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 오스카가 상처를 극복하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

9.11 테러에서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는 영리하고 걱정이 많은 소년이다. 혹여 테러의 타깃이 될까 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고, 엄마가 충분히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불만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의 화병을 깨뜨리며 ‘Black’이라 씌어있는 편지봉투에 담긴 열쇠를 발견한다. 이후 뉴욕시에 거주하는 모든 Black 씨를 찾아다니기로 한다. 

사건의 발단은 9.11 테러이지만, 그 과정에서 드레스덴 폭격,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자 인터뷰 등을 삽입하며 모든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드러난다. 작가는 그 사건을 정치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전쟁과 테러가 주는 상처를 세심하게 그려나간다.

주인공 오스카의 엉뚱한 상상력과 그의 여러 시도들(103세 블랙 씨와 친구가 되고, 스티븐 호킹에게 편지를 보내고, 아프리카 탐험가의 조수가 되길 희망한다는 편지를 보내는 등)은 비극적 사건 이후의 삶을 연민과 응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역자는 이 소설을 소통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 해석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것 같고, 나는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상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타인도 아픔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상처를 회복시켜줄 수는 없지만 꼭 끌어안아주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되는 따뜻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 “이상한 건 아저씨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난 항상 울고 있단다.” _441페이지


한편,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아주 먼 훗날의 일 일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아끼는 말, 아끼는 감정들이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말한다.

... 오늘을 내가 기다려왔던 날로 만드는 것입니다. _425페이지, 스티븐 호킹의 편지(진짜일까?) 중 


오스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아버지의 죽음 외에도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에게 해주지 못한 행동이다. 그 빌딩에서 네 차례나 집으로 전화했던 아버지가 자동 응답기에 남겼던 말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얼어붙어 전화를 받지 못했던 오스카는 그날 그 순간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_439페이지


인간 사회는 언제나 난리 법석이었다. 갈등과 투쟁, 반목이 계속되었다. 인류 역사상 평화로웠던 시기는 23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에서 보듯, 인류는 항상 전쟁 중이었다. 전쟁을 걸어오는 자가 있으면 응전하고, 항전하며 인류는 죽음에 도달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애쓰는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전쟁이란 것은 일부 세력에게만 이득이 될 뿐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무 득이 되지 않는다. 상처와 상흔, 고통을 남길 뿐이다.

호전적인 누군가 타자를 응징해야 한다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감정에 휩쓸리기는 쉽단다. 법석을 떠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지.” 

“간단해. 고래고래 마구 소리를 질러대면 사태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면 중요한 건 뭐예요?” “신뢰감을 주는 것이지. 선량해지는 것.” _415페이지


선량하게 사는 것이 바보 같고 사회에 뒤떨어지는 사람이란 인상을 주는 요즘,

미국의 젊은 작가가 ‘선량해지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깊은 위로를 받는다. 


소설책 속에는 여러 사진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타이포그라피적 실험들이 담겨있어 신선하다. 마지막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빠르게 넘기다 보면, 문장보다 더욱 선명하게 전달되는 소망을 만난다. 

죽지 말자, 살아야 한다는 말보다

서로 죽이지 말자, 같이 살자는 말이 떠오르는 소설.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봤었는데, 좋은 소설을 참 잘 각색했다는 생각이다. 원작이 훌륭하면 영화가 훌륭하지 못할 경우도 있는데, 보기 드물게 두 작품 모두 훌륭하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어서 내러티브를 이해하는데 훨씬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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