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그 대신 내가 슬픔을 ‘본다‘. 쓰기 전에 슬픔은 나 자신이었지만 쓰고 난후에는 내게서 분리된다. 손으로 공을 굴리듯, 그것은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엇이 된다. - P22
글을 씀으로써 나는 많은 것을 견딜 수 있게 됐지만, 글을 쓰는 일이 다시 많은 것들의 ‘견딜 수 없음‘을 일깨우는 역설을 감당할 수 있을까. - P27
상사의 마음에 들 법한 농담을 재채기처럼 뱉어내는 사무실안의 ‘나‘가 있고, 퇴근 후 키친 테이블에서 글자를 채우는 또 다른 ‘나‘가 있다. 후자만이 진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일하고 순결한 자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33
표현할 수 없는 인간보다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 삶에 유리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기쁨은 언어가 되는 순간 불어나고 슬픔은 언어가 되는 순간 견딜 만한 것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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