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서 온 언어
미즈바야시 아키라 지음, 윤정임 옮김 / 1984Books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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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힘을 갖는다. 물리적 힘이 아닌, 글자가 갖는 힘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펜을 든 작가들의 '붓의 힘'은 역사 이래 계속 강조되어 왔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말의 힘'을 깨달으며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가지 않던가. 하지만 그 근간에는 모국어가 있다. 태어나서 처음 접하고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 모국어. 누구나 다 모국어가 친근하지만, 모국어와 다른 말의 경계선 속에서 살아가는 이가 있다.

<다른 곳에서 온 언어> 이 책은, 그 경계선에 발딛은 자의 타국어 헌사이다.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일본인이지만 프랑스어가 더 친근한, 일본인이자 프랑스인이다. 아이러니 하게 일본은 우리나라의 말을 없애고 정신을 일본화 시키려했지만, 이 일본인은 프랑스어의 자기잠식을 받아들인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프랑스어 프로그램을 녹음해서 테이프가 늘어날때까지 듣고, 몇 년간 계속되는 그 행위에도 그는 질리지 않는다. 이미 자신안에 자리잡은 프랑스어를 사랑했기에.

그 시작은 아버지였다. 교육을 향한 무제한적인 지원과, 그 당시 값비쌌던 소니 녹음기. 그리고 울리는 피가로의 결혼. 수잔나의 노래는 아키라의 귀를 울렸고, 계속되는 울림은 아키라를 프랑스로 유학가게 만들었다. 한 노래와 한 언어가 이렇게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당시 어지러웠던 일본의 시대. 우리나라의 근현대 처럼 일본 역시 어지러웠다. 전후 계속된 경기침체와 지식인들의 항변은 젊은이들이 정착하지 못하게 했고, 아키라는 그런 사회적 풍조에서 일본어의 건조함을 느끼게된다. 언어의 건조함이라니. 우리가 매일 쓰는 그 모국어에서 생동감을 잃은 것을 느낀 그에게 들려온 봉쥬르, 프랑스어는 얼마나 매력적이란 말인가.

서로의 역할때문에 연기를 하더라도, 그 연기가 명 연기가 아닌 값싼 촌극일지라도 프랑스인의 연극은 메말라가던 아키라의 영혼에 불을 지폈고,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갖는 매력으로 삶의 동기가 생겼다라. 그 얼마나 이질적이지만 매력적인가.

그래서일까. 이질적이서 오히려 정체성의 혼란이 올법도 한데 아키라의 여정은 혼란의 연속이 아니다. 흥미의 연속이다. 계속된 녹음, 늘어난 테이프, 프랑스로의 여행. '원어민 보다 더 원어민 같다'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는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어넘기는 여유를 갖는다. 그리고 그의 여정기, 찬사는 일방적이지 않다. 프랑스어를 향한 그의 열망과 애정이 녹아있는 그 글 자체로도 생동감을 갖는다. 아마, 프랑스어라는 '다른 곳에서 온 언어'가 그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했기 때문일까.

첫 이국어를 배울때를 기억한다. 영어야 워낙 모두가 강조하니 국어와 동급이었던 우리세대에게 고등학교 '제2외국어'시간은 인기있는 시간이었다. 배워보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는 설렘, 고등학교 그 팍팍한 시절에 느꼈던 두근거림과 열정. 동기들은 그런 열망으로 그 시간을 느꼈고, 관련된 매체들을 찾아봤다. 아키라의 청년시절이 우리와 같았을까.

언어, 인간의 정체성을 정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그 매체를 두고 아키라가 일본인이자 프랑스인으로써 살아가는 그 과정, 그리고 언어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되짚어 보고 싶은 자라면 정말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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