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소설, 잇다 6
박화성.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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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잇다' 6번째 책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소설, 잇다'는 백 년의 시공을 넘어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읽는 작가정신 출판사의 시리즈다. 한국문학의 또 다른 근원과 현재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에서는
"근대 한국문학의 출발점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를 평을 받으며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 활동해온 여성 작가인 박화성(1903~1988)과 2015년에 등단해 "전혀 다른 여성 서사"로 장르와 형식을 넘나들며 새로운 서사와 상상력을 선보여온 박서련이 만났다.


박화성 작가가 해방 전 가장 활발히 활동한 시기의 대표작 세 편이 수록됐다.
- 「하수도 공사」, 「홍수전후」, 「호박」
"제국주의와 식민지하의 궁핍하고 핍박받는 민중과 노동자, 여성 등이 처한 처참한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들"이다.


박서련 작가의 작품은 박화성 작가의 「하수도 공사」를 새롭게 변주한 표제작인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와 에세이 「총화」 두 편이 실렸다.


자연스럽게 「하수도 공사」와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두 작품에 집중하며 읽게 되었다.


"격분된 삼백 명의 노동자들은 중정대리를 끌고 경찰서에 쇄도하였다."
- 「하수도 공사」 첫 문장


1932년에 쓰인 「하수도 공사」는 일제 치하 노동자들이 착취 당하는 현실을 드러낸 박화성의 대표 노동소설이다.


실업구제를 목적으로 대규모 하수도공사가 시작되지만 계급층이 찬 뒤주머니 탓에 노동자들은 굶주리고 두드려 맞으면서도 넉 달째 품삯을 받지 못했다. 경찰서 서장에게 임금 지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일본어에 유창하고 영리한 "동권"이 노동자 대표로 나선다.

"그래 하루 종일 굶어가며 죽도록 당신네 일만 하는 것이 노동자의 실업 구제 목적인 하수도 공사이오? ........
당신네 손해 보지 않을 일만 생각하고 수백 명의 굶는 일은 생각지 못하오? ....... 서장! 이런 불법자들도 가만두어야 옳습니까?"
- 30면

겨우 임금을 받게 되지만, 청부계약자는 더 교묘한 방법으로 노동자를 착취한다. 동권은 노동자들에게 계급적 지식을 알려 주기에 남모르게 힘쓴다.

"그러기에 그렇게 한탄들만 할 것이 아니라 당신들도 생각이 있어야 한단 말이오."
70면


동권은 어릴 적부터 동무로 지내온 "용희"와 애틋한 마음을 나누지만 집안 형편이 맞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은 어렵기만 하다.

"용희! 나는 용희를 정말로 사랑하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사랑이 현재 우리 정세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억제하는 때가 많소."
- 54면

"결혼할 수가 없는 사랑이 어찌 합당한 사랑이겠소. 내가 내 몸 하나도 변변치 처리 못하는 못난인데 어떻게 용희까지...... 무어 나는 아무리 생각했자 열에 하나도 좋은 조건이 없으니 영원한 사랑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말이오."
- 88면

게다가 동권은 다른 꿈을 펼칠 계획을 품고 있다. 항일 저항의식으로 마르크시즘에 영향을 받은 그는 더 나은 세상의 일꾼이 되기 위해 떠난다.

"이 굉장한 수도를 보는 자, 돈과 문명의 힘을 탄복하는 외에 누가 삼백 명 노동자의 숨은 피땀의 값을 생각할 것이며 죽교의 높은 이 다리를 건너는 자 부청의 선정을 감사하는 외에 누구라 이면의 숨은 흑막의 내용을 짐작이나 하랴."
- 91면


박서련의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대학교 내 인문학 독서 동아리의 림과 진, 두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총여학생회를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동아리에서 이들은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를 함께 읽는다. 동성애 커플인 둘은 동아리 회원들에게 커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여자 총학생회장을 본 적 없는 학교가 레즈비언 총학생회장은 괜찮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어."

진에게는 총여학생회 재건이 그렇게도 중요한 위업이라는 것. 너무도 중요해서 표면에 조금의 흠집조차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는 것. 이해할 수 있었기에 섭섭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좋아해.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림은 그때 했어야 하는 말을 찾았다. 쓰인 지 백 년이 다 되어가는 소설에서였다.
언니는 우리 연애가 정세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구나.
- 195, 196면


인권과 권리, 특히 여성으로 좁혀지는 관점에서 두 작품이 맞닿아 있지만 사실 나는 공감하지 못했다. 식민지 치하라는 시대에 거시적으로 펼쳐진 억압과 폭력이 현대로 이동하며 동성애를 인정받지 못하는 인권의 한계로 연결된다니, 너무 큰 격차가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나는 동성애를 선천적으로 다르게 타고난 자들의 온당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사랑이 결국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지, 어쩔 수 없는 본능에 의한 지당한 감정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뿐이다. 그래서 요즘 수많은 미디어에서 동성 간의 사랑을 미화하고, 다른 사랑의 방식으로 인정하며 성 소수자의 인권을 높이는 흐름을 경계하고 있다.


나 같은 입장에서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불평등과 차별, 인권과 소수자의 연대 등을 논하는 것은 마땅치 않아 불편했다.


"우리는 정세에 합당한 연애를 하고 있어요.
정세에 합하지 않는 연애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 202면


개인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까지 사회가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려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의 림의 목소리는 「하수도 공사」의 용희의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속 다양한 작품을 비교해 읽으며, 여성의 고통과 억압, 사회 변혁을 향한 열망과 투쟁, 연대와 공감, 인간의 존엄성 같은 주제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여전히 보편적인 가치가 지닌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가 새롭게 쓰이고 읽히며,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모든 과정들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책 한 권에서 백 년의 시차를 경험하는 색다른 문학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면,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추천합니다.


*** 출판사 작가정신의 서포터즈 '작정단 13기'의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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