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근원수필 (보급판) - 고전의 향기 듬뿍한 『근원수필』의 새 모습
김용준 지음 / 열화당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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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사학자, 수필가, 교육자, 장정가인 김용준. 그의 호는 근원(近園), 검려(黔驢), 노시산방주인(老柿山房主人), 우산(牛山), 벽루산인(碧樓山人), 매정(楳丁), 반야초당주인(半野草堂主人) 등이 있다. 그의 호중 근원을 붙인 수필집.

일제강점기를 살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고민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그가 사상적, 철학적으로 동조했던 것은 사회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9월 월북한 사실도 그런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는 도덕적, 사상적으로 경도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실제의 삶은 윤리적,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지만, 예술의 장에서도 그러하다면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이다. 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흔적은 역력하다. 무책임하고 방탕하기만한 예술가의 삶이라면 미간이 찌푸려지지만, 현실의 도덕 잣대가 상상력을 얼마나 제한하는지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회의 윤리적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지만, 표현도 하기 전에 내 안의 너무 많은 검열관이 시작도 못하게 만드는 문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인지 고민하느라 오히려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고 좁은 생각의 결과물이 나오곤 하기 때문이다. 근원수필을 읽고 이 문제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1부는 그의 생활에서 파생된 생각과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2부는 그의 예술론과 조선시대의 화가비평, 진흥왕비와 광개토대왕 호우에 대한 전문지식이 펼쳐진다.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분야의 전문지식을 읽게 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데, 그를 비롯한 과거의 동양 예술가들이 펼치는 예술론에 크게 호응하게 되기 때문에 열광적으로 읽었다. 


이태준의 <무서록>과 더불어 올해 읽은 수필집 중 매우 귀한 작품으로 꼽겠다.

혼자서는 이 책의 존재조차 몰랐을 작품인데, 선생님의 추천도서목록에 있어 읽게 된 책이다. 역시 선생님이 추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동양화, 한국화에 정통한 근원 김용준의 미술비평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예술가에 있어서의 게으름이란 단순한 나태로만 속단해 버릴 수는 없다.

그 중에는 무목적하게 게을러 버린 정신적 타락자도 없는 바는 아니나, 가장 명민한 힘을 가진 화가들로서 가령 그의 일상생활이 세수하는 것으로부터 밥을 먹는 것까지도 귀찮아하는 게으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치더라도, 그들의 정신만은 예술의 경지에서 염녕불망하며 소요하고 있는 것이니, 남들이 수십 수백의 유형한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그는 또한 무형한 수십 수백의 제작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번 재현욕이 터지는 때엔 그야말로 무서운 힘이 쏟아질 수 있는 것이다. - P197

예술가와 세인과의 현격한 차이는 요컨대 예술가는 성격의 솔직한 표현이 그대로 행동되는 것이요, 세인의 상정은 성격이 곧 행동될 수 없는 곳에 있다.

예술가가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은 이 솔직한 성격의 고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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