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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과 무신론이 만나다 - 21세기 새로운 무신론의 도전에 답하다
필립 존슨 & 존 마크 레이놀즈 지음, 홍병룡 옮김 / 복있는사람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역사상 아마 가장 많은 이단과 가장 많은 종교적 도전을 받는 것은 기독교일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오직 기독교만이 진리라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이런 독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기독교에 대해서 사람들은 환영의 손길을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에 속한 사람들도 이런 진리를 알지 못하고 반박하려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영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사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문제"를 놓고 함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항상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의 중간점이 없기 때문에 서로 타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보통 인생에 대해서 3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잘 내릴 수 있으면 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우리는 어디서 왔느냐이며 두번째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며, 세번째는 우리는 어디로 가느냐이다. 하지만 유신론과 무신론은 이 3가지 질문 중에서 첫번째에서도 서로 합의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나머지 사안들은 이야기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가 두 개일 순 없다. 두 가지 모두가 똑같이 공존할 수 없다.
유신론과 무신론, 이 둘은 어떻게 보면 믿음의 영역에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 누구도 "태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세오경 중 하나인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쓴 것이지 직접 보고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윈이 진화의 첫 출발을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니다. 빅뱅이론이나 다른 무신론 진영의 주장도 확실한 증거는 없다. 여러가지 정황들과 분명하지는 않지만 여러 흔적들을 보고 종합해서 믿는 것이다.
<유신론과 무신론이 만나다>의 저자는 이런 맹점-유신론과 무신론이 한자리에 할 수 없는-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자리에 앉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스마트폰이 더 좋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관련이 있는, 인생의 모든 목적이 뒤바뀌어져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공격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변증법적 사고일지 모르겠다. 기독교만이 진리가 아니다라는 공격 속에서 성경과 여러 증거들을 통해 기독교만이 진리인 것을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변증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피지기'라는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내가 믿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대되는 의견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논점을 이해할 때에 제대로 된 증명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한 자리에 앉아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저자가 마지막에 언급했듯이 "인간은 논증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인생관에 따라 사는 존재"이다. 하지만 인생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런 논증을 통한 증명이기도 하다.
저자는 <유신론과 무신론이 만나다>라는 책을 통해서 기독교인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덮어놓고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증법적인 사고를 통해 내가 믿고 있는 믿음, 기독교가 믿고 있는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이다(물론 저자가 이런 변증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진 않지만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