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톰 행크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책세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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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적인 영화배우이자 감독, 시나리오 작가인 톰 행크스의 단편소설집이다. 기대 이상이다. 작가로 불리기에 손색없을 만큼 글을 잘 쓴다. 그는 독자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할 줄 안다. 


타자기는 한때 대중적인 글쓰기 도구였으나, 이제는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톰 행크스는 열렬한 타자기 애호가다. 그는 글을 쓸 때 '타자기를 두드리는 손의 움직임과 감촉을 통해서도 즐거움을 맛본다'라고 말한다.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톰 행크스가 틈틈이 타자기로 쓴 글을 모은 단편 열일곱 편 실려있다. 각 단편 첫 장에 다양한 타자기 사진이 있다. 소설 속에서도 타자기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톰 행크스의 배우로서의 경험을 잘 살려낸 단편들과, 미국인의 다양한 삶을 그려냈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취향이 다른 두 남녀가 만나서 갈등하다가, 서로에게 적응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석주 만에 나가떨어지다> 


화목한 가정의 크리스마스 풍경으로 보이나, 반전이 숨어있는<1953년 크리스마스이브>.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주인공은 포화 속 크리스마스를 떠올린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마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전투 장면을 보는 것처럼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다.


신인 배우가 유명 배우와 영화를 촬영하고 스타덤에 오르게 되나 추락은 한순간. 인기란 거품 같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파리에서의 마지막 홍보 여행> 


열아홉 번째 생일에 아버지와 서핑을 하러 간 해변에서, 아버지의 불륜 장면을 목격한 <마르스 해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 밤, 특별히 할 일이 있으신가요? 세 아이의 싱글맘은 이웃집 남자로부터 이 말을 듣고 경계를 한다. 남자는 그가 만든 천체망원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순수한 호의였다. 이어서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편견을 버리고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편견은 본질을 가린다는 <그린 스트리트에서 보낸 한 달>


엄청난 부자 60대 남자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시간만은 예외다. 과거 속에서 오직 스물두 시간만 머물 수 있다. 그는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결국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을 넘기게 되고,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는다. 사랑은 죽음도 불사한다는 <과거는 중요하다>

 

달나라 여행. 미국으로 밀항한 불가리아 이민자. 볼링 천재. 성공에는 운이 따른다는 어느 배우의 이야기 등. 대부분 현실적인 이야기다. 스토리 전개가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다.


톰 행크스는<뉴요커> <뉴욕 타임스>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의 이력에 추가된 소설가라는 직함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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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자 1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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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베트남 역사를 알면 좀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베트남은 과거 오랜 기간 중국과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는 호찌민이 이끄는 디엔비엔푸에서 참패 후 물러나고 새로운 패권국으로 미국이 등장했다.

 

제네바협정에서 베트남과 프랑스는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하기로 합의했으나, 남베트남 거부로 총선이 무산되었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공산주의 척결을 내세운 미국이 개입했다.


베트남전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대립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순수한 이념전쟁은 아니었다. 미국이 주도한 냉전체제 이면에는 실리적인 군산복합체도 작용했다.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이 쓴 소설 <동조자>2016년 퓰리처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베트남전을 소재로 하고 있으나, 전쟁의 참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한 개인의 사상과 이념, 문명과 문화의 충돌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가진 이중스파이 이야기다.


소설은 자술서 형식이다. 나는 프랑스인 사제와 베트남인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사생아다. 나의 출생은 비밀에 가려진 채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놀림의 대상이 된다.


당시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전쟁 중이었다. 북베트남 출신인 나는 소년 시절에 미국 CIA 요원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특수훈련을 받고 CIA 비밀요원이 된다. 이후, 남베트남 장군의 부관으로 임명돼 방첩활동을 벌인다.


한편, 나는 공산주의자다. 북베트남 고정간첩이다. 장군의 부관으로 일을 하면서 무수한 정보를 북에 넘긴다. 남베트남은 미국의 원조에 의지했고,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 남베트남이 패망하자 장군 휘하 참모들과 가족은 CIA가 제공한 수송기를 타고 괌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장군은 조국을 되찾기 위해 비밀 군대를 조직해 혁명을 모색한다. 나는 특수요원으로 베트남에 잠입하던 중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다.


수용소에서 나는 정체성을 의심받는다. 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데다 미국물을 먹었다는 것이다. 나는 사상개조를 위해 1년 동안 독방에 갇혀 374쪽에 이르는 자술서를 쓴다.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동조자>는 소설인데도 마치 실화로 느껴질 만큼 촘촘하게 쓰여있다. 때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가 혼혈이라는 설정은 서구세력에 의해 희생된 베트남인의 비애이자, 정체성의 애매함을 말해준다.


그는 인간적이면서도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우정에 목숨을 거는가 하면, 적이자 동지인 북의 간첩을 잔인하게 고문하기도 한다. 스파이로 의심받자 자신의 안위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밀고하고 암살한다.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자다. 소설 속에서 미국인의 시각으로 제작된 베트남전 영화는 미국 우월주의가 팽배하고, 베트남은 여전히 하찮은 약소민족으로 묘사한다. 파괴와 강간은 합리화된다. 잊힌 전쟁을 그들 방식으로 재현해 내고, 그들 방식으로 기억한다.


전쟁에서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선과 악이란 국가나 개인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선과 악은 하나인 셈이다. 우리에게 내재된 인간 본성의 본질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소설은 중립적이다. 그는 미국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미국 문화를 즐긴다. 좌, 우익 양진영에 걸친 동조자지만, 확고한 신념이 없이 흔들린다. 그는 결국 좌익과 우익, 어느 쪽에도 완전히 동조되지 못한 어설픈 동조자였다.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걸까? 나는 올바른 선택을 했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는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문의 자술서를 쓰고, 또 고쳐 쓰면서 어렴풋이 깨닫는다. 자유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지만,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혁명을 통해 자유를 꿈꿨지만, 혁명은 자유를 억압하는 또 다른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무엇을 하는가? 혁명가는 혁명이 승리를 거두면 무엇을 하는가? 독립과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들의 독립과 자유를 빼앗는가?'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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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푸른 너에게로 간다
어득천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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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장을 좋아한다. 장문보다 단문이 좋다. 짧지만 깊은 통찰력이 우러나오는 시인의 언어는 이 모든 것을 능가한다.

시는 머리와 가슴이 아닌, 온몸으로 쓰는 거라고 김수영 시인이 말했다. 한 편의 시가 탄생되기까지 수없이 생각을 다듬고 시어를 고르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도 숨어 있으리라.

한 권의 책은 누군가의 기억과 공간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다. 무한한 세계 속에서 인간존재의 본질을 찾아 나서는 다채로운 여행이다.

<오직 푸른 너에게로 간다> 어득천 시인의 시집이다. 첫 시집이지만, 오래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모든 글이 그렇겠지만,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렵게 쓰기 때문이다. 넘치는 은유와  화려한 기교로 구성된 언어의 미학적 마술은 종종 소통의 부재를 낳는다. 쉬운 글이 좋다. 쉽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시가 좋다. 어득천 시인의 시가 그렇다.

어시인의 시 세계는 순하고 맑다. 자연을 향한 섬세한 시선과, 무심코 스치는 일상의 자잘한 순간들을 포착해 시로 노래한다.

삶을 향한 긍정과 희망의 시선이 반짝인다.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시적 상상력은 때론 날카롭다.

간결하게 압축된 시 속에 우리 인생이 들어 있다. 살며, 견디며, 사랑하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방랑자>
꽃이 피면
화사하여 살 만하고

꽃이 지면
쓸쓸하여 살 만하다

기쁨도
슬픔도 지상에 잠시 머무는 꽃

삶이란
세월 따라 저절로 살아지니
발길 따라 나아갈 뿐

꽃이 피고 지는 길
걸어가는 오늘이 축제의 날 아니런가.

- 무심한 듯, 삶을 향한  관조의 시선이다. 꽃이 피고 지듯, 생과 사는 자연의 섭리다. 내일은 오늘의 다른 이름일 뿐, 찰나는 곧 과거가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늘 과거 속에서 사는지도 모를 일. 그래서 오늘이 축제의 날, 맞다

<농밀하다>
새벽
마지막 별 스러질 때
어둠의 농도는 제일 농밀하다

가을
마지막 잎새 떨어질 때
계절의 농도는 제일 농밀하다

그리움
마지막 눈물 마음 적실 때
사랑의 농도는 제일 농밀하다

사람
마지막 호흡 끊어질 때
生의 농도는 제일 농밀하다

-그렇다. 절정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모든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삶의 아이러니다. 삶도 사랑도 죽음도...

<사람과 꽃의 향기>
우연히 만났으나
시간을 견디면 좋은 인연이 되고
인연이 되어 다시 오랜 세월 이겨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꽃이 핀다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꽃이 된다는 거
잊을 수 없는 진한 향기가 된다는 거
이 얼마나 놀랍고 행복한 일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모든 것을 포괄한다. 때론 천국과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꽃과 향기로 무르익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벼운 농담>
이를테면
가벼운 농담은 물고기의 부레다
날개 없는 날개다

가벼운 농담이
무거운 일상을 이끈다
짐짓, 실없는 웃음이 삶의 무게를 던다
그 부력浮力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가볍게 살자
바람에 나부끼는 솜털처럼
어쩌면
가벼운 농담보다 가벼운 인생 아니더냐

- 가벼운 농담은 삶의 무거움을 희석시키는 활력소다.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 간다'는 말처럼,  삶은 그저 농담 한 판이 아닐는지.

<하루살이 인간>
그대의
어깨가 무거워 보여요
무엇이 그댈 힘들게 하나요
천만년 살 것처럼 애쓰지 말아요

우리
하루살이로 살아요
하루만 생각하고 살아요
오늘을 마지막으로 알고 살아요

유월의 바람에 살랑이는
아카시아 잎처럼 가볍게 살아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방랑자로 살아요

하루 치만 고민해요
하루 치만 슬퍼해요

오늘 세상 누구보다 즐거운 듯 살아요

- 삶은 어떻게 사는가, 마음먹기 나름이다. 치열한 삶 속에서도 적당히 비우고, 적당히 유유자적하게 살자.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미래의 일이다. 미래의 고민은 미래에 맡기자.

<오직 푸른 너에게로 간다>
도시를
숲이라 할 순 없을까

젊은 나는
푸를 靑靑 한 그루 소나무,
예쁜 그댄
청순한 물푸레나무

은행 창구
환한 웃음의 텔러
연분홍 진달래꽃,
웃음 터뜨리며
스타벅스 앞 지나가는 한 무리 소녀
만발한 벚꽃

사무실
너털웃음의 만년과장 김 과장
그늘 넓은 느티나무,
쉬엄쉬엄 저 노인
걸어가는 오백 년 은행나무

회색빛 도시,
새벽안개 잠긴 자작나무 숲

난 오늘도
연분홍 진달래꽃 지나
오백 년 은행나무 지나
자작나무 숲,
오직 푸른 너에게로 간다

- 우리 삶의 소소한 풍경을, 꽃과 나무로 비유한 점이 시선을 끈다. 반복되는 일상 속, 회색빛 도시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면 좋겠다.

저자 어득천 시인은 1968년 지구별에 불시착하였다. 동해 푸른 바다 넘실대고 소나무 향기 가득한 강릉에서 해의 시간에는 샐러리맨으로, 달의 시간에는 시인으로 살고 있다. "이 生이 우리 모두에게 즐겁고 여유로운 한때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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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는 순간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전은경 옮김 / 책세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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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학대받은 고통은 평생 잊지 못한다. 다만 스스로 자유롭기 위해, 혹은 고통을 지우기 위해 용서한 척할 뿐이다. '삶은 이따금 다른 사람의 죽음과 함께 끝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일 경우 그렇다.


반면 다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삶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비극이다. 그 사람이 아버지라면 어땠을까.


독일 소설가 '안드레아스 알트만'의 에세이집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고 자란 알트만의 <나를 사는 순간>에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저자의 경험담이 들어있다.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목소리다. 거친듯하면서도 지적이다. 읽다 보면 저자의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2차대전 당시, 나치 당원이었던 아버지는 전쟁 후 트라우마로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학대한 폭력적인 가장이었고, 만인의 적이었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 모두 아버지 곁을 떠났다. 알트만은 20년간 살던 고향을 쫓겨나듯이 떠났다.


이후, 스물몇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세 개의 학업과정과 열세 번의 심리치료 시도에서 실패했다. 방황하던 그를 루저의 늪에서 끌어낸 건 언어였다. 글을 썼고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유명 작가가.


취재 기사를 쓰기 위해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겪은 사건 사고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있다. 놀랄 만큼 솔직하다. 치부일 수도 있는 이야기도 거침없이 쓴다.


에세이 소제목은 이렇다. 탐욕, 모험, 타인, 에로스, 고통, 고향, 외로움, 죽음, 종교, 일과 사랑 등 인생의 한순간에 관해 쓰여있다. 불행한 성장과정을 겪었지만, 삶을 향한 시선은 따뜻하고 정의롭다. 권위와 폭력에 맞서며, 진정한 인간애를 추구한다.


알트만은 문학의 깊이와 센스 있는 위트 감각 모두 갖췄다. 이중 작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종교에 관한 이야기와, 코믹버전인 비행기 테러범(아기 울음소리) 이야기다.


특히 종교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전쟁과 폭력에 관해 말하면서 신을 결부시킨다. 무신론자인 그는 구약성서 구절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성서의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일부 인용하면,


"우리가 신의 형상대로 창조됐다고? 신의 유전자에 살인 유전자도 들어있나? 물론 아니다. 사랑의 신이면서 동사에 소름 끼치는 신은 없으니까. 그저 태곳적부터 인류를 괴롭히는 이 천상의 마술 주문이 있을 뿐이다."


사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삶의 목표도 가치관도 다르다. '유일하게 의미 있는 삶이란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절대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개인의 실현을 추구하는 삶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 때,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추구할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적절한 행운과 우연도 필요하다.


알트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생각난다. 천사 미하일이 인간세계에 내려와 깨달은 것은 사랑이다. 사람은 사랑에 의해서 산다는 것이다. 구두장이 이야기처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 삶이다. 그건 오히려 축복이다. 미지의 무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들은 한 편의 엽편소설처럼 읽힌다. 때론 사회비평을 보는 것 같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이 타인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하면서 게토 유대인을 탈출시킨 이야기,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이 오히려 건강한 사람을 위로하는 이야기들은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절망의 시간을 딛고 온기 가득한 삶으로 바꿔나간 알트만의 에세이는 읽고 나면 생각에 잠기게 한다. 살면서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 책, <나를 사는 순간>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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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딘성으로 가는 길 -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기억과 약속을 찾아서
전진성 지음 / 책세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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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fact)과 진실(Truth)은 다르다. 역사적 진실은 개개의 사실 속에 담겨 있지 않고 오히려 사실들의 이면에, 그 틈새에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역사는 저마다 상이한 기억을 지닌다.'


인류 역사는 전쟁과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로부터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대부분 영토 확장을 기반으로 한, 명목상 이념전쟁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전쟁세대가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은 대부분 역사서나  문학을 통해서 본 간접경험이다.  그걸 바탕으로 전쟁을 기억한다.


그렇게 보면, 전쟁 관련 소설은 많지만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소설은 그리 많지 않다.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 강> 이나  안정효의 <하얀 전쟁>등, 이를 통해 베트남전의 실상을 대략 짐작할 뿐이다.


베트남전쟁은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띤 전쟁이다. 단순히 반공주의 대 공산주의로 이원화된 대립 구조로 볼 수 없는 ' 20세기 모든 갈등 요소가 뒤범벅이 된 전쟁이다.'


베트남이  자주 국가 통일을 위한 민족 해방 전쟁을 수행한 것이라면, 미국은 냉전시대의 이념전쟁을 수행했다.


베트남 역사와 전쟁 발발 원인


베트남의 근 현대사는 우리 역사와 비슷하다.  베트남은 과거 1000년 이상 중국의 통치를 받았고, 수차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침략으로 오랜 기간(62년) 식민통치를 겪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이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베트남을 다시 점령했다.


일본 패망 후, 호찌민이 이끄는 '인도차이나 공산당'은 혁명을 일으켜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러나 외세가 개입된 포츠담 협정에 따라 베트남은 남. 북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프랑스는 옛 식민지를 회복하고자 재침략했다. 북베트남과 프랑스 간 8년에 걸친 전쟁이 벌어졌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프랑스의 항복으로 제네바협정(1954)이 체결되고, 1956년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남베트남 정부는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고, 북베트남 공산주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총선을 거부했다.  이에 미국이 개입했다. 다시 북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이 벌어졌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베트남전쟁이다.


대한민국 파병의 이면


미국의 참전 명분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다. 중국을 비롯, 주변 국가가 공산화될 가능성을 시사한 일종의 도미노 이론을 내세웠다. 이런 명분 없는 전쟁에 미국의 동맹국 대다수는 외면했다.


한국군 파병은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이었으나, 실은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는 파병에 따른 금전적 이득을 앞세워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 강제 차출로 파병했다.


베트남 전쟁의 가려진 이면에는 박정희 군부정권과 미국의 거래가 있었다.  '당시 군부정권은 월남 파병에 정권의 생명을 걸었고, 파병을 통해 경제 안보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강준만 2004).

베트남전은 한마디로 돈을 벌기 위한 전쟁이었다. 정부는 파월장병들의 목숨을 담보로 달러와 바꾸었고, 이를 통해 경제발전의 초석을 이룬 셈이다.


베트남전 실상


베트남전은 뚜렷한 전선도 없고 후방도 없는 '마을 전쟁'에 가까웠다. 전투 과정에서 베트콩과 양민 구분이 안됐다. 베트콩이면서 양민이 되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수많은 무고한 양민이 학살당했다. (베트남 중부  빈안에서 1000여 명이 넘은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전쟁 중 무자비한 악역을 맡았던 파월장병들의 심리를 우리 과거사와 연결 지어 분석한다. 제국주의 (일본)로부터 폭력의 역사를 겪은 피해자의 억압된 분출구의 일환으로 본다. '한국인에게 폭력이란 피해자를 가해자로 역전시키는 감정의 연금술이었던 셈이다.'


베트남전은 1965년부터 8년간 이어졌고 미국의 패전으로 끝났다.  베트남은 92년 만에 통일된 사회주의 독립국가를 형성했다.  


 미안해요, 베트


1999년 한국 시민사회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죄를 목표로 벌여온 슬로건이다. 오래전부터 정부와 민간인 단체를 중심으로 베트남 파월 군 주둔지에 학교를 짓는 등 장학사업을 꾸준히 벌여오고 있다.

베트남 학살 외신 보도가 처음 터졌을 때(1999) 베트남 정부는 "한국과 베트남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으며, 과거사의 불행한 일을 현시점에서 거론하는 것은 베트남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는 베트남 학살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약소국인 한국이 미국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참전한 것이니 과거사에 대한 일체의 논의에 반대한다' 했다. 과거사에 연연하기보다는 실리를 중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75년 베트남전이 종전되면서 전쟁의 기억은 서서히 잊혀 갔다. 세대 간 단절은 망각을 가져왔다.

베트남전은 왜 잊힌 전쟁이 되었을까? '베트남전 파병은 사실상 명분이 부족했고 피해도 컸고, 수혜의 배분 또한 그다지 정당하지 않았으므로, 진실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박정희 유신정권을 포함하여 군부독재정권들은 베트남전의 기억을 아주 단순한 형태로 박제화하고는 민족사의 벽감에 고정시켜 놓았다.'


국가에 의한 집단적, 의도적 망각이다. 진실을 드러내는 건 불편한 법이다. 베트남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빈딘성으로 가는 길>은 참전용사들의 기억과 증언을 토대로 베트남전의 실상을 알려준다. 저자는 가해자의 입장에 일방적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경계한다. 상반된 두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당시 우리 정치, 사회, 나아가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다각도 시선에서 바라본다.

 

근래 <겨레 21>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서 베트남전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파월장병들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다. 그러나,


'피해자의 측면을 강조한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침묵이 좌절감의 발로이자 고통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라면, 가해자는 침묵만으로는 과거를 숨길 수 없다.'

 

과정이야 어떠하든, 결과적으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잘못된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과 가해를 정당화해선 안된다.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모색하는 길이 곧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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