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심리학 - 생각하고 기억하고 결정하는, 우리 뇌와 마음의 작동 방식
존 폴 민다 지음, 노태복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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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추천 못합니다 :)

제 리뷰를 늘 챙겨 읽고 참고해 주시는 분은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아니라 제 북친님들이신데, 어쭙잖게 포장해서 그분들의 선택에 혼선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명확한 이유를 밝히겠습니다. 저처럼 반드시 이 책을 읽어내고 싶은 분, 이 책이 꼭 필요한 분이 계실 테니까요~

이하 본문에서는 비추천과 추천 이유를 각각 밝히고, 책에 대한 소개와 각 장에 대한 주제어 요약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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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s for reading

이 책은 맨 마지막 장, 〔나오는 글〕부터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가혹하게도 저자가 마지막 글에 이 책을 깔끔하게 요약합니다. 이 글이 시작이었다면, 책에 대한 저의 소감은 완벽히 달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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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은 주관적인 두 가지 이유입니다.

❶ 첫 페이지부터 비문이 있습니다([댓글 1]). 이론을 이해하는 데 전혀 지장 없는 부분이지만, 흰 셔츠에 튄 붉은 소스 자국이 자기 눈에만 크게 보이는 상황처럼, 이때부터 모든 문장을 샅샅이 점검하게 되어서 뇌가 뚝딱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❷ 저자가 초반에 정의보다 비유와 예시로 모든 개념을 설명하는데. ‘발단-전개’가 너무 길어서 어떤 개념을 말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냈는지 헷갈릴 때가 있었습니다. ‘발단-----전개-결말’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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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은 이 책이 결국 위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플러스알파까지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❶의 경우 제 뇌가 왜 뚝딱 거렸는지 명쾌한 해답이 164-169쪽 〔주의 용량의 한계〕에 실려 있었습니다. 이유를 깨닫고 집착에서 해방되었고, 독서가 수월해졌죠~ 집중을 요구하는 항목이 〔언어적-언어적 지각〕으로 동일해서 책 내용에 대한 이해에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❷의 경우 후반부로 갈수록 비유와 예시보다 명확한 개념 정의로 서술하는 비중이 높아져서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❸ 이 책에 진짜… 전부 다 있습니다. 비전공자에게 가혹할 정도로 인지과학개론에서 심화까지 정리되어 있고, 각 장의 심화 학습(특히 마지막 13장)은 관련서로 확장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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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폴 민다의 <인지심리학>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지, 그 작동방식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인지과학서입니다. 인지심리학자인 저자가 〔일반인이 읽을 만한 책을 쓰고 싶었고,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집필한 이유〕라고 밝힌 것처럼 상세한 비유와 예시로 인간의 사고 체계를 탐구하는 데요.

#인지심리학

1장에서 인지심리학의 역사를 소개하고, 2-3장에서 인지과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총체적인 뇌구조 이해와 시신경계를 중심으로 감각-지각의 연결성을 탐구합니다(이번 기말(=2차 지필) 중3 과학 시험 범위임). 1-3장은 전체 개괄로 보시면 됩니다.

4장은 주의력(멀티태스킹)에 대한 파트인데,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한 교육적 조언의 과학적 증거 필요할 때 참고하시면 좋을 부분입니다.

5-7장은 인간의 기억을 집중 탐구합니다. 기억이 불완전한 이유부터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을 이해하고, 효과적인 기억법을 줍줍할 수 있는데 기대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은 아닙니다.

8-9장은 사고의 정보 구성법과 언어 활용법을 소개하며, 2장의 정보의 흐름과 연결된 사고 체계를 설명합니다. 9장에서 설명한 언어의 유연성과 가변성은 5장의 기억과도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확장되는 파트예요~

10장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맛보기로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이 등장하면서 흥미를 깨우고,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인지구조 협업 관계를 설명해요. 즉흥적인 애(시스템 1)와 몹시 신중한 애(시스템 2), 둘의 이야기라 무척 재밌으실 겁니다.

11-12장은 귀납추론과 연역추론에 대한 심화학습 파트로, 두 개념 확실히 잡고 싶으시다면 해당 챕터에서 해결하실 수 있어요~ 마지막 13장은 의사결정 단계와 과정을 확률과 이론에 근거해 소개합니다. 11-13장은 훨씬 이론적이어서 어렵지만 초반 비유보다 깔끔하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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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일을 지켰다가는 잔인한(?) 후기가 될 것 같아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꼼꼼하게 샅샅이 읽고 쓰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자가 말한 ‘일반인’ 중에서도 문해력 한계를 가진 독자인 저로서는 ‘독서’를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인지과학 백과사전’임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도서제공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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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전정신이 생기는 글입니다.. 오히려 읽어보고싶은느낌
 
피나 바우쉬 - 끝나지 않을 몸짓 현대 예술의 거장
마리온 마이어 지음, 이준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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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찾던 ‘덕업일치한 프로 일잘러’의 세계를 목격했습니다.

피나 바우쉬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신 분도 유튜브에서 ‘피나 바우쉬’ 관련 영상을 하나 찾아보시면 그녀에 대해 궁금해지실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이 어디서 오는지, 탄츠테아터가 보여주는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마리온 마이어의 <피나 바우쉬> 평전입니다.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을 아우르며 독자에게 그들의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신간인데요. 본문 분량은 300쪽이지만, 양쪽에 본문이 있는 게 어색할 정도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풍부한 사진 자료가 실려 있어서 열아홉 챕터의 이야기가 금세 흘러가 버리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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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바우쉬의 삶의 궤적을 생애의 시간 순서에 맞게, 또한 작품의 진행 순서에 맞게 소개한 책인데요. 앞서 ‘덕업일치’라는 표현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일(춤)이 곧 삶이었던 사람이었기에 작품 세계가 구성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 자체가 곧 그녀 자체를 소개하는 일이어서 가능한 구조였다고 생각합니다.

창작 과정, 무대 구성, 비하인드 스토리, 안무가(피나)의 철학 등 저널리스트였던 저자의 치밀한 분석과 방대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기술하는 방식에 감탄하며 읽으실 수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피나 바우쉬가 했던 말들을 절묘하게 치고 빠지며 배치한 기술에 감탄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잘 재구성하면, 자기개발서 성공 스토리 한 권 뚝딱 나올 것 같아요!

“그래, ‘일’은 이렇게 하는 거지!”

감탄한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처럼 일하라는 건 너무 가혹(?)한 것 같아서, 그녀가 작업하는 방식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치환해서 읽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럼 분명,

“그래, ‘삶’은 이렇게 사는 거지!”

싶은 포인트로 와 닿으실 것 같아요~ ‘하얗게 불태웠다’는 유명한 장면은 피나 바우쉬가 가져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녀와 함께 작업한 수많은 무용수(관계자 포함)들을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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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갈수록 이건 피나 바우쉬 한 개인이 아니라,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모든 무용수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탄츠테아터(Tanztheater)’는 무용(Tanz)과 연극(Theater)의 합성어로, 춤을 기본 소통 수단으로 삼지만 기존에 공연되던 고전 발레 형식과 달리 무용수가 대사를 하거나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일상의 소도구를 활용하는 등 연극적 무대를 실현하는 극무용을 뜻합니다. 이 형식의 시작과 중심에 ‘피나 바우쉬’가 있고요~

저자가 〔들어가는 글〕에서 피나 바우쉬가 〔보편적인 인간애로 지구 어디에서나 이해되는 무용언어를 개발하고 문화대사로서 수많은 나라에 전했다(44쪽)〕, 〔안무가는 주연과 조연을 구분하지 않았다. 모두 똑같이 중요했다. (…) 피나 바우쉬의 무용수들은 각자 개성을 가지고 들어온다(48쪽)〕고 말한 부분이 있는데요. 사소한 지점이지만 이들의 작업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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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식(또는 양식) 그 자체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작업이 탄츠테아터의 세계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제가 문자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처럼, 무용언어를 통해 그것을 실현한다는 피나 바우쉬의 이야기가 너무도 절절하게 와 닿았어요.

그것을 그렇게 하도록 이끄는 ‘동기’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탐구하는 정열도 매력적이고, 무용수 각각에게 주체적 작업이 가능하도록 의견을 끌어내고 무대를 구성하는 방식도 존경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힐난에 무너지지 않고 대중에게 이해될 때까지 묵묵히 자기 작업을 이어간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무대 위의 사람들을 인격체로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저 무용수만이 아니라요. (…) 나는 그들이 인간으로 바라봐졌으면 좋겠습니다. 춤추는 인간으로요(265쪽).〕. 자세한 건 부록에 실린 조 앤 엔디콧의 인터뷰(319쪽)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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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제가 그녀에게 끌렸던 결정적 이유를 발견합니다. 예술이 그저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만 향유하는 장르’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의 열정 그 자체가 우리 모두가 살아내고 있는 예술이라는 점을 피나 바우쉬의 삶을 통해 재확인 했습니다.

덧, 〔옮긴이의 글〕은 가장 마지막에 읽으시면 어떨까요? (순서대로 읽다가 독서 포기할 뻔 함요. 넘 어렵💦)

#도서제공 #을유문화사
#피나바우쉬 #무용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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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굉장한 세계 - 경이로운 동물의 감각, 우리 주위의 숨겨진 세계를 드러내다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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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n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되면 찰떡일 것 같습니다.

저자 에드 용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저널리스트임과 동시에, 탁월한 스토리텔러입니다.

최근 읽은 과학서의 저자들 모두 입담이 좋아 놀랐지만(‘과학이 이렇게 재밌었어?!’ 하고요), 재치에 있어서만큼은 에드 용이 탑이었어요~ 괄호 안의 작은 글씨나 주석으로 달아놓은 표현들이 위트 넘쳐서, 600P CLUB 미션으로 정해진 분량을 추월해서 읽은 날도 있었습니다.

표지 그림이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다채로운 동물들의 감각 기관이 경험하는 세계를 묘사해 보여줍니다. 서술은 흥미로운 사례 위주로 스토리텔링하여 약간의 문학적 상상력만 동원하면 충분히 그려봄직한 동물들의 감각 경험을 그려내는데요. 이에 덧붙여 심화 개념이 등장할 때는 하단에 깨알 같은 주석으로 과학적 배경지식을 첨언하는 구조입니다.

최신 현대생태학의 기초에서 심화까지 단 한 권으로 섭렵할 수 있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독자는 재미난 동화 한 편을 듣는 것처럼 지구 곳곳을 상상 실험으로 여행합니다. 하늘, 땅, 바다의 심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감각 풍경을 만나게 되죠. 물론 인간은 결코 느낄 수 없는(또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온도, 구조, 오감각의 세계가 존재하지만 그런 한계를 고려한 친절한 서술 덕분에 오히려 부담 없이 상상하기 좋습니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다면 그런 한계를 어떻게 표현해서 보여줄까 궁금해서 영상물로 제작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600쪽 가까운 도서를 대중적으로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챕터별로 소개하는 감각 기관과 관련 영상이 함께 있다면 따로 떼어 추천하기 좋을 것 같거든요~

1934년 야콥 폰 윅스퀼이 발표한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움벨트(Umwelt, 환경세계)’라는 개념을 통해 기존에 팽배하던 동물 기계론 사상에 도전했습니다.

‘가장 복잡한 동물 주체와 마찬가지로 가장 단순한 동물 주체’ 역시, 다시 말해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 주체 전부는 가장 완벽하게 그들의 환경에 맞게 조정’하고 있으며, 각자에게는 그에 맞는 환경세계가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은 ‘진드기’의 환경세계를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죠.

이를 이어 받아 에드 용은 집요한 관찰과 따스한 시선으로 발견한 동물 주체의 세계를 인간 너머의 영역 그대로 이어주려 노력합니다. 5장 ‘열’ 챕터에서는 윅스퀼이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현대 연구 결과로 수정해 주기도 해요.

〔환경세계 개념의 창지자신 야콥 폰 윅스퀼은, 진드기가 냄새를 통해 숙주를 추적하고 온도를 사용해 맨살에 내려앉았는지 여부를 확인한다고 썼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 아니다(231p).〕 냄새가 아닌 열 감지 기능으로 숙주를 찾아낸다는 발견을 통해 말이에요~

4장 ‘통증’에서는 〔한쪽 팔을 다친 오징어가 마치 온몸이 아픈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 “그들은 부상을 입을 경우 온몸이 과민해져요.”〕라는 문단을 만나 뜨끔했습니다. 오징어회를 먹지는 못해도 본 적은 있어서, (지나친 의인화를 경계하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숙연해졌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버티기 위해 동면하는 땅다람쥐, 소리와 전기라는 환상의 손을 뻗어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돌고래와 전기어들. 우주에서뿐만 아니라, 지구 안에서도 인간은 먼지에 불과하구나 하는 경외감에 휩싸였습니다. 흥미진진하면서도 겸손해지는 세계 경험이었어요.

독서로 얻는 간접 체험이 다양한 감각 세계로 전이되면서, 동물 주체 각자의 환경세계를 살아내는 기술이 인간의 삶에 적용해 볼 만한 아이디어로 치환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언어로 완전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여전히 존재한다(407p). (…) 참을성 있는 관찰을 통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통해, 과학적 방법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기심과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노력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해야 하며,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선물이다(532p).〕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 주체가 서로의 환경세계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날이 매일 더 아름답기를, 그런 세상에 관심 있는 독자님들께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도서제공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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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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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조지 오웰, 한나 아렌트는 제가 좋아하는 ‘정치적 글쓰기 3인방’입니다. ‘정치적 글쓰기에 버지니아 울프를?’하고 갸우뚱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요. 「3기니」를 읽어보신다면 이내 끄덕끄덕하게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울프의 문장은 오웰과 아렌트의 문장(또는 주장)에 비해 보송보송한 느낌이지만, 순간 번뜩이는 강렬한 빛에 눈이 뜨이면 한없이 붙들려 질문이 꼬리를 물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대표작인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을 추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소설은 한달음에 읽기가 정말 쉽지 않았거든요~ 작품과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조망해야 저자 특유의 섬세한 필치를 넘어 주제와 장면이 콜라주 되어 보이는데, 장편소설은 거기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제가 힘든 걸 다른 이에게 추천하는 건 더 어렵고요.


하 지 만 !


이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단편소설집 「블루&그린」 덕분이에요. 총 18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으로, 저자의 집필 활동 기간(35년) 동안 쓰인 다양한 작품이 실려 있어 문체와 친해지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소설이 그 역사의 첫 발을 떼었을 때, 산문은 투박하고 서민적인 것이라며 환영받지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1900년대 초중반 시기에 쓰인 단편에서 울프의 문장은 시(운문)보다 서정적인 감수성으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늘 그곳(자기 자리)에 있음에도 ‘존재’로 포착되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그윽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언어를 부여한 단편들은 넋을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었습니다. 존재함을 부여한 언어는 빛이요 생명, 그 자체였어요! 이런 천재를 만나면 글쓰기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니까요.


흔히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개되는 버지니아 울프의 문체는, 장면에서 장면으로 전이하며 명확한 끝맺음 없이 흐르는 사고의 이동을 담아냅니다. 독자는 ‘소설’에서 선명한 스토리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만날 수 없죠. 그게 특징인데 파악하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단편은 압축적 분량을 무기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울프의 장면 전이는,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떠올리면 한결 쉽게 다가옵니다. 인간의 눈이 포착한 빛의 순간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 담고자 했던 모네는 여러 개의 캔버스를 세워 두고 한자리에서 해가 이동하는 시간대에 따라 그림을 완성했다고 해요. 그렇게 연작으로 탄생한 수련,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에 실린 붓놀림이 빛의 순간을 붙든 것처럼 울프는 펜놀림(문장)으로 눈에 보이는 장면(심상 포함)을 붙들어 보여줍니다.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 전개되려고 또는 끝내려고 이러지?’ 궁금해서 빨리 마지막 문단에 닿고 싶어 조바심이 났습니다. 저처럼 당장 누군가와 이 궁금증을 풀고 싶다 싶은 분들은, 부록으로 실린 해설을 적극 활용하시면 좋겠어요~ 저자에 대한 안내도, 한 작품씩 풀어놓은 감상도 역대급 친절해서 작품을 함께 산책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거든요.


표제작이자 제목인 ‘블루&그린’의 이미지가 등장하거나, 빛깔이 서로 전이되는 장면을 채집하시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⅔ 지점에서 발견하고, 도돌이표 찍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샅샅이 읽으며 분홍색 인덱스로 연신 표시했는데요(숨은 그림, 틀린 그림 찾는 것 좋아함). 이렇게 장면을 연상하며 읽으니 독서 시간이 한결 풍성했습니다. 좋은 건 같이 해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같은 장편소설을 읽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았던 분들이나, 저처럼 문체가 어렵게 느껴지셨던 분들은 단편소설로 먼저 친해진 다음 도전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본 서평은 필자가 읽고 싶은 책의 서평단에 직접 지원하여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도서제공 #더퀘스트 #길벗출판사 #읽고싶어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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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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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 단짝 참고서(또는 필독서)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2022년 출간되어 최근 번역된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Horizons)>입니다. 그동안 유럽에만 집중했던 시각을 전 세계로 펼쳐 정리한 근현대 과학의 세계사라고 보시면 되어요~


15세기 과학 혁명의 시작부터 21세기까지의 흐름을 총 4부로 나눠 소개하고 있는데요. 유럽의 유명 과학자에 밀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 곳곳의 과학자의 발견을 복원할 뿐만 아니라, 기존에 잘못 해석되어왔던 정보를 교정하여 과학사의 큰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과학과 역사의 근현대 흐름을 단 한 권으로 섭렵할 수 있는 책이에요!


개인적으로 19-20세기 세계문학 고전을 좋아하는 저는, 한 챕터를 클리어할 때마다 개안(開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 과학사나 세계사에 관심 많은 분들뿐만 아니라, 세계문학 좋아하는(또는 시작하는)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어요~


읽으면서 관련 검색어로 떠오르는 세계문학 제목을 여백에 적어 인덱스 스티커를 붙이느라 여념이 없었거든요~ 그동안 배경 이해에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 부족했던 여러 국가의 실상이 다뤄져 있었기에 단비 같은 발견이 쏟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15세기 천문학사를 소개한 1부만 보아도 이슬람에서는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을, 서아프리카에서는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멕시코에서는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떠올리며 비밀을 풀어볼 수 있었습니다.


‘과학사라니… 과알못은 웁니다💦’ 싶은 분들께도 자신있게 권할 수 있어요! 과학지식이 부족한 저도 눈높이를 맞춘 저자의 설명 덕분에 편안하게 읽었거든요~ 수채화를 덧칠해 나가듯 부드럽게 정보의 층위를 쌓아가며 이해를 돕는 방식이었는데요. 각 챕터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럽 과학자(또는 인물. 예를 들어, 콜럼버스, 뉴턴, 다윈 등)의 스토리로 흥미를 깨우고, 지리를 이동해 같은 시기에 아메리카, 중국, 인도 등지에서는 어떤 발견이 이뤄지고 있었나 섬세하게 비교해 줍니다.


저자의 집필 의도를 다섯 쪽마다 듣게 되는 책으로는 1등 할 것 같습니다. ‘과연 그게 다일까요? 잠시 여기 좀 보시겠어요?’ 식으로 부드럽게 각국의 독자적인 발견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계되었으며, 어떤 고리가 끊어졌기에 우리가 모르고 있었는지,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 흘리고 부서지고 잊혀 갔는지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닌데, 세계사를 읽을 때보다는 덜 쓰린 정도였어요~ 저자가 소개하는 한 사람(또는 과학자)의 탐구 열정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역사의 이면이 읽히고 어떻게 과학이 발전되고 연결되어 있는지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저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영국) 확인하게 만든 표현(또는 관점)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반박 포인트에 적절하게 등장해 주석을 달아 준 역자 김아림 님의 섬세한 배려 덕분에, 분노보다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어요~ 번역가와 함께 읽는 느낌이라 혼자서도 대화하듯 여백에 질문을 빼곡히 채우며 읽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Horizons : The Global Origins of Modern Science’인데요, 근현대에 초점을 맞췄다는 직관적 이해는 포기해도 기획 의도를 탁월하게 반영한 <과학의 반쪽사>라는 제목에 감탄했습니다. 시선의 균형을 맞춘 점이 좋아서 ‘과학의 양쪽사’까지 욕심내어도 될 것 같아요!


서평은 객관적 글쓰기로 채우고 싶었는데, 이 책은 예외입니다. 조카가 고등학교 진학할 때까지, 정보 수정과 첨언 필요한 자료를 덧붙여 단권화해서 선물할 거예요. 정보뿐만 아니라, 저자의 열정과 역자의 정성, 그리고 세대를 아울러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균형 있는 세계관을 깨우는 기획 의도까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한 독서 시간이었습니다.


📔 <과학의 반쪽사> 제임스 포스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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