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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한형조 지음 / 여시아문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벽암록>>이 호랑이라면 <<무문관>>은 설표雪豹다. <<무문관>>은 그 정도로 몸매와 몸피, 몸집이 단아하다. 특히, 한형조 선생이 강해하신 이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는 아주 ‘현대적으로’ 잘 읽히면서, 오히려 선사 같은 기품까지 느껴진다.
내가 살아오면서 읽은 책 가운데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탄성을 터뜨리게 한 책은 몇 안 된다. 한데 한형조 선생의 <<무문관>>이 그 책들 중 하나다. 이 책과 함께한 장장 한 달에 이르는 독서시절에, 잡식하느라 변비를 앓던 머릿속이 탁 트이고 눈앞이 환해져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내가 다른 은하로 떠나게 될 때 이 책만은 반드시 챙겨 가리라.
百尺竿頭須進步백척간두수진보.
백 척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쉬 눌러앉고자 하는 나를 늘 추동推動케 하는 문장이다. 아흔아홉 번씩이나 다시 보아도 발끝이 다 찌릿찌릿하다. 사는 게 벽 같을 때 아무 데나 펼쳐 들고 읽기에 그만인 책,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 한형조 선생이 이런 책을 더도 말도 ‘딱’ 한 권만 더 펴내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