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주의


종술은 월급도 변변찮고 남들은 마다하는 저수지 낚시 금지 감시원이 되기로 한다. 순전히 완장 때문이다. 익삼 씨가 만들어준 '감시원' 완장을 이리까지 나가 화려한 '감독' 완장으로 바꿔 만든다. 완장을 차고 그는 버스도 무임 승차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패악질 부리는 것이 남다르다. 술집 작부 부월에게 자랑하는데, 부월은 쉽사리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아들 종술을 바라보는 운암댁은 남편의 죽음이 떠올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종술의 저수지 감독은 지정 수위를 넘긴지 오래다. 밤늦게 남몰래 잉어를 잡으려던 초등학교 동창 준환과 그의 아들을 패고, 준환의 아들은 그 일로 한쪽 귀청이 떨어진다. 자기와 다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려고 몰래 고기를 잡으려던 준환은 하소연도 하지 못한다. 부월은 자신을 여염집 여자로 대해주는 종술에게 마음의 정이 깊어간다. 달 밝은 저수지 텐트에서의 하루밤 부월은 쾌락의 정점에서 그만 첫사랑 마선생을 부르고 종술은 몹시 기분이 상한다.


종술의 완장은 이제 자신을 고용한 익삼 씨와 최사장을 지나 신성한 저수지를 지키는 것에 완연한 목적을 둔다. 최사장이 술집 아가씨를 끼고 저수지에 오던 날, 자신의 저수지를 더럽히는 그 꼬락서니가 아니꼬와 종술은 최사장에게마저 함부로 하고 결국 저수지 감시원 자리를 짤린다. 그러나 종술은 기 죽지 아니한다. 익삼 씨가 동네 다른 청년들을 고용하려 찾아다니지만 이미 종술의 엄포에 겁 먹은 청년들은 모두 고사한다. 가뭄이 깊어간다. 부월은 종술의 딸을 매개로 종술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 


새로 감시원을 고용하지 못해 골치인 익삼 씨에게 최사장은 가뭄이 깊어 저수지 물을 다 빼게 생겼는데 감시원 고용이 무슨 소용이냐 하고, 익삼은 아니꼬왔던 종술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 열이 뻗쳐 뵈는게 없는 종술은 익삼을 죽일 기세로 쫓아든다.


운암댁은 기억한다.  일제시대 이웃 박가의 밀고로 오른손에 장애가 생긴 남편이 해방 후 완장을 찬 후 기어이 박가를 죽이고, 토벌대에 쫓겨 어느 날 꿈 속에서야 남편의 죽음을 감지했던 일을. 기어이 저수지의 물은 모두 빠지고, 종술은 부월과 딸을 데리고 야반도주한다.


완장을 차는 것은 완장 뒤의 권력을 지키는 일임을 알면서도, 종술은 완장 그자체로 사내의 자존심이라 생각하며 신성시했으나 인심을 모두 잃고 낯선 곳으로 떠나기까지 해학과 풍자로 무게 있게 그린 소설이다. 제목에서부터 주인공의 몰락이 예견되었으나, 그 어릭석은 완장에 대한 집착을 부월의 도움으로 저수지 바닥에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주인공의 삶이  다행이다. 어리석은 권력에 대한 집착, 온전히 내 것이 아님에도 보잘 것 없는 현재를 조악한 완장 하나에 매달리고 하는 그 모습이 과연 나와 얼마나 다른지 생각하게 한다. 멋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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