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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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조지 오웰, 한나 아렌트는 제가 좋아하는 ‘정치적 글쓰기 3인방’입니다. ‘정치적 글쓰기에 버지니아 울프를?’하고 갸우뚱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요. 「3기니」를 읽어보신다면 이내 끄덕끄덕하게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울프의 문장은 오웰과 아렌트의 문장(또는 주장)에 비해 보송보송한 느낌이지만, 순간 번뜩이는 강렬한 빛에 눈이 뜨이면 한없이 붙들려 질문이 꼬리를 물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대표작인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을 추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소설은 한달음에 읽기가 정말 쉽지 않았거든요~ 작품과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조망해야 저자 특유의 섬세한 필치를 넘어 주제와 장면이 콜라주 되어 보이는데, 장편소설은 거기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제가 힘든 걸 다른 이에게 추천하는 건 더 어렵고요.


하 지 만 !


이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단편소설집 「블루&그린」 덕분이에요. 총 18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으로, 저자의 집필 활동 기간(35년) 동안 쓰인 다양한 작품이 실려 있어 문체와 친해지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소설이 그 역사의 첫 발을 떼었을 때, 산문은 투박하고 서민적인 것이라며 환영받지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1900년대 초중반 시기에 쓰인 단편에서 울프의 문장은 시(운문)보다 서정적인 감수성으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늘 그곳(자기 자리)에 있음에도 ‘존재’로 포착되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그윽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언어를 부여한 단편들은 넋을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었습니다. 존재함을 부여한 언어는 빛이요 생명, 그 자체였어요! 이런 천재를 만나면 글쓰기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니까요.


흔히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개되는 버지니아 울프의 문체는, 장면에서 장면으로 전이하며 명확한 끝맺음 없이 흐르는 사고의 이동을 담아냅니다. 독자는 ‘소설’에서 선명한 스토리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만날 수 없죠. 그게 특징인데 파악하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단편은 압축적 분량을 무기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울프의 장면 전이는,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떠올리면 한결 쉽게 다가옵니다. 인간의 눈이 포착한 빛의 순간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 담고자 했던 모네는 여러 개의 캔버스를 세워 두고 한자리에서 해가 이동하는 시간대에 따라 그림을 완성했다고 해요. 그렇게 연작으로 탄생한 수련,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에 실린 붓놀림이 빛의 순간을 붙든 것처럼 울프는 펜놀림(문장)으로 눈에 보이는 장면(심상 포함)을 붙들어 보여줍니다.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 전개되려고 또는 끝내려고 이러지?’ 궁금해서 빨리 마지막 문단에 닿고 싶어 조바심이 났습니다. 저처럼 당장 누군가와 이 궁금증을 풀고 싶다 싶은 분들은, 부록으로 실린 해설을 적극 활용하시면 좋겠어요~ 저자에 대한 안내도, 한 작품씩 풀어놓은 감상도 역대급 친절해서 작품을 함께 산책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거든요.


표제작이자 제목인 ‘블루&그린’의 이미지가 등장하거나, 빛깔이 서로 전이되는 장면을 채집하시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⅔ 지점에서 발견하고, 도돌이표 찍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샅샅이 읽으며 분홍색 인덱스로 연신 표시했는데요(숨은 그림, 틀린 그림 찾는 것 좋아함). 이렇게 장면을 연상하며 읽으니 독서 시간이 한결 풍성했습니다. 좋은 건 같이 해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같은 장편소설을 읽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았던 분들이나, 저처럼 문체가 어렵게 느껴지셨던 분들은 단편소설로 먼저 친해진 다음 도전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본 서평은 필자가 읽고 싶은 책의 서평단에 직접 지원하여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도서제공 #더퀘스트 #길벗출판사 #읽고싶어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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