽혔다. 현실성보다 재미가 압도적이었다는 반증이 되겠다. 디테일이 살아있지만 어디 하나 덜컹이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흘러가다 보면 나는 사라지고 소설 속 세계의 사람들이 된다. 내가 매몰되고 다른 삶을 살다오는 경험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닌가. 《원더풀 랜드》는 그렇게 소설의 역할을 넘치게 다한다.


"나는 저들이 강력한 인화성 물질을 막심의 몸에 뿌린 걸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액체 질소는 인화성이 높아 막심의 몸을 순식간에 불태워버릴 테니까. 나는 혹시 저들이 막심을 잔 다르크처럼 서서히 고통을 가하며 태워 죽일까 봐 우려했다. 화형 당하는 사람이 미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불타 죽게 한 건 자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사건에 끼어든 유일한 자비였다."
- 25면


《원더풀 랜드》는 주인공 샘 스텐글, 연방공화국 베테랑 요원의 정보원인 코미디언 막심의 공개 화형식으로 시작한다. 예수님을 모욕한 신성 모독죄로 공화국연맹에 잡혀가 화형 당하는 장면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전 세계에 공개된다.


분단된 미국의 첨예한 갈등과 분열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공화국연맹은 중세와 북한을 떠올리게 했다. 임신중지 수술을 받으면 화형 당할 수 있는 배타적인 신권정치의 무시무시한 세상. 연방공화국은 인권과 복지, 자유 실현을 목표로 하지만 온갖 감시로 민주주의를 위장한 전체주의 정권. 연방공화국 정보 요원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 연방공화국 국민으로서의 삶에 더 집중하게 된다.


"자네, 이번 달 '육신 한도'는 얼마나 남았나?"
몸에 삽입되어 있는 마이크로칩이 육식 한도를 계산해준다. 마이크로칩은 체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진단한다. 매달 육류를 얼마나 섭취하는지, 콜레스테롤 수치는 얼마인지, 음주량은 얼마인지, 지방 섭취는 얼마나 하는지 매주 진단해 한도를 정하고 제한한다.
몸에 삽입된 마이크로칩에 우리가 나누는 모든 말이 기록된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가능한 한 암호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 28, 29면


새미는 정보국의 신경학자들은 '인식력 안정'이라고 부르지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전두엽 절제술'이라고 부르는 첨단 외과 수술을 받았다. 지적 능력에는 전혀 해를 미치지 않으면서 분노를 억제하게 만드는 수술이었다. 그 결과 혁명 위원회의 과격한 조직원이었던 새미는 회계사가 되어 돌아왔다.
- 27면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푸틴 등 실명을 거론하며 현실과 소설 속 미래를 연결하는 대담함에 참 놀랐다. 아무리 세계적인 작가라 해도 이렇게 한 나라의 지도자를 디스토피아 소설에 등장시키다니 역시 미국은 이견을 포용하는 민주주의임을 이렇게 자랑하는 건가.


내가 태어난 2002년에 이곳은 미합중국이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8년 밤이 지금도 희미하게나마 기억난다. 아버지와 엄마는 거실에서 몹시 기뻐하며 춤을 추었고,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오늘을 기념하게 될 거야. 미국이 새로 태어난 날이니까."
12년 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백악관에 부자 악당이 들어 앉았고, 미국은 분열되었다.
- 31면


분단 사회에서 사회 이념과 개인의 신념이 갈등으로 치닫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대립과 정치적 양극화가 불러오는 제 살 깎아먹기식 비극은 공포소설로 보일 만큼 경각심을 일깨웠다.


둘 중 하나라는 이분법적인 문제는 너무나 어렵다. 극단으로 나뉜 《원더풀 랜드》 속 사회는 절대 만나서는 안 될 미래다. 이렇게 이야기로 생생하게 펼쳐줌으로써 반면교사 삼아 거울치료를 받자는 저자의 경고가 들리는 것 같다.


인물들이 이복 자매인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걸 말하는 것 같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은 정보요원의 삶을 선택하고 그런 시스템을 만든 인간들 탓이지, 본래 그들은 사랑을 나눠야 할 가족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편견을 버리며, 소통을 강화해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통합이 다 같이 사는 길이다. 어리석은 인간은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나누기는 쉬워도 다시 하나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원더풀 랜드》로 절실히 깨닫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지금처럼 정치와 종교적 양극화가 계속된다면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소설이다.


'혼자 있는 게 무섭지 않아?'
무섭긴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더 무서워. 나의 모순, 나의 특기, 절대로 풀 수 없을 매듭, 답을 찾을 수 없는 퍼즐이었다.
- 89면

언젠가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내가 누군지 알기 전에는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어. 인간이 가장 맞히기 어려운 퍼즐은 자기 자신이야. 누구나 제대로 풀 수 없는 퍼즐이니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인간은 누구나 낯선 존재야."
- 115면


《원더풀 랜드》에 빠져 있으면서도 인간과 사회의 작동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앎은 인생의 퍼즐을 푸는 데 힌트가 될 것이다. 옳고 그름도, 정답도 판단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원더풀 랜드》는 디스토피아의 이야기를 통해 비관도, 원망도 아닌 희망의 긴 실마리를 내려준다.


"인간은 모두 수정란에서 시작되듯 분열은 인간의 천성이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간의 역사는 분열과 파열의 긴 대하소설이다. 모두들 커플로 분열되고, 가족으로 분열된다. 국가로 분열된다. 우리는 서로 상대를 탓한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고 함께할 수 없다며 문을 닫아 잠그는 건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인간의 조건이다.
살아가는 건 나뉘는 것이다."
- 510면


"분열"의 자리에 "연결"이 대입되어 읽혔다. 커플로 연결되고, 가족으로 연결된다. 국가로 연결된다. 세상은 나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분열은 변화와 성장의 시작일 수 있다. 통합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원더풀 랜드》에서 희망을 듣는다.


"누구나 인생을 망치는지도 모르고 잘못된 방아쇠를 당기고 싶을 때가 있다는 뜻이야."
- 39면

현명한 판단으로 잘못된 방아쇠를 당기는 역사를 만나지 않길 기도한다.


*** 출판사 밝은세상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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