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조르바
김형국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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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마음숲을 거닐다


이 책은 문화예술 이야기다.
예술가 김형국 님이 십여 년 동안 써온 글에 예술을 향한 애정과 깊은 사유가 진하게 녹아있다.

"예술은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다." -두산백과
미술, 사진, 음악, 문학, 무용, 연극, 영화, 건축, 패션 등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모든 활동을 예술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저자는 평생 예술과 함께 예술을 위한 삶을 살아온 분이다. 오페라, 음악회에 출연하고, 국내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무대 위에 서는 성악가로 활동했다. 아양아트센터, 수성아트피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을 맡으며 예술경영의 세계로 들어섰다.

예술경영은 예술과 관객이 소통하는 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예술단체와 조직 경영에 필요한 자원과 재원을 조달하고 관리한다. 예술가의 파트너이자 봉사자이자 감독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예술의 현장 한가운데서 저자가 보고 느낀 것을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흥미롭게 풀어간다.

저자는 아끼던 보물상자를 열어 그 귀한 아름다움을 독자에게 아낌없이 나눠준다. 성악가로서의 음악적 소양뿐 아니라 예술행위·여행·영화·책·건축 등 다방면으로 조예가 깊고 미적인 감수성이 대단한 종합예술인이 오랜 시간 쌓아온 개인적인 예술사를 들려준 것이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예술이 다르게 보였다. 왜 예술가들이 예술을 좋아하게 됐는지, 사랑하는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가 풍요로워지는 것 같았다.




"모든 예술가는 무릎을 꿇는 순간 그 값어치가 없어진다. 영혼의 세계, 순수의 가치 그리고 절대성에 대한 영역을 다루는데, 예술가가 쉽게 고개를 숙이면 감동을 줄 수 없다는 믿음이 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존재 의의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우리부터 예술을 진정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 가치에 대한 확신이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을 글 속에 녹여 넣으려 했다." 11쪽

저자의 예술 철학이 인상 깊다.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에 오히려 더 빛나는 예술의 가치를 확신하고 자부심을 갖는 당당함이 정말 멋지다.

헨리 소로우가 2년간 숲에서 자족 생활을 하고, 피아니스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가 스스로 8년간이나 무대를 떠나 인문학 공부를 하고, 쇼팽콩쿠르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츠 역시 1년간 연주 생활을 접고 철학박사 공부를 마무리했다는 삶의 방식도 기억에 남는다. 예술가라 하면 어려운 기술을 탁월하게 표현하기 위해 혼자만의 공간에서 지독하게 연습하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영혼을 더 성숙하게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도 예술을 향한 본질적인 노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더 성숙시켜 줄 숲은 어디에 있는가 묻는 저자의 질문에 나도 어디론가 떠나 그 숲을 찾아가는 상상을 해볼 수 있어 즐거웠다.

"카잔차키스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했으나 조르바로부터 부정 당한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이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조금 더 길뿐이요. 그것뿐이요."
카잔차키스는 말한다. "예술이란 사실은 마법의 주문이다. 우리 내장에는 어두운 살상의 힘이, 죽이고 파괴하고 증오하고 능멸하려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이 도사리고 있다. 그때 예술이 부드럽게 피리를 불며 나타나 우리를 이끌고 간다." 70쪽
"춤추는 조르바" 표제작에서 저자의 예술관이 잘 드러난다. 예술은 자유롭지 못한 영혼의 상태를 알려주고, 마법의 멜로디로 우리 안의 어두움을 걷어낸다는 메시지를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카잔차키스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예술은 대화이고 소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음악, 건축, 책, 영화를 즐기며 그 안에서 자신과 깊이 대화하는 태도가, 예술경영인으로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예술가와 관객을 연결하는 활동이 모두 대화였다.

예술을 매개로 한 상호 소통 속에서 인간은 서로의 감정과 의도와 이념과 역사를 더 넓고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예술을 향한 관심과 지지가 피어나고 그 애정은 세상의 예술이 지속되는 힘의 근원이 된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듯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옮긴 예술도 사회적 활동이지 않을까. 이런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편하게 상호 소통하며 대상으로 인식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예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데 예술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먼저 경험하는 것이 참 좋은 시작일 수 있겠구나 깨닫는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재미나게 듣고, 그 애정을 엿보는 사이 예술을 더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쁘다.

문화와 예술의 아름다움이 궁금한 분이라면, 그 세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문학 작가들과 그 작품에 대한 단상들도 풍성히 나누고 있어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42
역시 세묜 비치코프는 거장이었다. 교향곡 7번의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동작을 바로 풀지 않고 음악의 여운을 꽤 긴 시간 동안 품고 있다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며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단원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지휘자가 만들어 내는 음악을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122
"사유가 없으면 건축도 없다." 건축가는 시대의 생각을 남기는 사람이며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라는 르 코르뷔지. 스스로 '작은 궁전'으로 불렀던, 프랑스 지중해가 보이는 곳의 4평짜리 오두막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그의 삶은 행복을 위해 더 큰 것을 찾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는 언제나 작은 크로키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적고 그렸다. 그리고 사물을 응시하고 관찰했다. 그러면 마침내 발견을 하게 되고 비로소 발명과 창조에 이르게 된다는 그의 말에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 큰 가르침을 배운다.

160쪽
되돌아보면 내가 가장 슬펐을 때 가장 너그럽고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었다. 그런 순간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고, 수용하지 못할 상황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슬픔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승화시키고 싶었고, 또 그러할 수 있다고 자신했건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서서히 치유의 효능이 엷어지게 되고, 애써 외면하며 잊은 듯 지내게 된다.
나는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 다시 슬픔의 세계로 빠져 버리려 한다. 조금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슬퍼지고 싶다.

209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에는 빛과 어둠처럼 대비를 통하여 하고자 하는 말에 악센트를 주고 있음을 자주 볼 수 있다. "성공을 논하려면 줄기차게 실패에 대해서 떠들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못 쓰고 못 쓰고 또 못 쓰기를 간절하게 원해야만 할 것이다." "좌절과 절망은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어 낸다." 그러면서 모든 위대한 예술은 거기 한때 큰 좌절과 절망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한다.




*** 출판사 학이사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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