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 - 아름다운 삶을 위한 죽음 공부
최준식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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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 죽음을 맞이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것,

그 사람이 영웅이든, 악인이든 누구나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의 형태가 다양할수록 인간이 유약한 존재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제목에서도 써있듯, 

'죽음'(Death)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탄생과 함께 '불가역적'인 운명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죽지 않은 인간을 본 적도 없으며, 들은적도 없다.

수많은 재력가나 제국의 황제, 산속의 수도승들도 죽음을 피하고 ,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인간은 죽음의 영역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죽음이 발생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죽음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광활한 우주속에서 매우 유약한 존재라는 것을 반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인간의 죽음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서, 화재로 인한 죽음, 병에 의한 죽음, 사고에 의한 죽음 등등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죽음도 발생하고 있고, 그래서 다윈상이라고 하여,

한심하고 멍청하게 죽은 이에게 주는 '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삶과 죽음의 쳇바퀴 속에서 갇힌 '인간'을 바라보고노라면

공허함과 허망함이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인간이 아무리 오랫동안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고 하여도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한 타인의 안타까운 죽음은 수많은 마음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홀려서

'베르테르 효과'를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죽음만이 부정적이고, 공허함만 가져오는 암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면 '끝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일에 치여서 하루하루 고통스럽지만, 이렇게 숭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기리는 날을 맞아

휴일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희생이 후대의 누군가에는 희망으로 자리잡는 것처럼

'헛된 죽음'도 '공허한 죽음'도 없다. 모두 자연스럽고, 운명속에서 하나가 된다.

자연을 예로 들자면, 식물을 자신의 몸이 썩어서, 다른 식물들의 비료가 되고,

동물들의 사체는 다른 약한 동물들의 휼륭한 먹이가 되어, 생태계를 꾸린다.

우리 인간도 자연속에 일부라면, 우리 인간의 죽음도 마냥 부정적인 것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 시대에는 죽음에 대해서 다양한 질문들이 오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논쟁이 되는 것이 '인간의 존엄사'이다.

존엄사란, 불치병이나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을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만 안겨줄때에, 환자 또는 가족들의 동의를 통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그것또한 살아있다고 여기며, 반대하고

다른 이들은 이미 죽음을 맞이하여, 더 이상의 연명이 무의미하기에 깨끗하게 보내주자는 찬성도 존재한다.

이 글을 쓰는 나역시도,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품위있는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흘려가는지 모르고, 죽음도 어떻게 맞이할지는 모르지만,

그 때가 온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루하루 삶이 고달프더라도, 잠깐의 짬을 내서

이 고민에 대한 답을 내려보길 바란다.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지만,

누군가에는 이미 답이 도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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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국가디자인전략
권영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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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국가 디자인 전략] 국가 브랜드의 대전환


우리나라의 군사력 세계순위는 몇위일까?

2018년 기준으로 7위였다. 유독 아시아의 국가들이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세계의 상위권을

선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의 도화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와 그 지역 일대에서 끊이지

않는 주변국가들간의 분쟁들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군사력 세계순위의 7위는, 우리에게 있어 무엇을 주는가?

뿌듯한 마음인가? 아니면 부끄러운 마음인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군사력이 강하다는 것은 좁게보면 좋은 의미이지만,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들은 수많은 희생과 불필요한 소비라고 생각하기에, 넓은의미로는 나쁘다고 본다.


다시말해, 이러한 군사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앞날이 창창한 젊은 청년들을 징병제로 가게하다가, 일부는

이유도 없이 객사하거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쓸데없는 한반도 긴장완화발생, 그로인한 

국민적 불안감들이 쌓여있음으로서 만들어진 이러한 군사력 순위는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용어로서, 이러한 군사력순위나 경제력 순위와 같은 물리적 힘을 '하드파워'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이제는 '소프트파워'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바로 '문화'의 힘이자 , 세계속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할 '강력한 문화 브랜드'의 힘을 말이다.

군사력이 누가 더 높네, 경제력이 더 높네는 다수의 하위국가들에게 있어서는

무의미하고, 매력적이지 않다. 국가도 마치 '사람'과 같아서 

사람이 단순히 겉으로만 강하고, 멋있어보이지만, 속에는 백마리의 뱀이 안에 도사리고 있다면

전혀 '매력적'이지 않고, 오히려 '이질감'만 늘어갈 것이다.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브랜드 디자인' 즉 소프트파워의 필요성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브랜드의 필요성은, 다른 의미로는 '평화적인 견제의 수단'으로도 활용이 된다.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면, 국가라는 이름의 '일본'이라는 브랜드를 생각해보았을때에 흔히 세계인들의

시각은 '오리엔탈리즘의 동양적 국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본의 소프트파워가 가장 궁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2020년 일본 도쿄 올림픽의 홍보영상에서였다. 일본 광고회사가 제작한 이 영상에서의 일본 모습은

세계인들이 단순하면서도, 깊게 공감하는 일본내의 특유 브랜드들, 예를 들어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사무라이와 유도, 스모 선수들과 빨간색, 벚꽃과 후지산 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아이템들이다.

반대로, 현재 우리나라를 구글에다 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북한'과 연관된다. 우스운 머리모양을 가진 뚱뚱한 지도자의 얼굴과

로봇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핵 미사일과 인권탄압등은 Korea에 대한 이미지를 흐리게 만들고,

불쾌하게 만든다.

이러한 점때문에 소프트파워 순위에서, 일본은 캐나다 다음으로 6위를,

한국은 21위를 가졌다. 일본에게 지기 싫어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성격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순위의 격차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라는 슬로건 아래에

소프트파워를 키우고자 노력해왔다. 산업화와 근대화가 종료된 시점인 9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문화브랜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덕분에, 빠르게 발전해갔고,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에서의 노력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

정권이 바뀔때마다 뒤바꿔버리는 '디자인 정책'이다. 통일성과 일관성, 심도있게 고른 '한국만의 소프트파워'가

아닌, 그저 정책의 입맛에 맞게 

'보여주기식' 정책만을 보여주니, 정책들은 일관성이 있지못하고, 시간과 돈만 낭비되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의 한반도는 지금 가장 거대한 운명의 변환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영원하고 항구적인 평화의 시대'를 열것인가? 아니면 다시 '전쟁의 공포에 뒤덮힌 한반도에 있을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흐름은 평화의 시대를 향해 조금씩 걸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전쟁의 공포가 벗어나는 지금의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만의 브랜드'이다. 일관성있고 한국인들도 공감하며, 세계인들도 이 브랜드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러한 아이템들,


그것에 대한 방대하면서도 명료하게 작성한 책이여서 꺼내 읽어보았다.


옛날, 독립운동가 김구선생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가지고 싶은 힘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다.

경제나 군사력은 우리를 스스로 지키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면 되지만

무엇보다도 무한히 가지고 싶은 힘은 '문화의 힘' 바로 소프트파워였다.


이제,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난 뒤에 KOREA를 구글에 검색하면

평화롭고 따뜻한 한국인들의 웃는 얼굴이 가득하길 바래본다. 자국민도 공감하고, 납득할만한

국가 디자인 전략이 실행되어 세계인도 이 브랜드에 공감하고 열중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길 바래본다.

그것이, 100년전의 선조들이 열망했던 새로운 한국과 한반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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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실록 -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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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실록] 전쟁으로 보는 조선사


인간의 삶이 치열한 전쟁의 연속성을 가지는 것처럼,

한 나라의 운명에도 '평화로운 태평성대'가 영원하지만은 않다.

더군다나, UN이나 국제평화기구등이 설립되지도 않은 근세시대였다면 더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의 민족적 뿌리이자, 현대 대한민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조선의 역사는 '전쟁'의 연속성이었다. 지금처럼 남과 북으로 단절된 형태가 아닌

위로는 대륙과 이어지고, 아래로는 대양과 이어지는 '반도'의 운명은 찬란하면서도 기구했다.

조선의 시작역시도, 고려말 왜구토벌 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해적무리였던 왜구는, 조선과 명나라 등 주변국가들에게 매우 골치아픈

골칫거리들이었다. 일본정부에게 단속을 하라 일러도, 결코 통제되지 않았던 이 왜구들은

고려말에는 더더욱 극성이 심해져, 위로는 홍건적이, 아래로는 왜구들의 약탈이 심해진다.

이런 왜구들을 소탕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게된 세력이 바로 '신흥무인세력'이다.


이들 중에는, 후에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역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후에 원`명 교체시기에 새로이 생겨났던 '신진사대부'들과 연합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고, 이것이 조선의 시작이자 건국이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조선이었지만, 조선의 역사 곳곳에는 '전쟁의 상흔'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초기로는 여진정벌과 대마도 정벌, 중기로는 빼놓을 수 없는 삼포왜란과 임진왜란, 

후기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말기에는 서양의 침략등 

조선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도 세계였고, 세계의 흐름에서 변곡점이 되었던 것도 조선이었다.


그렇듯, 지금의 한반도 운명은 과거에서부터,

숙명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풀뿌리처럼 굳세게 버티면서 살아온 것은

당시의 조선인들, 그리고 지금의 우리조상들이다.

허리도 피지못하는 어렵고 숨이 턱턱막히는 온갖 부조리한 세상속에서도 그들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희망은 현재 대한민국의 후손들에게도 전해져, 현재의 온갖 역사의 변화속에서도

굳건하게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 대한민국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의 거울을 바라보며

알 수 있다.

조선전쟁실록은, 조선이라는 500년 왕조의 역사를 관통하는 '전쟁의 상흔'을 통하여

전쟁의 시작과 전개, 그러한 후폭풍을 여실히 담아냄으로서 , 현재 북핵위기와 한반도의 급변하는 정세에

답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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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상회 - 거짓말 파는 한국사회를 읽어드립니다
김민섭.김현호.고영 지음, 인문학협동조합 기획 / 블랙피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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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상회] 프레임 깨뜨리기


프레임

사전적의미로는 '틀, 테두리'를 의미한다.

흔히 우리가 보는 모니터의 화면도 일종의 프레임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레임은 생각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해석된다.

이론에서의 '프레임'은 추상적 의미로 '생각의 틀'을 가리킨다.

바로, 사람이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 우리나라 언론들이 제공하는 뉴스를 통하여

'북한'을 바라보았고, '김정은'을 바라보았다.

언론이 제공하는 프레임을 통하여 북한을 바라보았고, 김정은에 대해 바라보았다.

그 프레임은 우리자신의 본연의 생각이 아닌,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의 생각이었고,

그 프레임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것은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부터였다.

프레임이란 그런것이었다.

이런 우리의 생각과 사고를 '누군가가 만든 프레임 틀' 안에 집어넣게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동시키는 과정들은, 주로 메이저 언론들이나 정치계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다행스럽게도, 스마트폰의 시대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이 생겨난 '팟캐스트'와 '유튜브' , '페이스북', '블로그'와 같이

뉴미디어 매체의 등장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러한 프레임에 대해서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러한 프레임들은 얼마나 견고한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흔히,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조'하고, '노오력을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이야기를 듣고, '어린것들이 무엇을 아느냐'며 충고를 듣는다.

그런데, 그러한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한번쯤 멈춰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과연 '선'인지?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지?

나이먹었다고 해서 모두 지혜로운 것이, 아닌지?


우리사회가 몇십년간 쌓아올려왔던 생각의 틀의 밖에서

생각해볼 필요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면,

우리사회의 한 영역만을 들어다볼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알다시피, 현대 대한민국의 역사는 여러 오점들로 뒤덮여있다.

대한민국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이후, 남북에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주둔한 상태에서 시작되었고,

그 과정역시도 순탄치 않았으며, 남북의 분단과 전쟁, 군사 독재정권, 민주화운동 그리고 다시 촛불을 들어

광장으로 나오기까지의 국정농단 사건, 그러한 역사의 회환을 공부하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었고, 프레임안에 갇혀있었는지를 생각하게한다.


혹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먹은 사람들이 똑똑하고 더 안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이가 젊은애들이 주장하는 소리들이 모두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프레임'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난 70여년간 그들이 만든 프레임안에서 살아왔으니, 다른 시각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시도이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서

이제 그들이 앞으로의 70년을 이끌어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공약들을 보면, '청년'들에 대해서는 빠지지 않고

공약이 들어가지만, 정작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때문에 도탄에 빠지는지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표를 원하고 청년이라는 키워드만 집어넣었을 뿐이다.

나이가 어려, 알지못한다고, 

그것은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보다는,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숨어있는 거짓말을 진실과 가려내고,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올리는 것들이

모두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위해 꼭 필요한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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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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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스무살의 생, 그 순간


생일은 누구에게나 축복받아야 하는 날이다.

자신이 태어났고,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사람들에 대한 축복과 감사의 의미를 담는 날이다.

하지만, 모두에게나 생일은 공정하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생일은 '그저 지나가야 하는 날'

또는 '평범한 날짜'로 가리켜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생일이 비록 평범한 날일지라도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맞이하는 '스무살의 생일'은 그 어느때보다

다시오지 못할 '생일'일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단편소설 <버스데이 걸>은 스무살의 생일을 맞이한 한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제 스무살이 다가오는 이 여성은 그 날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고있음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하루가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생일을 처음 그렇게 보내려고 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날 사귀던 남자친구와 최근 다투었기 때문에, 또 당일에 근무를 바꿔주기로 한

친구가 갑자기 몸이 아파 , 대타를 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생일이 지나가는 무렵, 한 노인이 나타나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겠다며 나타난다.

그는 그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강조한다.

'당신이 누구든, 일 년에 딱 하루, 자신만을 위해 특별한 날이 있다'고 

이러한 날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흘러가며, 스무살이 되는 생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찾아온 알면식도 없는 노인에게 '생일축하'를 받은 그녀는

마지막, '마법처럼 이루어질' 소원을 빌며 소설은 끝이난다.


사실, 소설의 장수가 짤막한 페이지의 단편소설이기 때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소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하루키가 그동안 써왔던 소설 중에서도 , 짧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소설이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년에 한 번뿐인 생일'에 대해서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순간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혹자는 말한다.

정말, 그렇다. 

쉴새없이 지금도 흐르는 것이 시간이지만, 다시 그것을 되돌아오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간을 '바다'와 비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과 순간이 '그 찰나의 순간'이라면

이 순간을 , 그리고 생일의 순간을 만끽해보면 어떨까?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그 시간만큼은 소중했노라고 나 자신에게 속삭일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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