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엘사도 아니고, 엘사는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는‘ 순간 타인을 (날카로운 얼음 조각으로) 다치게 하므로 렛잇고를 외치며 고립을 택했지만, 마법이 없는 나는 월급이 필요했으므로 고립될 수 없었다. - P46

풍요로운 서사를 이해하는 인간이라면 인어의 슬픔에 공명하지 않을 수 없다. 애가 탄다는 건 마음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불행을 모른 척하지 않는 인생이 온통 꽃길일 리가 있을까. - P53

문제는 비대한 자아다. 내가 나를 너무 ‘크게‘ 생각하는 오류와 인간은 평생을 싸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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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그 대신 내가 슬픔을 ‘본다‘. 쓰기 전에 슬픔은 나 자신이었지만 쓰고 난후에는 내게서 분리된다. 손으로 공을 굴리듯, 그것은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엇이 된다. - P22

글을 씀으로써 나는 많은 것을 견딜 수 있게 됐지만, 글을 쓰는 일이 다시 많은 것들의 ‘견딜 수 없음‘을 일깨우는 역설을 감당할 수 있을까. - P27

상사의 마음에 들 법한 농담을 재채기처럼 뱉어내는 사무실안의 ‘나‘가 있고, 퇴근 후 키친 테이블에서 글자를 채우는 또 다른 ‘나‘가 있다. 후자만이 진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일하고 순결한 자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33

표현할 수 없는 인간보다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 삶에 유리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기쁨은 언어가 되는 순간 불어나고 슬픔은 언어가 되는 순간 견딜 만한 것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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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가 가장 기쁨을 느낄 때는 다른 사람과 소통을 나눌 때라고 한다. 특히 상대방과 눈을 마주보면서 소통을 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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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낮은 자존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에 있는 면박을 주는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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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수없이 다투지만 실제 다투는 숨은 동기는 누가 더 힘을 가질 것인가에 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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