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 클로징 - 평범하지만 특별한 나만의 하루
강혜정.이고운 지음, 서인선 그림 / 프런티어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요즘은 디지털 네트워크 세상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좋아지면서 삶이 좀 더 여유롭고 풍성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우리의 삶은 더 바빠지고 주변을 더 돌아보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소리만 전달하는 라디오(물론 보이는 라디오가 있긴 하지만 시각적 미디어는 아니니까)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처럼 다가온다. 지금이야 팟캐스트 같은 인터넷 방송도 많아졌지만 라디오만큼은 본방사수를 해야 진짜 라디오를 듣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디오도 다시듣기 서비스로 언제든 들을 수 있지만 제맛이 나지 않는다.

라디오가 매력적인 것이 여러 사람들의 사연을 DJ가 읽어주지만 때로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친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DJ의 이야기이기도 한 DJ와 청취자가 라디오란 매체를 통해서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여기에 DJ와 청취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라디오 방송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PD도 있겠지만 더 큰 숨은 조력자는 바로 방송작가다. 방송작가가 1차적으로 만들어준 이야기 위에 DJ가 옷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청취자는 방송작가와도 만나는 것일 수 있겠다.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강혜정·이고운 작가의 오프닝&클로징은 그간 라디오 방송에서 썼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한편한편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형태의 글들이지만 청취자와 동시대의 시간을 살면서, 매일매일 반복적인 일들의 형태로 글을 써야 하는 라디오 작가이기에 대중들과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생긴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매일매일 반복적인 일들을에 지쳐하는 마음이 라디오 작가들의 글에도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금 힘이 드신가요? 내일은 더 좋아질 거에요. 힘내세요."라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들의 글 속에서 "지금 힘이 드신가요? 나도 좀 힘이 드네요. 저만 힘든 것도, 당신만 힘든 것도 아니었네요. 그러니까 우리 힘내요."라는 약간은 자조적이면서 담담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이 책에서 재미난 점은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굿모닝"과 "굿나잇"으로 구성되어 있다. 굿모닝의 글들은 하루를 시작할 때, 굿나잇의 글들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읽으면 좋을 글들로 채워져 있다.


"생쥐가 쳇바퀴에 들어가서 끊임없이 발을 놀릴 때 벗어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저 안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요. 실험을 통해 그 이유를 분석해봤더니, 의외로 '재밌어서' 랍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하루의 일상이 패턴화 되고 반복적이 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만 느껴졌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도 재미있을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했다면 "네가 몰라서 그래"라고 치부해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글을 써야 하는 라디오작가의 이야기이기에 공감이 된다.


"음식의 맛을 더하는 비결 중 하나가 숙성이라고 하죠. … 숙성이 별건가요? 가만히 놔두는 거잖아요."


이 글을 읽을 땐 무릎을 탁 치게 만들기도 했다. 인생이라는게 별거 없구나. 때로는 그냥 나를 자유롭게 풀어두는 것이 필요하구나. 뭔가에 쫓기고 얽매여 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오프닝&클로징>에 실린 글들은 나와 다른 세상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글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나와 비슷하게 반복적인 일을 하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또다른 라디오청취자 같은 이들의 글이라는 점에서 공감도 되고 그래서 힐링도 되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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