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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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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겨울은 등을 맞대고 앉았다.

도스토예프스키 《악령》 이후의 심신을 달래기 위한 책이었다. 악령 보다 더한 인간의 실체를 마주하고 황폐해진 마음을 위로한 책이었다. 이 책만큼 작가의 의도를 잘 전달해놓은 편집자의 소개가 있을까 싶은 책이었다. 읽는 동안 포~옥 가라앉아 잔잔해진 마음에, 봄볕이 들었다.

무더위가 한창인 홀트는 대드 루이스의 남은 삶이다. 생의 굵직굵직한 기억들이 시큰한 겨울로 더운 마음에 내린다. 어쩌면 생의 겨울과도 같은 순간들이, 내 더운 숨 속에 켜켜이 베어있는 것이 삶의 축복이겠거니.. 멀어져가는 겨울과 함께 시린 기억도 덮어지겠거니..ㆍ

싸리눈 앉은 뺨이 시큰하던 일곱해 전 겨울, 동생이 입대하던 날.. 누야는 말했었다. "적당히, 적당히만 해." "중간만 하면 된데. 잘한다고 나서지도 말고, 못한다고 숨지도 말고. 적당히."

'적당히'

때로 가장 어려운 것은 완급을 조절하는 일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일이나, 드러내는 일. 그 둘은 모두 어렵다.

이럴 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인간은 기어코 상대를 할퀴고 망령된 것들은 함부로 내뱉어 더럽혀 놓는다. 주어진 시간, 흔하게는 팔십번의 여름.. 많건 적건 '살았다'. 그리고 살아갈 것이다. 여름과 겨울이 등을 맞대고 앉은 것처럼.. 잔잔하게, 적당히 때로는 격하게.


📖 [내가 저 문으로 얼마나 수없이 드나들었는지. 오십오 년 동안 일주일에 여섯 번씩 오십이 주였소. 한 사람의 평생이나 다름없지.]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게 다예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다고요.] [알고보면 많은 일들이 고르지 않은 축복이지요.] [이 특별한 날 이 특별한 장소에 우리가 함께 있도록 해주신 데 대해서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뭘 하실 생각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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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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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게 깊어가는 겨울이다.

이 책은 내게 이것의 존재를 알게해준 이와 꼭 닮았다. 간단한 산수문제로 그녀를 설명해 본다. 그녀(=)는 겨울눈에서 차가움을 (-)빼고 따스한 마음을 (+)더하면 남을 보슬보슬한 감촉을 가진 사람이다. 손 끝에 오래도록 올려두고픈 솜사탕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실은 시중에 출간된 에세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부러 읽지 않는다. 나는 <에세이를 쓴다는 건, '나'라는 구의 중심에 서는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구가 아닌 자가 써낸 글에는 첨단이 있어 어쩌다 만난 문장에 마음을 베이고 만다. 보이는 곳 어디였으면 내 연고라도 담뿍 발라 달래주련만.. 남은 것은 흔적이 없어 달랠 수 없는 상흔이다.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는, 내게 이 책을 빌려준 그녀와 꼭 닮았다. "내 땅에서 너는 안전하다. 안심해라 얘야." 문장 하나가, 눈맟춤에 미소 짓는다. 낱말 하나가, 향을 안고 다가온다.

글이 가진 힘은 그런 것이다. 짧은 눈맞춤에도 온기를, 때론 독기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며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세우지 않고도 마음 한구석을 물들이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 향기가, 때론 그 온기가 너의 마음을 반짝이게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에세이를 쓴다는 건, 그런 나를 돌보아 너도 돌보는 일이다. 삶을 살아낸다는 건, 나의 것을 너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살포시 건네주는 일이다. 내 말이 온통 마음을 찌르고 있으니, 모난 마음은 모난 말만 뱉어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의 소중한 아이에게 상흔을 남겨 놓으면서..

희게, 더 깊어가는 겨울이다. 어느 시에서 날아 온 '나비' 하나가 홀연히 마음을 달래준다. 그녀가 건네준 작은 책 하나가 지난 상흔 위에 햇살 담은 눈을 덮어준다.

이제 되었다. 나는 다시 내 삶을 살아낼 수 있겠다.




[어둠 없이는 빛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똑바로 응시하지 않는 한, 희망의 본질에서 빛나고 있는 삶의 비밀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는다.] 62p. [나는 누군가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 살아가는 것보다 훌륭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 무엇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29p. [그리고 그 삶들은 누구 하나 칭찬해주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하게 완결되어 빛난다.] 33p.



《 #약간의거리를둔다 》 #소노아야코 #에세이 2016 #도서출판리수 #책 #도서 #독서 #후기 #책읽기 #아그레아블독서모임 #북클럽 #북리뷰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book #bookstagram #review #예주공방 #사진 #글 #20170120 #생각 #쓰기 YEJU @caecili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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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먼트 - 타고난 재능과 열정이 만나는 지점 켄 로빈슨 엘리먼트 시리즈
켄 로빈슨.루 애로니카 지음, 정미나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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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먼트]는 교육이 아닌 '교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인간은 변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살아가며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변화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그의 본질적인 부분은 결국 변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자기개발서의 꾸준한 인기가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변하지 않는다면 더욱 '애써' 변해야 한다.

한 개인의 변화로 전체의 큰 그림을 바꾼다는 것.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고, 내 이름은 지구의 역사에 자음 하나 남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하고 싶다.' 변화, 그리고 성장.
엘리먼트는 그러한 내게 '발견'의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46. 엘리먼트는 타고난 소질과 개인의 열정이 만나는 지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는 것이다.]

[40. 교육은 타고난 재능을 키워주고 세상을 헤쳐갈 능력을 갖추어 주어야 하는 제도다.]
교육의 큰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는 계속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한 개인의 변화는 얼마나 이루어져 왔을까?

나부터 바꿔야 한다.

[201. 자기 자신이 되려는 강한 의지는 불굴의 힘을 발휘한다.]
나는 팔십세까지 자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생의 부조리한 과제들을 마주하며 맹렬히 고민하고 싶었다. 마침표가 있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저 산의 바위보다 짧은 목숨이기에 - 나는 정면승부할 도리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 만남이 참으로 반갑다.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 배워야 한다.

내가 되고 있는 어른을 고백하자면 - 이들은 판단하고, 구별짓기를 좋아한다. 닫혀가는 눈으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함부로 재단하려 든다. 엘리먼트를 '발견'해야 한다는 접근만으로도 이 책이 내게 호감을 불러 일으켰던 이유는, 닫혀가는 하루하루에 대한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먼저 살아 온 선배들이 좀 더 넓게 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배우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훈련 해야한다. 끊임없이.

[45. 미래에 대비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최대한 유연하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도록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그저 읽는 것으로는 놓치고 싶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모임의 한 분께서 활동 계획표와 참고자료 소책자까지 만들어 주셨기에, 올 해 연말은 나의 동질집단에서 - 엘리먼트 실천과 함께 마무리 하게 될 것이다.

실천편에서 나의 '발견'과 마주할 생각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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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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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를 숨겨줘요. 다들 태연히 내 인생에 간섭해. 나는 그저 조용히 숨을 쉬고 싶을 뿐이야. 137.]

책을 읽는 내내 유쾌한 감탄인지, 불편한 공감인지 모를 탄성을 질렀다. 최근 체감하고 있는 주제와 통해 있어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었는데도.. 사람들은 참, 구별짓기 좋아한다. 마음으로 하는 일을 마음을 가진 사람끼리 몰라준다. 어쩌면 알아줄 생각조차 없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받아들이는 중이다. [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인간을 재판하는 게 취미예요. 146.] 그리고 나 역시.. 나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간이지 하는 생각에 혐오감이 밀려오기도 하고... 사회의 '이물질'인 주인공들은 그렇게 내게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했더랬다.

인간관계에 대해 크게 느끼는 바도 없고, <너는 너 나는 나>하는 생각도 딱히 없었는데, 어느새 나도 '흙발'을 가진 인간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지 못할 때가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로 변해가는 비겁한 나를 만나기도 한다. [이대로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건가요? 그건 왜죠? 97.] 때로는 드러내 묻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다.
애써 좁히지 않아도 좋을 <간격>이 있다.

하지만 종종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게 민폐였고, 그 오만한 태도가 성가시게 느껴졌다. 너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초등학교 때처럼 상대를 삽으로 때려서 그러지 못하게 해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70.] 규정하고 구별짓고, 가르고 나누고.. 개인적으로 올해 참 많이도 울었는데, 덕분에 인간을 좀 더 알게 되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르다.
머리로 아는 일과 마음으로 아는 일이 다른 것처럼.

다행스럽게도 게이코나 시라하와는 달리, 내 주변에는 <다르다>의 의미를 마음으로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오랫동안 찾아왔던 마음들이 모여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곳이 있다. 게이코의 '편의점 소리'처럼, 내게도 마음에 들어앉은 애틋한 목소리들이 있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거의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5.] 그들이 함께 스며들어 나를 만들어 간다. 물들어도, 물들여도 좋을 나이기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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