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젠씨, 하차하다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인생과 작품 모두 흥미로웠던 독서.


야콥 하인은 유년기에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청소년기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것을 보았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의 2006년작 <옌젠씨, 하차하다>는 실업문제와 노동정책을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옌젠씨는(성이고,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대학생 때 임시 아르바이트로 구했던 우체부 일을 10년간 계속했다. 그러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 때문에 대학생 신분이 아닌 그가 해고된다. 합당한 이유를 설명해 줄 사람도 없고, 그의 근무태도에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는 꿈이 없고, 눈에 띄는 능력을 갖추지고 않았고, 인간관계가 유연하지도 않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그는 실업 급여라도 받기 위해 노동조합(한국의 고용안정센터와 비슷)을 찾아간다. 조합에서 요구하는 재교육과 상담 등은 전혀 실질적 도움이 되지도 않고, 부조리한 구석이 있지만 상담을 계속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옌젠 씨는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되고, 당시 정부에서 변경한 노동정책(소위 ‘하르츠IV’라 불리는 경제 노동정책. 실업수당 지급 기간 단축, 비정규직 고용 규제 완화, 실업부조와 사회부조 축소 등 노동자 보호 정책에서 퇴보했다)을 조근조근 비판한다. 우리 삶은 실체적으로 변화가 없는데, 왜 어떤 통계와 자료, 뉴스들은 경제가 위험하다며 자본가를 대변하는 정책이 확대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국 옌젠씨는 자신의 요구와 상관없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멀어지고, 확증편향에 빠지고 급기야 세상과 단절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어떤 대목들에서는 옌젠씨를 통해 거울을 보는 듯했고, 세상이 요구하는 보편적 욕망이라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량 실업 시대,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고용시장은 더욱 불안정할 것이고, 서구 유럽과 다르게 한국은 사회적 부조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런 사회가 예상되는 가운데, 그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까에 대한 실마리를 옌젠 씨를 통해 생각해 본다.

불필요한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 세상의 시선이 과연 나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는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묻고 더 진중하게 대답할 필요가 있겠다. 옌젠씨가 TV에서 얻었던 보편적 인간상에서 나는 너무도 멀리 있다. 생각해 보건대, 내가 원하는 것은 말랑말랑한 생각들, 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 누구도 설득할 수 있을 개연성,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사고력이다. 그런 점에서 세상의 요구를 인식하는 것은 필요하겠으나, 그것을 내 외적 조건에 탑재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되겠다. 그 사고력을 통해 원하는 것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니까.

이 소설에서 다행이었던 점은 비록 옌젠씨가 세상을 향해 문을 닫고, 문패를 떼어 버렸지만 공동체에서는 여전히 당신을 지켜보겠다고 했다는 점이다. 옌젠씨의 자유와 비주류 인생을 받아주지 않았던 사회이지만,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 고꾸라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회의 의지가 느껴졌다.

과연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도 그런 의지를 가져본 적이 있을까?

그 의지를 장착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해서도 개별성을 무시하는 수천 가지 분석 모델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개체라는 사실에는 어떤 의혹도 없었다. - P114

우편물들이 와르르 그를 향해 쏟아졌고, 구겨지거나 우편함 바닥에 달라붙은 것도 허다했다. 옌젠 씨는 산책하려던 맘을 고쳐먹고 우편물을 모아든 후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대부분은 곧장 쓰레깃감이었다. 옌젠 씨가 어떻게 자기 돈을 소비할 수 있는지 다양한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들이었으니까. 이런 것들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우선 필요한 것이 전혀 없었고, 둘째 가진 돈이 적었고, 그래서 그는 그의 돈을 소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지 않았다. - P102

"어째서 당신은 이차, 저는 삼차 수용자에 불과한 뉴스가 우리 두 사람이 알고 있는 실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겁니까?"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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