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샤 페이지터너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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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이 사라지는 것을 막는 것이 문학의 목표라고 믿었지만

정작 나 자신의 시간은 허비하고 있었다.

p.28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느낌이 그랬다. 문학시간에 배우는 문학의 목표는 '간접체험'이다. 주인공의 삶을 통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살게 한다. 하지만 아렐레의 삶은 어려웠다. 쉽게 접하지 못하는 유대인 문화, 거기에 독실한 랍비 아버지를 둔 주인공의 삶은 처음부터 어지러웠다. 하지만 활자 너머로 보는 나와 달리 그는 살아나간다. 학교를 그만둬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굴복하지 않는다. 펜과 종이가 있으면 그의 세계를 창조해내었고 그 옆에는 언제나 그를 동경해 주는 쇼샤가 있었다.


그들은 헤어졌지만 다시 만났다. 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성인으로 장성했지만 여전히 아이같은 여자 쇼샤. 아렐레는 자신의 일이 다시한번 어그러져도 쇼샤에 대한 마음을 놓지 않는다. 자신이 알고 있던 그 누구보다 자신의 세계를 받아주고 함께하기를 희망했던 여자 쇼샤. 그 둘의 인연은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는 않는다.


언제나 죽음을 논했던 그들의 인연은 결국 불안에 쌓여살던 소샤의 이른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쇼샤는 '사라지듯 갔다'. 아론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지인은 세상 무엇도 사라지듯 가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아론에게 쇼샤는 무엇일까? 아론의 발자취를 좇아 보면 그와 함께하고자 한 여자는 많았다. 공산주의자였던 도라, 사랑의 열정을 추구했던 셀리아, 아론에게 부와 명성을 줄 수 있었던 결혼 직전까지 갔던 베티. 그녀들이 아닌 쇼샤를 택한 건, 쇼샤가 아론에게 잊혀지지 않는 순수함과 본성의 집합 그 자체여서 그랬을까?


시대적 정황에서 불안했던 유대인에게, 종교에도 더이상 기대지 않는 주인공 아론에게 쇼샤는 단순한 첫사랑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쇼샤를 통해서 자신이 잊고 있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가 건네는 동경과 위로의 한마디에서 불안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고 살아나가려는 동기를 부여받은 것은 아닐까?


책의 제목은 쇼샤지만 쇼샤를 비롯한 많은 인물들에게 눈길이 갔다. 쇼샤가 순수의 결집체라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나름의 열정을 갖고 살아간다. 아론을 중심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건넸던 샘이나 하이믈, 셀리아 등 많은 이들은 불안한 시대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간다.


저자인 아이작 B.싱어는 실제 랍비의 아들로 태어나 전통적인 유대인 교육을 받았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살아남은 그에게 아론은 자신안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인 것 같았다. 많은 사건들과 흩날려 사라진 이들을 바라본 작가의 회의적인 시각이 아론을 통해서, 많은 이들의 불안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 아닐까.


결코 가벼운 소설은 아니다. 처음엔 읽다보면 무슨 말이지 싶다가도 이해도 안되고 갑갑하기도 하다. 하지만 읽다보면 빠져드는, 그들의 삶에서 읽는이의 삶의 존재의 이유를 묻게 한다. 하이믈의 말처럼, 그냥 사는 것은 없다. 삶을 살았고, 사랑을 했고, 희망도 가졌고, 자신과의 싸움을 한 우리는 존재한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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