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개정신판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해설서.

실학자로만 알려진 연암 박지원은 혈통으로는 노론 계파의 후손이지만, 자의로 정계 진출을 하지 않았다. 허생전과 호질 등으로 드문드문 절단되어 알려진 <열하일기>는 맥락을 파악하며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을 연구 결과로 해설하고 있다.

정조의 문체반정은 왕이 주도한 반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데, 그것의 원인으로는 열하일기가 꼽힌다. 당대에 열하일기는 패관잡설이라 저평가되었는데, 이는 ‘사이’에 머무르고자 했던 연암의 정체성과 관련 있어 보인다.

연암은 공식 사절단이 아니라 비공식 사절단으로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연에 따라가게 되고, 중원의 험난한 자연재해를 뚫고 연경(북경)에 도착한다. 건륭제는 몽골의 위협을 방비하기 위해 별궁인 열하로 떠난 뒤였기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연암 일행도 열하로 가게 된다.

그 여정에서 연암은 만주족, 한족, 관리, 저잣거리의 사람들과 필담을 나누거나 관찰하며 견문을 넓히고 이를 세세하게 기록한다. 그것이 열하일기다.

당시 조선 지식인 사회는 인조 이후로 소중화주의와 북벌론에 빠져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민족 자주 자강 노선의 북벌이 뭐가 나쁜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그 좁은 세계관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 변화하는 시대, 물자와 인간이 교류하고, 우열 없이 다양한 세계를 만나지 못한 채 중국 한족을 대신해 인의예지의 좁은 시야를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열하일기 이후로 실학사상가들은 북벌이 아닌 북학을 발전시켰기에, 이 기행문의 확장성을 발견한다.

연암은 강과 언덕 사이에 길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중도가 아니며, 어디로든 확장 가능하고 어디로든 가지를 칠 수 있는 길이다. 그가 교류했던 박제가, 이덕무, 홍대용, 백창수 등 당대의 실학자들과 무인의 면면도 짧게나마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남인 세력의 정약용과 박지원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론으로 실었는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두 지식인의 면면을 보게 된다. 왕권 강화가 필요했던 정조는 젊은 정약용 등을 중용했고, 그들의 업적 또한 뛰어나지만, 정약용의 권력 중심을 향했던 시선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면이다.

고미숙 선생님은 젊은 연구자의 시선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좁은 지식의 틀을 깨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열하일기> 전문을 읽고 싶어진다. 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등을 읽고 싶어진다. 들뢰즈를 읽지 않고서는 지금, 여기의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문체도 특이한 편이다, 연암처럼. 여느 인문서, 대학교재 같지 않고 연암 박지원에 푹 빠져있는 선배가 그 마음을 담아 열정적으로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연암이 문체반정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고미숙 선생님도 기존의 질서에 항변하는 듯 자유롭게 그 지식과 감정을 모두 담아냈다. 교류하고, 변화하고, 영합하지 않으며 틀에 가두지 않는 사상과 포용력과 표현의 책임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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