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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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유명 신경외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환자들을 보며 써내려간 작품이다. 제목을 보고 소설인 줄 알았는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신경외과 환자들의 이야기였다. 올리버 색스는 오랜 시간 신경의학을 연구한 학자인 동시에 안면인식 장애를 겪는 환자였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올리버는 의사가 환자를 보는 시선을 넘어, 환자들의 삶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심도 있게 공감한다. 그 덕에 나도 읽는 내내 환자들의 삶에 빠져들어서 우리 삶에서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다.

 

 우리 삶에는 당연한 것들이 참 많다. 당장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500년 전만 해도,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특권층만이 누리는 권리였다. 더군다나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에도 여성들의 글쓰기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작가의 지위는 오랜 시간 남성들이 누려온 특권이었고, 여성들이 작가로써 자리를 차지하게 된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민주주의와 여성의 권리가 발달한 지금,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누구나 다 누릴 수 있어서인지, 우리는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 특별히 여기지 않는다. 글쓰기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우리가 삶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나'의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른쪽을 보지 못하는 여자, 사물의 형상을 파악하지 못하는 남자, 충동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 방금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기억, 몸의 감각, 시각, 일상 등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다. '나'를 느끼는 바탕이다. 그런 내가 사라졌을 때 삶이 어떻게 될까, 정체성을 구성하는 바탕은 무엇일까 기억일까 몸일까 영혼일까, 삶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리고 내가 너무 당연한 것이라 느꼈던 '나'조차도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기억, 지금 타자를 치고 있는 손이 감각, 생각하는대로 움직이는 몸 등이 내 안에 모두 존재하기에 나는 '나'일 수 있는 거였다.

 

 어린 시절, 나는 경기를 일으킨 적이 있다. 엄마 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앞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발에서 쥐가 났다. 뭐지?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쥐는 발을 타고 무릎까지 올라왔고 불길함을 느끼기도 전에 온 몸을 뒤덮었다. 그건 아주 이상한 느낌이었다. 내 몸이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않는 기분.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몸이 뒤집히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그 날 그렇게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고, 다행히 나는 무사히 깨어났다. 엄마 말로는 당시 나는 중환자실에 있었고 의사선생님께서 아이가 이대로 깨어나지 못하면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한다고 그랬단다. 책을 읽으면서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 말, 행동을 할 수 없는 답답한 느낌을 떠올리며 내가 '나'일 수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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