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텔로스telos 곧 궁극 목적은 공동체이지 자기 충족이 아니다. 향연이며 함께하는 삶이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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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런 종류의 기대감 속에서 살아가는 것, 즉 그 일이 일어날 때 볼 수 있을 만큼 눈이 충분히 뜨여 있고 정신은 느긋한 동시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깨어 있는 의식 속에 살아가는 것이 제자도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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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창조주는 우리를 취약한 채로 남겨 두신다. - P46

나는 신정론을, 우리 자신의 몸서리치는 취약함과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 사이의 실존적 대결로 보게 되었다. - P50

"주님, 왜 답을 말씀하지 않으시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주님은 주님 자신이 답이십니다. 주님의 얼굴 앞에서 의문들은 사라집니다. 다른 어떤 답이 충분하겠습니까? 말은 오직 말이고, 다른 말과의 싸움으로 이끌려 갈 뿐입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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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마지막 부분은 마지막 때로 시선을 돌린다. 요한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숨 막히는순간을 묘사한다.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볼 때, 우리는 온전해질 것이고 죽음이나 울음이나 고통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바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잠깐, 마지막의 긴 울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구속 자체는 어둠을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한 방울의눈물까지 흘리기를 요구한다. - P91

신자의 변함없는 자세는 고대하면서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는 것이다. 놀랍고 기적적인 것이든 조용한 변화의 물결이든, 우리는 하나님이 행동하시기를,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기를, 나타나서 역사하시기를 기다린다. - P97

기독교의 이야기는 우리의궁극적 소망이 우리의 생애 안에 있다거나 무덤 이편의 삶을 수월해지게 만드는 것에 있지 않다고 선포한다. 우리는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오는 세상의 생명"을 기다리며 파수한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이 시간의 빗장을 부수고 영원을 가져오실 때까지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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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월요일 아침을 어떻게 바꾸는가?

이것은 단순한 역사 속의 과거 사건이 아니다. 역사 속에 침투하고 있는 미래다.

십자가와 부활은 특별한 삶을 창조하는 특별한 사건이다.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로 빚어질 때, 우리의 평범한 삶은 예외적이고 특별하며 영웅 같은 삶이 될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내 평범한 일상이 십자가와 부활로 빚어져서 특별한 삶으로 바뀌어지는 일이 정말 일어날 수 있을까? 정말 그랬음 좋겠다. 과거의 그 사건이 지금도 생생히 효력을 발휘하여, 의미를 찾고자 부르짖는 현재의 갈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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