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내면에서 깊은 갈증 곧 어려움과 유혹의 순간에 그 무엇보다 더 강렬한 열망을 발견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최악의 순간에도 자신들이 볼 수 있는 시야 너머에서 선한 이야기, 그 결말이 심히 좋아서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어려움을 상쇄할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고 신뢰하며 견뎌야 할 갈증이다.
그들 모두 안에 무언가가 살아남았다. 선한 것, 성령께서 일깨워 주신 것이다. 이것이 해소할 수 있는 갈망, 앞에 있는 것을 항상 소망 하면서 힘든 시절을 견디고 계속 제대로 사랑하려고 하는 갈망이다.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과 열 망이 시들지 않고 점점 커지면서, 좋은 때나 나쁜 때를 불문하고 인내 하려는 갈망이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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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의 "모든 흔적"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을 때에도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기로 선택하는 순종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낀 세 시간 동안 바로 그렇게 하신 예수님의 고난 속에서 그분을 본받으라는 명령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후 5:19). 최악의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 한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무엇을 하실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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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으레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많은 부분을 행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셔서, 자신의 통제권 안에서 우리에게 저급한 선을 주지 않으심으로써 더 큰 선을 성취하기로 결정하신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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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에서 시작되어 죽음에서 끝나는 우리의 작은 이야기 속에서 만사가 형통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열망이, 이제 하나님의 큰 이야기 곧 우리가 거듭날 때 시작되어 영원까지 계속 이어질 이야기 속에서 살기 위해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원하는 갈증보다 훨씬 강하다. 어리석은 비극이 있다. 우리가 최고의 선보다 저급한 선을 더 갈망한다는 사실이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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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우리는 하나님이 목표로 삼고 일하시는 "선"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즐겁고 복된 삶이 아니다. 29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아들의 형상으로 우리를 빚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언제나 가져다주기 위해 일하시는 ‘선‘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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