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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촌여전 - 열다섯 겹의 여성 로컬 라이프
상주함께걷는여성들 기획 / 지식의편집 / 2024년 12월
평점 :
<촌천여전>에 밑줄 긋기- 김효근
전미희 선생님(호미 끝 세상)
“부드러운 흙을 호미로 살살 파내 골을 내고 당근 씨 솔솔 뿌리다 절로 꿀리는 무릎, 호미 농사라고 비웃어도 호미만큼 가장 낮은 자세로 자연을 접하는 기구가 또 어디 있으랴? 오늘도 모든 씨앗을 품은 엄마 같은 흙을 만지며 그동안 잊었던 감사기도를 드린다.”
노니 선생님(보통 날의 서점)
“나도 취향이 담긴 공간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분 좋은 인사였다. ”심미적 자극을 받을 만한 공간이 없다고 하시지만, 여긴 원형 그대로의 자연이 있잖아요.“ 진심이지만 뻔한 대답에 손님이 조금 감탄한 듯 대답했다. ”와! 상주가 누군가에겐 뭔가 ‘있는 곳’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저에겐 아무것도 ‘없는 곳’이거든요.“
곽경미 선생님(작아야 보이는 것도 있다)
”일찍 오신 선생님들과 함께 아이들을 맞으러 나간다. 학교 밖 버스 승강장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승강장 옆은 논이다. 그루터기만 있는 논에 어느새 물이 들어오고, 벼가 자라 푸르르다 누렇게 익은 가을이 오고, 눈으로 하얗게 덮이는 걸 보면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버스가 도착하고 아이들이 내린다. “안녕?”, “안녕하세요!”, “오늘 못 보던 파란 운동화 신었네. 멋지다!”, “네! 어제 누나가 사 왔어요.”, “서울서 직장 다니는 누나가 어제 왔구나. 좋았겠다.” A는 누나가 와서 저녁에 외식한 것부터 오만가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학교로 들어오는 이 시간은 일과 중 가장 소중하고 기분 좋은 시간이다. ‘B가 오늘 기분이 안 좋네. 집에 무슨 일 있나?’, ‘어제 수학시험 때문에 속상해하던 C가 기운을 차렸네’ 아이읃ㄹ의 표정을 마음에 메모한다.“
황진영 선생님(논 피자 고양이)
”삽으로 땅을 파 그 작은 몸을 누이고 천천히 흙으로 덮으며 너무 짧은 생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애써 참지 않고 소리내 울어도 되는 것. 이곳에서의 삶이 허락한 시간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상주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때문에 순간순간 나는 더 큰 행복과 더 깊은 슬픔을 느낀다. 이것도 축복이다.“
김주애 선생님(지역이란 오래된 이야기)
어느 날 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지역에 사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여기는 없는 것이 많아서 참 좋아요.“
무슨 말인가 싶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없다는 건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거잖아요.“
그 말이 심장을 쿵 울렸다.
사실 지역은 없는 것이 많고 도시보다 불편해서 견디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은 내 생각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아 그렇구나! 없다는 건 실패와는 다른 거구나!’”
파도 선생님(작은 실험의 기록)
“가장 자주 하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조금 다른’이라는 수식이 붙는 나의 삶. 그런 특별한 수식어가 방해될 때가 있었다. 따로 튀지 않고 다른 이들과 비슷하게 고만고만한 고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동시에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따라왔다. 내 삶의 방식에 ‘조금 다른’이라는 수식이 붙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때도 분명 있었다.
또 내 삶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남의 삶을 부정하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내가 무언가 잘못 선택한 것 같고 후회가 될 때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 비교라는 잘못된 도구를 사용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놓친 어린 생각이었다. 누군가 나와 내 길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때가 가장 싫으면서 결국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나의 다양한 우울을 잠재우는 방법은 쓰는 것이었다. 마구 쓰다 보면 비로소 가벼워진 내 모습이 보였고 가벼워진 나는 스스로에게 거리를 두고 조금 떨어져서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우울과 고민은 그제야 작아지고 덜 아팠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나를 위해서 썼다.”
변영진 선생님(소도시의 온도)
“대대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곳인 만큼 상주에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길러내는 땅의 느낌이 있다. 관광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그곳에 깃들여 사는 사람과 생활 속 자연이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어딜 가나 밭이고 계절마다 변화하는 모습들이 있다. 봄이 되어 갈라놓은 땅의 부드러움, 여름의 뜨거움 속에 익어가는 곡식들, 가을이면 펼쳐지는 황금빛 들판과 푸근한 감의 빛깔들, 쉼과 기다림을 알려주는 겨울 풍경들. 같은 자연이라도 지역마다 다양한데, 상주의 자연은 무심하면서도 성실하게 생명을 만들어온 아주 오래된 흐름을 느끼게 한다. 상주의 자연이 주는 큰 선물의 하나는 음식이다. 시골은 바로 지역에서 길러내는 것들을 먹을 수 있어서 과일도 나무도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그냥 신선하고 맛이 좋다, 그런 차원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늘 함께하는 산과 들의 음식들을 받아먹고 사는 느낌이랄까? 마트나 식당에서 다양하게 잘 차려지 음식을 사 먹는 것과는 다른 만족감이다.”
박현정 선생님(더도 덜도 말고 오늘처럼)
“우리 부부는 늘 ‘아이들이 우리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아이들을 통해서 보았고, 엄마도 아빠도 처음인 우리가 이렇게 예쁘고 건강하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던 건 우리의 힘이 아닌 아이들의 힘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의 기준과 시선으로 아이들을 묶지 않고 온전한 한 생명체로 인정하며 존중하는 것! 우리 스승들이 알려준 가르침이었다. 우리는 이미 두 명의 스승을 모시고 있으나 스승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이제 한 명의 스승을 더 모시게 되었으니 더 많은 걸 배우겠지. 그런 기대와 함께 우리는 5인 가족이 되었다.”
정숙정 선생님(음식 할매 연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되뇌었다. 밥 짓느라 손이 마르지 않는 엄마, 그러면서도 아무에게나 밥 퍼주는 엄마, 그렇게 베풀어도 인사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엄마 모습을 닮기 싫었다. 우리 집 밥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숟가락만 들면 모두가 식구였다. 한번은 허름한 행색의 어른 한 분이 안방에 쑥 들어와 앉았다. 엄마는 김이 나는 쌀밥 한 대접과 고갱이만 뚝 자른 김치 한 포기를 바가지에 담아 방에 넣어주었다. 낯선 어른이 커다란 밥숟가락에 벌건 양념이 떨어지는 김치를 척 걸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대접을 먹어치웠다. 그분은 아무 연고도 없는 그저 매우 허기진 사람이었다.”
김혜련 선생님(함꼐하는 공부는 힘이 세다)
“공부에서 글쓰기와 듣기는 필수 요소다. 공부가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언어가 생겨야 한다. 모든 공부의 종착점이 글쓰기라고 하는 이유다. 씀으로써 생각이 정리되고, 새롭게 탐구되고, 확장된다. 글쓰기를 하려면 텍스트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내 경험으로는 책 한 권을 세 번은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건성으로 한 번 읽고 다 안다고 생각하면, 공부를 통해 삶의 변화를 얻기 어렵다. 대충 아는 것으로는 자기 변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깊은 경청! 깊은 경청은 현대인인 우리에게 몹시 부족한 자질이기도 하다. 듣고 싶은 것만 듣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골몰하면서 제대로 듣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이야기를 진실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구성원의 이야기를 ‘깊이’ 경청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야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거나 느끼게 되고, 타인을 통해 배우게 된다. 자칫하면 공부가 내가 아는 것만을 계속 확인하면서 나의 세계관에 갇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남수영 선생님(기억이라는 이름의 축제)
“백원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업이 따로 있고, 가능한 만큼 자신의 시간과 수고를 내놓는 사람들이다. 문화기획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축제를 기획하는 전문가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유명한 가수를 초청하는 지역축제들에 비하면 어설프기 짝이 없고 부족한 것도 많다. 의견을 모아서 실행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점에 불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백원장의 특성이고, 우리가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말을의 축제를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지역의 화려한 플리마켓이나 행사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즐겁고 길게 지속하는 것을 더 큰 가치로 삼고 우리의 속도와 우리의 방식으로 함께하기를 바란다.”
정경해 선생님(공감이라는 치유)
“아픔이 없는 삶이 있을까. 수강생들은 각자 자시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회한에 젖었다. 일상에서 살짝 비껴있는 것 같지만 불쑥불쑥 나타나 정신을 헤집는 상처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 또는 젊은 시절부터 쌓인 아픔은 환갑이 넘어도 잊히지 않았다. 수강생들은 하루아침에 해소될 문자가 아니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럴 때도 뜰하는 잠시 눈빛이 흔들렸을 뿐 별말이 없었다. 끝내 마음을 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급해하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10강에 이르렀다.”
우경화 선생님(지금 우리가 걷는 한 걸음)
“나는 요즘 앎을 가져다준 암을 마주하며 내 안의 의사 선생님을 제대로 만나는 중이다. 당뇨 합병증을 팔 년을 고생하시다 환갑도 되기도 전에 가버린 아빠는 건강하게 제대로 잘 사는 것을 고민하게 해주셨고, 간암 발병으로 함께하게 된 엄마와의 시간들은 제대로 잘 죽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방법들을 알려줘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인연대로, 생긴 모양대로 살다 간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사고로 일찍 떠난 형부와 십오 년 복막투석을 하다 얼마 전 훌쩍 가버린 언니, 그리고 앞으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다 갈 남은 가족과 지인들. 세상 모두가 그렇게 우연같은 필연인 자신의 길을 살아내고 때가 되면 길을 떠난다. 나의 시간도 누가 뭐라 한들 내 생긴 대로, 인연대로 구르다 멈출 테니 다를 것도 없다. 내가 어떤 것을 깨우친들 내 생각만이 정답이 아님을 늘 기억하고, 지그 이 순간의 나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박환순 선생님(귀농의 시간)
“하기 싫은 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싫은 마음 너머 여러 마음을 경험하게 된다. 아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마음을 만나게 되면서, 행복이라는 것은 좋고 싫고의 마음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좋고 싫다는 마음의 고개를 몇 번씩이나 넘다 보면, 순간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경험하게 된다. 나이를 먹고 수많은 시간의 고개를 넘어서, 좋고 싫고와 상관없이 그냥 하는 마음이 되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먼 시간을 지나다 보면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머리로 지식으로 살기 보다는 삶의 기 시간이 주는 지혜를 배우고 익히게 된다. 그래서 엄마처럼 그냥 하는 일이 많아진다. 더워도, 힘들어도, 하기 싫어도, 그런 마음에 출렁이지 않고 그냥 하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내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인가 보다.”
김정열 선생님(봉강의 사계)
“봄은 나물로 온다. 찬 겨울바람이 채 가시기 전이지만 정월 대보름만 지나면 괜히 마음이 들떠 호미 들고 텅 빈 들판이라도 한 바퀴 돌고 싶어진다. 땅속의 작은 틈에서 조금씩 조금씩 올라오는 바람, 봄바람 때문이다. 아직 녹지 않은 땅이지만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살피면 자줏빛 냉이가 더러더러 보인다. “앗싸, 봄이다!”
봄이 되면 어깨에 농사일만 주렁주렁 달리지만 그래도 봄이 좋다. 봄이 되면 농민이 살아난다. 농민은 땅이 춤출 때 살아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맛있는 나의 봄은 1991년 시작되었다. 처음 상주에 내려온 그해 4월, 내 손으로 처음 쑥을 뜯었다. 쑥이 어떻게 생긴지도 잘 몰랐던 터라 얹혀살던 농민회장 사모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봄을 배웠다. 쑥은 양지쪽부터 올라오는데 마을 누구네 논둑에 가면 제일 빨리 올라온다, 쑥을 캐면 바로 다듬어 바구니에 넣어야 뒷일거리가 적다, 쑥국을 끓일 때는 마지막에 밀가루를 개어 넣어야 빡빡하니 맛있다 등 쑥에 대한 모든 것을 그분에게 배웠다. 삼십 년도 더 지난 지금, 내가 그분 나이가 되었고 그분은 팔십 넘은 할머니가 되셨지만 지금도 여진히 나의 봄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